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인생의 3막, 올 봄에 펼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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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화순의 ‘아름다운 만남’ - 안윤정「앙스모드」대표

2013-02-15 오후 1:52:34

「앙스모드」 세계 브랜드로, ‘호텔 앙스’도 오픈 예정



‘청춘이란 인생의 어느 기간이 아니라 마음가짐을 말한다. 장밋빛 볼, 붉은 입술, 부드러운 무릎이 아니라 씩씩한 의지, 풍부한 상상력, 불타오르는 정열을 가리킨다. 인생이라는 깊은 샘의 신선함을 이르는 말이다…’(‘청춘’, 사무엘 울만)


패션 디자이너 안윤정씨는 청춘이다. 그는 여전히 아름답다. 꿈이 있어 아름답고, 그 꿈을 이룰 의지와 행동력이 있다. 올봄에 세 번째 변신을 앞둔 그를 서울 청담동 편집숍 『디누에』에서 만났다.


 “1975년에 ‘안윤정부띠끄’를 오픈한 것이 1기, 롯데백화점에 입점하면서 「앙스모드」를 설립한 것이 2기라면, 올 3월 안윤정의 제 3기 시대를 엽니다.”
1m 67의 키에 여전히 66사이즈를 입을 정도로 자신을 잘 관리해온 안윤정(66) 「앙스모드」 대표는 검은 투피스 정장으로 나타났다. 전 여성경제인미스코리아 출신의 두 딸 유한나씨(31·편집숍 『디누에』 대표)와 유리나씨(28·패션 디자이너)와 함께.


안 대표는 사랑에 빠진 이가 옆 사람까지 행복하게 만들 듯, 새로운 꿈 이야기로 옆사람까지 꿈꾸게 만들었다. 마치 이야기 보따리처럼 그의 38년 패션 디자이너 인생과 꿈이 달콤하게 술술 풀렸다.
자, 이제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와 현재 사이를 종횡무진 여행해보자.



◇「앙스모드」 세계 브랜드로, ‘호텔 앙스’도 오픈할 계획
그를 재촉해 빨리 새 꿈 이야기를 듣고 싶었다. 어떤 꿈일지.
 “제 3기에선 저의 「앙스모드」를 세계적인 브랜드로 만들고 싶어요. 또 「앙스모드」 논현동 매장을 작지만 디자인이 있는 비즈니스 호텔 ‘호텔앙스’로 만들어 침구를 직접 디자인하고, 일부 룸은 선교사들을 위한 봉사의 공간으로 제공하고 싶어요.”
이제는 본인이 ‘만들고 싶은 옷을 만들고, 또 다른 새 일에 도전하겠다’는 선언이다.


온몸의 신경을 귀에다 모으듯 그의 옆에 나란히 앉아 조곤조곤 풀어놓는 꿈 보따리 이야기를 들었다.
“제가 만 스물여덟에 「안윤정부띠끄」를 오픈하고 롯데백화점에 입점하면서 국내 최초로 부인복 디자이너 브랜드 「앙스모드」를 설립했죠. 백화점 입점만 34년째에요. 더 이상 백화점 매출을 위해 일방적으로 봉사하고 싶진 않아요. 또 제 고객 나이가 80대가 됐는데, 앞으로는 20대 고객까지 만날 참입니다.  55사이즈도 만들고요.”


“사람에게 생(生)과 사(死)가 있듯이 사업도 마찬가지”라는 그는, “백화점 매장을 단계적으로 정리해오다 올해 깔끔히 정리한다”고 전했다. 아울러 「앙스모드」를 논현동에서 현재 『디누에』가 있는 청담동 「앙스모드」 빌딩 2층으로 이전한다. 큰 딸 유한나씨가 운영해온 『디누에』는 지하 1층의 앙스갤러리 자리로 이전할 계획이다.


“앞으로는 대중을 위한 옷이 아닌, 제 옷을 좋아하는 마니아들을 위한 옷을 부띠끄 식으로 디자인할 겁니다. 저의 색깔을 나타내는 디자인을 할 겁니다. 제 개인적으로 미니멀하고 우아한 스타일을 좋아합니다.”


호텔 이야기를 더해 달라고 하니, “아직 준비중”이라고 말을 아끼면서도 “외국 갈 때 어디를 가건 기억에 남는 건 호텔 규모나 화려함 보다는 ‘잠자리가 편안했는지’ 잖아요. 1박에 10만~15만 정도 가격대로 저만의 디자인과 편안함이 있는 곳으로 만들려 합니다”고 설명했다.



 ◇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 옷에도 관심, 차화연·박정수도 팬
안 대표의 셀러브리티 중에는 여성 정치인이나 연예인들도 많다. 특히 황산성 전 환경부 장관도 장관 재임시 안 대표의 옷을 입었고, 중견 연예인들 중엔 차화연·박정수 등 그의 옷을 입는 이가 많다.


