열정으로 도전 즐겨온 한국 남성복의 거목

「카루소」 장광효. 패션계의 스타. 조용한 모습 안에 용광로 같은 열정 덩어리를 가진 그는 영원한 현역이다. 올해도 어김없이 22년째 서울패션위크의 서울컬렉션을 준비하고 있다.
그에게는 ‘최초’란 수식어가 많이 붙어다닌다. 남성 패션 불모지였던 80년대 중후반, 남성복 디자이너 브랜드 「카루소」로 남성복 시장을 처음 개척한 선구자, 한국 남성복 디자이너 최초로 파리의상조합에 정회원으로 가입하고 파리 프레타포르테 남성복컬렉션에서 처음 컬렉션을 발표한 디자이너, 홈쇼핑에 진출한 국내 첫 남성복 디자이너, 그리고 디자이너 최초로 드라마에 출연한 스타이기도 하다. 수많은 금기를 부순 패션 프런티어를 만나보았다.
“서울컬렉션 출품작 정리하느라 단추 만지다 왔다”는 그는 청바지에 편안한 니트 차림으로 쇼룸에 들어섰다. 시간이 거꾸로 가는지 나이를 가늠할 수 없는 절대 동안이다. 3월 열리는 서울컬렉션 준비에 한참이다.
- ‘장샘’(드라마 ‘안녕, 프란체스카’에서 맡았던 역할), 올해 서울패션위크에서 선보일 컬렉션은.
“(하하)빈티지한 밀리터리룩, 해군복의 색상을 메인으로 쓴다. 스타일은 심플하고 미니멀하면서 스포츠룩의 느낌과 밀리터리룩의 느낌이 들어간 옷이 중심이다. 밝고 경쾌한 색상을 위주로 하고, 실루엣은 복고적인 오버사이즈로 약간 느슨한 옷들이 대다수다.
- ‘장샘’에게 패션쇼는 어떤 의미인가.”
“하나의 예술이다. 패션쇼는 늘 테마 중심이다. 테마에 따라 옷이 만들어지고 무대가 설치되고 음악이 선곡된다. 테마는 당시의 경험과 호기심, 그때그때의 상황에 따라 생겨난다. 난 호기심이 많아 쇼의 테마는 무궁무진하다.”

- 2013 FW 파리 멘즈 컬렉션에 우영미, 송지오, 정욱준 등 디자이너가 참가해 호평을 받았다.
“선배로서 큰 보람을 느낀다. 박수를 보내고 싶다. 선배들 뛰어넘어 계속 세계 속에서 인정받는 한국 디자이너가 되길 바란다. 가끔은 선배들이 파리 컬렉션에서 앞서 흘린 땀방울이 후배들의 밑거름이 됐다는 걸 알면 좋겠다. 그들도 언젠가는 선배가 될 것이고 후배들에게 뭔가 전해줘야 의미있을 것 아닌가.”
- 수많은 쇼 중에서도 가장 기억에 남는 무대를 꼽자면.
“파리 컬렉션을 1994년부터 3년간 6회에 걸쳐 진행했는데, 첫 무대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첫 정이 애틋하듯이. 프랑스 백작의 고택이 무대였는데, 잔디로 조성된 정원 크기만 몇 천평에, 큰 분수와 오래된 석상, 300년 이상된 4층의 위용을 자랑했다. 거의 숨이 멎을 지경이었다. ‘이렇게 아름답고 고풍스런 분위기에서 첫쇼를 하다니. 꿈인가 생시인가’ 싶었다. 놀라운 것은 1층 열댓개 방의 문을 제치니 하나의 긴 무대가 조성됐다. 드높은 천장과 샹들리에까지 완벽했다. 톱모델인 카메론, 안드레아, 마크, 마르쿠스 등에게 ‘가야국’을 모티브로 한 에스닉룩을 선보였다. ‘보그 옴므’ 등에 당시 컬렉션이 소개되기도 했지만,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다.”

- 파리컬렉션에 나가면서 당시 한국 모델도 무대에 세웠던 것으로 안다.
“장 폴 고티에, 폴 스미스, 겐조, 요지 야마모토, 꼼 데 가르송 등 세계적인 톱 디자이너와 어깨를 나란히 해보니, 한국 모델들에게도 파리컬렉션 런웨이를 당당히 걷게 해주고 싶었다. 물론 프랑스 현지 모델이 키도 크고 훨씬 자연스러워 현지 스태프들의 반대가 처음엔 심했다. 하지만 결국 내 뜻을 관철시켰다.”
- 파리컬렉션 참가를 6회로 접었던 이유를 솔직히 밝히면.
“지금은 정부가 디자이너들의 해외 컬렉션 참가 때 지원을 하지만, 당시로선 오히려 사치 조장 업체라며 매년 2억원의 세금을 거꾸로 물렸다. 참 척박한 상황이었다. 파리와 서울을 정신없이 오가며 오로지 컬렉션 만들기에 빠져있는 동안 회사 운영은 힘들어졌다. 한때는 하루 5000만원 현금이 포대 자루로 들어온 적도 있었지만, 파리컬렉션 진출 후에는 쇼 한번 치를 때마다 건물 하나가 팔려나갔다.
하지만 당시에는 오로지 파리컬렉션이 나의 전부여서 괘념치 않았다. 지금 생각하면 무엇에 홀린 사람처럼 국내 사업을 심드렁하게 밀쳐놨었다. 올 것이 오고야 말았다. 결국 빚을 갚기 위해 매장 7개, 백화점 입점 매장까지 무려 30여개 매장 문을 닫았다. 믿었던 직원이 횡령을 하고 200여명 직원이 노조를 결성하는 가운데, 어쩔 수 없이 매장과 직원을 정리했다. IMF도 매서웠다. 그래도 지금 「카루소」를 지키는 것이 다행이다.”
- 남 보다 빨리 해외 무대에 눈을 떴다.
“대학원 졸업 후 실습 현장을 파리로 정했다. 잡지를 보며 늘 파리를 꿈꿨다. 실제로 프랑스 퐁텐블로 예술학교로 날아가서 기차로 40분 거리의 파리를 수시로 다녔다. 해외 여행도 어렵던 1983년 파리는 정말 별천지였다. 한창 개발 중이던 퐁피두문화예술센터 건물은 문화 충격 그 자체였다. 당시 파리는 24시간 비행해야 갈 수 있던 시절이었다. 그곳에서 젊은 파리지앵을 보고, 하릴없이 거니는 것이 좋았다.
홀로 노천카페에서 에스프레소를 마시며 사람 구경을 즐겼다. 당시 문득 파리지앵 중에 명품으로 치장한 사람이 한 명도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한국에서 남성복 디자이너가 되기로 결심했다. 1987년 「카루소」 론칭 7년 후 파리 컬렉션 도전은 내겐 당연한 과정이었다. 장광효의 「카루소」를 제대로 보여주고 세계 속에서 평가받고 싶었고, 과감히 도전했다.“