말이 나온 김에 “여성 대통령을 통해 국가 브랜드 패션을 만드는 것도 의미 있지 않겠느냐”고 물었다.
대선 때 박근혜 당선인의 코디 담당자가 「앙스모드」를 다녀갔으나 부인복으로 분류된 「앙스모드」에 허리 사이즈 26의 55사이즈는 없어 담당자는 빈손으로 돌아갔다고 한다.


“저도 대통령에게 제 옷을 입히고 싶지요. 대통령이 제 옷을 입어 국가 브랜드가 창출되면 얼마나 좋겠어요. 이제 제 3기를 열면 부인복 이미지를 벗고 20대도 입도록 55사이즈도 만들텐데 그렇게 되면 박 당선인의 옷도 가능합니다. 물론 저는 적정한 액수의 옷 값도 받을 겁니다. 대통령이 공짜로 해선 안되니까요.”


그 가격을 묻자 ‘비밀’이라며 살짝 귀띔하는데 정말 합리적인 액수였다. 그 가격이 가능한 이유를 묻자 “패턴이 안 변할 테니까”란 대답이 돌아왔다.


‘만약 박 당선인에게 제안할 기회가 있다면 어떤 옷을 제안할지’ 묻자 “정장에서 변화를 주면서 카리스마도 갖춰야 됩니다. 스커트 정장, 바지 정장이 중심이 되겠지만 세계 각국 정상들과의 만남에서 한국 패션의 우수성이 돋보이도록 멋이 묻어나야겠지요.”


아마도 패션 디자이너라면 누구라도 자신의 옷을 대통령에게 선택 받길 원할 터. 그 결과가 궁금하다.
황산성 전 장관에게는 당시 유행하던 오렌지와 진한 블루, 아이보리 등의 색상으로 정장을 해주었다고 한다. 인터뷰 직전 『D.NUE』에는 탤런트 배종옥의 스타일리스트가 다녀가기도 했다.



◇ 이대 졸업 후 국제복장학원 다녀
딸만 셋, 딸 부잣집의 큰 딸인 안 대표가 패션 디자이너가 된 것은 취미를 잘 살린 덕분이었다. 어머니는 의사나 판사가 되길 권유했지만 실험용 해골을 보곤 구토할 정도로 비위가 약해 애초 어머니의 바람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럼에도 안 대표는 ‘의사는 예쁜 옷도 못 입고 평생 흰 가운만 입어야 하는 게 싫다’고 생각했단다. 당시 그의 취미는 옷 잘 입는 것이었다.


“교수가 돼라”는 어머니 권유로 대학원 진학을 했지만 학생들에게 반복 수업해야 할 걸 생각하니 참 지루할 것 같은 생각이 들어서 그것도 NO! 대학원 재학 중 회사 생활을 해봤지만 당시만 해도 여성에 대한 대우는 형편없었다. 상사의 커피 심부름이나 책상·창문 청소는 여직원의 몫이었다. 당시도 할말은 하던 성격이라 “퇴근하면서 창문 닫고 가라”는 상사의 지시에 “남자가 닫아야지 왜 제가 합니까”라고 했단다.


“어머니는 내 편이 되어 주실 줄 알고 집에 가서 얘기했더니 ‘신입사원이 시키는 대로 해야지. 그게 싫으면 시집이나 가라’고 하시더라고요. 내 편은 아무도 없고 해서, 대학원을 1학기 더 한다고 살짝 거짓말하고 그 등록금으로 국제복장학원을 다녔죠.”


학원을 다니며 옷을 만드는데 그 많던 잠이 싹 달아났다. 얼마나 재미있던지 ‘이 길이 내 길이다’고 직감을 하게 됐단다.
또 다른 이유는 ‘모정’ 같은 할리우드 영화 속 배우의 패션을 따라 입는 게 유행이었는데, 그 디자인의 옷을 살 수도 없거니와 맞춰도 예쁘지가 않았단다. 


“제가 몸은 날씬한데 얼굴이 상대적으로 살짝 커요. 그래선지 옷도 크게 만들어주는 거에요. 너무 안 예뻐서 맞춰놓고도 못 입었어요. 내가 만들면 평생 예쁜 옷 맘껏 입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정말 평생 멋진 옷, 실컷 입었어요. ”


◇ 본명은 ‘안희정’, ‘앙스’는 불어식 표기
국제복장학원을 다닌 후에는 의상실에 취직해볼까도 생각했지만, 나중에 ‘○○○ 밑에 있었다 카더라’ 식의 패션계 뒷말을 듣기 싫어 아예 의상실을 차리고 나섰다. 하지만 그때까지 어머니께 비밀로 했기에 이번엔 바느질하던 친척 언니를 의상실 사장으로 앉혔다. 어머니께는 “언니 의상실 오픈에 돈을 대면 평생 원가에 옷을 해준다”고 설득했다. 그리고 딸 시집 보낼 때를 대비해 어머니가 사놓은 원단을 쇼룸에 걸고, 집 미싱에 모터를 달아서 쓰고, 기술자를 소개받아 일했다. 하지만 결국 어머니께 탄로나고 말았다.


안 대표는 “별로 수완이 좋지는 않은데 너무 그 일이 하고 싶으니 거짓말을 하게 됐다”고 어머니께 거짓말한 사연을 털어놓았다.
“어머니는 ‘내가 어찌 키운 딸인데…’ 하시면서 머리에 흰 띠를 두르고 드러누웠어요. 당시만 해도 바느질 일을 한다는 것이 팔자 센 여자들이나 하는 일이라는 편견이 있었거든요. 결국 어머니께는 ‘걱정하지 않게 결혼도 잘 하고 자녀도 잘 낳고 키우면서 일도 하겠다’고 약속했죠.”


안 대표의 열성 덕분인지 1975년에 문을 연 「안윤정부띠끄」는 잘 됐다. 이쯤에서 안 대표는 본인의 본명은 안윤정이 아니라고 밝혔다. 
“제 본명은 안희정입니다. 윤달생이라 부모님이 ‘윤정’이란 애칭으로 부르셨는데 ‘안윤정’을 브랜드 네임에 썼죠. 「안윤정부띠끄」는 그렇게 생긴 겁니다.


마침 1977년에 최경자 선생님 추천으로 여성실업인협회(여성경제인협회 전신) 회원이 돼 하와이에 가면서 겪은 사소한 경험 때문에 패션을 기업화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그러던 차에 1979년 롯데백화점에 국내 최초의 디자이너 브랜드 부인복  「앙스모드」로 입점하게 됐다.


“지금도 제 로열 고객들은 딸, 며느리 옷까지 해갑니다. 아무리 유행이 가도 옷은 체형을 예쁘게 보여주고, 엘레강스하게 만들어줘야 한다는 게 제 철학이니 제 옷을 좋아한 거죠. 트렌드로는 보이시 룩이나 그런지 룩 등이 있지만, 전 개인적으로 그런 옷은 좋아하지 않아요.”


◇ 미스코리아 딸 유한나, 유리나 자매




안 대표의 두 딸 유한나, 유리나 자매는 나란히 미스코리아에 출전했다. 세 모녀는 모두 이화여대 동문이기도 하다. 두 딸을 바라보는 안 대표의 눈이 자랑스러움에 빛났다.


2007년 미스코리아 서울 미에 당선된 한나씨는, 같은 해 10월 인도양 세이셀공화국에서 개최된 미스인터콘티넨털에 출전해 2위를 차지했다. 한나씨 동생인 리나씨도 2010년 미스코리아에 출전해, 경북 미와 네티즌인기상을 수상했다.


어머니처럼 이화여대 의류직물학과에서 공부한 한나씨는 2010년 동갑내기 신랑 김선후씨와 백년가약을 맺고, 동생과 편집숍 『D.NUE』를 론칭하며 패션사업가가 됐다.


동생 리나씨는 이대 패션디자인학과를 졸업하고 런던컬러지 오브 패션에 입학했으나 휴학하고 브랜드 「레이나(LEINA)」 를 론칭, 패션 디자이너로 일해 왔다. 올 10월에 3학년으로 복학할 예정이다.


한나씨는 『D.NUE』에서 유럽, 미국 디자이너 브랜드와 한국의 디자이너 브랜드를 함께 소개하고 있다. 「Dice Kayek」 「Hotel Particulier」 「Sophie Hulme」 「Temperley london」 「Ella luna」 등의 파리, 밀라노, 런던, 뉴욕에서 활동하는 디자이너브랜드들과 「S=yz」 「En pleine Nuit」 「Greedilous」 「Heohwan simulation」 등의 한국 디자이너 브랜드까지 등 총 35~40개의 브랜드를 소개중이다.


한나씨는 “가장 반응이 좋았던 상품은 카라의 구하라 양이 '씨티헌터'에서 입은 블라우스.로 '씨티헌터'가 수출된 중국이나 구하라양의 인지도가 높은 일본에서 『D.NUE』 를 많이 찾고 있다”고 설명했다. 


리나씨는 “어머니 브랜드의 우아하고 고급스러운 이미지를 계승하면서 조금 더 영한 타깃을 상대로 라인을 전개하고 싶다”면서 “소비자들이 어디서든 쉽게 볼 수 없는 디자인이면서도 과하지 않고 레디 투 웨어로 입을 수 있어 좋다는 반응을 많이 보인다”고 말했다.


두 딸을 바라보던 안 대표는 “아무에게도 아름다움을 양보하고 싶진 않지만, 두 딸에게는 양보할 수 있다”며 미소지었다.


 



이화순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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