- 「카루소」 론칭에 얽힌 이야기를 해달라.
“4년간 기업체 수석디자이너로 활동하며 밤낮없이 워커홀릭으로 살았다. 하지만 디자이너의 개성을 한껏 표현할 수 없어 과감히 퇴사했다. 불면의 밤을 보내며 브랜드 네임을 고민하던 중 성악가인 아내가 「카루소」 를 제안했다. ‘이탈리아 출신의 명 테너 엔리코 카루소(Enrico Caruso) 이름인데 어떠냐’는 거였다. ‘이거다’ 싶었다. 그리고 느낌처럼 잘됐다. 인기 그룹 ‘소방차’가 그해 데뷔를 하고 내 옷을 입기 시작한 것이다. 나는 퐁펜블루에서 봤던 사람들의 차림새를 떠올렸고, 승마바지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 조용필, 서태지, 임하룡 등 남자 연예인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 후배들에게 해주고 싶은 조언이 있다면.
“일찍 해외로 나가서 현지에서 패션디자이너가 되는 방법과 국내 시장을 지키면서 서울컬렉션에 충실한 두 가지 방법이 있다. 전자는 아예 외국에서 자리를 잡는 것이다. 나와 함께 파리컬렉션에 나갔던 ‘딕 비켄버그’ 상황만 보더라도, 국내는 디자이너가 올 라운드 플레이어로 뛰어야 하지만, 유럽은 패션에만 전념할 수 있어 디자이너로 성장하기가 좋다. 한편 후자의 경우는 아예 국내에서 내수 기반을 닦으면서 외국 바이어를 만나는 방법이다. 해외 컬렉션 한다고 너무 무리하지 말고, 서울컬렉션 참가로 차곡차곡 실력을 쌓고 준비를 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나 역시 서울컬렉션만큼은 디자이너로 활동하는 한 지키고 싶다.”

- 가슴 속 큰 꿈이 있다면?
“의상박물관을 만들고 싶다. 중세도시인 스페인의 톨레도 대성당 지하 뮤지엄에서 500년전부터 현재까지의 교황의 복장 50점을 봤다. 지금 입어도 될 정도로 화려하고 완벽하게 보관이 잘 돼있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보존이 잘 안되어 있어 안타깝다 하지만 대한제국 이후 옷이라도 남성복부터 모으고 싶다. 현재 몇십 점 모았다.”
- 「카루소」 계승을 희망한다는 얘길 들었다.
“앙드레김 선생님을 보아도 디자이너가 혼자서 영원히 그 브랜드를 유지하긴 힘들다. 패션은 판타스틱해야 한다. 패션디자이너도 그런 면이 필요하다.
나는 박수칠 때 떠나고 싶다. 단 「카루소」는 영원했으면 좋겠다. 후학이 됐건, 기업체가 됐건 능력있는 이가 「카루소」를 이어가면 좋겠다. 오픈 마인드로 후배 디자이너들을 바라 보고 있다. 인큐베이팅해줄 수도 있으니까. 또 그들의 활동에서 대리 만족을 느낄 수도 있으니까.”
- 평소엔 어떻게 지내나.
“아내가 지방 대학교수여서 금요일에 만나 화요일에 헤어진다. 나머지 평일에는 오전 10시에 출근하고 오후 7시에 퇴근하는 일상이다. 웬만한 나물 반찬, 국, 찌개는 물론, 청소도 빨래도 척척이다. 애견과 함께 걷고 달리며 건강을 지킨다. 여행하는 걸 즐기고 독서와 음악, 영화 감상도 하면서 현재를 즐긴다.”
- 진정한 멋쟁이가 되려는 남성들에게 조언 한마디.
“한국에선 명품이라면, 또 남들이 좋다면 무조건 덤비는 부류가 있지만, 패션은 커다란 문화 안에 담긴 많은 의미를 옷을 매개로 표출해내는 것이다. 비씨고 좋은 제품만 걸치면 멋쟁이가 되는 게 아니라 자기 나름의 ‘스타일’이 있어야 한다.”
-좀더 자유로워지면 어떻게 지내고 싶은가.
“전원에서 꽃과 나무, 동물들과 함께 지내고 싶다. 경기도도 좋고 서울 근교에서 지내고 싶다. 요즘도 시간나면 의상박물관 터도 볼 겸 땅을 보러 다닌다.”
이화순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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