섹시, 페미닌, 럭셔리의 적절한 배합이 디자인 철학

켈리 러더퍼드, 브룩 쉴즈, 부르스 웨버, 체스크 스펜서, 리아 닐의 공통점은?
모두 여성복 브랜드 「손정완」을 좋아하는 해외 스타들이다. 뉴욕컬렉션에는 월드 스타 디자이너들이 다 모여들지만 그럼에도 이들은 「손정완」의 럭셔리하면서도 섹시미와 여성미가 공존하는 매력에 푹 빠진 이들이다.

드라마 ‘가십걸’의 켈리 러더퍼드는 지난해 칸국제영화제 레드카펫에 「손정완」의 옷을 입고 나와 화제가 됐고, 브룩쉴즈는 ‘홍보 대사’가 됐다.

1987년 서울 압구정동에 첫 매장을 낸 이래 톱디자이너가 된 손정완씨(55)는 53세에 뉴욕 무대에 도전했다. 물론 2006년 국내 디자이너로는 처음으로 ‘후즈 넥스트(Who’s Next)’에 초청됐지만, 아쉽게 일회성으로 끝나고 말았다. 그 아쉬움을 뒤로 하고 뉴욕컬렉션은 지금까지 4차례에 걸쳐 성공적으로 마쳤다. 다시 2013 F/W뉴욕컬렉션과 ‘컨셉코리아’ 무대에 서는 그를 도미 직전 서울 논현동 쇼룸에서 만났다.

◇ 홈쇼핑에서도 통했다
「손정완」은 20대 여대생에서 50대 여성들까지 폭넓은 계층을 아우른다. 여성미를 귀엽고도 사랑스럽고 우아하게 표현해내는 그의 옷은 여성들의 로망이다. 시즌 트렌드와 잘 어우러지면서도 독창성을 지켜왔다.
한때 「손정완」은 맞선 자리에 나갈 때 반드시 입어야 하는 필수 패션으로 손꼽히며 고정 고객과 셀러브리티들의 높은 사랑을 받아왔다. 하지만 대중에게는 높은 가격대가 장벽이었다.
그런 어느날 대중과 손정완 디자인의 만남이 이뤄졌다. GS홈쇼핑과 손잡고 지난해 11월 13일 홈쇼핑에서 「SJ.WANI」(에스제이 와니)를 론칭한 것이다. 처음 공개한 「SJ.WANI」로 방송이 끝나기 전에 전 색상, 전 사이즈를 완판하며 저력을 입증했다. 분당 평균 2700만원, 총 16억원의 매출이었다.
“홈쇼핑 입성을 축하한다”고 말문을 열자, 손 디자이너는 “사실은 홈쇼핑과의 작업이 두려웠다”고 고백했다. 10여년 전부터 홈쇼핑에서 러브콜을 받았지만 그간 쌓아온 이미지가 추락될까 우려해 거절해왔다고 밝혔다. 그러나 GS홈쇼핑이 가격은 적당하게, 퀄리티는 높이는 조건을 내걸어 콜래보레이션이 순조롭게 진행됐다. 그동안 「손정완」의 가격이 높아 입고 싶어도 입지 못하는 고객들, 특히 20~30대 고객들에게 다가가기 쉬운 가격인데다가 퀄리티도 마음에 들었단다.
“GS홈쇼핑과는 호흡이 잘 맞았어요. 다행히 소비자 반응도 그렇게 좋을 줄 몰랐어요. 「손정완」을 좋아해온 오랜 고객 중에는 우려의 목소리도 있었으나 나름대로 보람을 느낍니다.”
「손정완」의 디자인 철학은 섹시(sexy)와 페미닌(feminine)과 럭셔리(luxury).
작업할 때마다 세 가지 키워드를 염두에 둔다. 아무리 예뻐도 성적인 매력이 없으면 지루하고, 성적 매력만으로는 천박하다. 고급스러운 건 당연히 필요한 것이고. 세 가지의 균형이 잘 맞을 때 가장 매력적인 의상이 된다.
「SJ.WANI」와 「손정완」은 어떻게 다를까?
「SJ.WANI」는 메인 브랜드에 비해 상대적으로 가격이 낮지만 페미닌, 섹시, 럭셔리 콘셉은 그대로 가져가는 것이 특징이다.
“「SJ.WANI」는 젊고, 트렌디하고 파격적이죠. 트렌디 컬러를 약간 쓰지만 안정적인 컬러를 주로 씁니다. 트렌디 컬러는 하나 정도 쓰고 대부분 모노톤으로 가지요. 반면 「손정완」은 디테일하고 섬세하죠. 구조적이고 라인이 분명합니다. 컬러 매치가 좀더 풍성하죠.”
「SJ.WANI」에 대해 손정완씨는 재고 부담이나 직접 생산은 맡지 않는 대신 아트디렉팅 검수는 맡는다. 완판에 대해 「손정완」을 딸에게 입히고 싶던 어머니들이 딸에게 사주고, 어머니들 중에도 젊게 입고 싶은 분들이 세컨드 브랜드로 딸과 함께 구매하기도 해 판매가 잘 된 것 같다는 의견도 내놓았다.
◇ 칸딘스키와 예카테리나 궁에서 영감받은 2013 F/W 뉴욕컬렉션

「손정완」의 2013 F/W 뉴욕컬렉션 무대는 2월 9일 정오 뉴욕 링컨센터, 콘셉코리아는 2월 7일 오후 6시에 열린다. 이 일정을 위해 1월 29일 출국했다.
2013 F/W는 추상화가 칸딘스키의 구성 시리즈와 예카테리나 궁전에서 영감을 받아 준비했다. 에카테리나 궁전의 우아함과 극도의 화려함, 색채감, 또 화려한 교향곡이 연주되는 듯한 느낌의 컬렉션을 펼쳤다. 뉴트럴한 컬러와 코지 그레이를 베이스로 옥스블러드와 포스터 브라잇, 마시멜로 파스텔 등을 포인트로 사용해 예카테리나 궁의 화려한 색상과 칸딘스키 구성 시리즈의 밝은 컬러 감을 그의 아트적인 컬러 조합으로 재해석했다.
트위드, 캐시펠트와 퍼 등의 럭셔리한 겨울 느낌이 나는 소재들을 사용해 다이나믹 로맨스의 느낌을 표현했다. 여러 소재의 믹스앤매치로 다양함을 추가해 디테일한 디자인을 부각시키려 한 것이 특징이다.
“뉴욕에서 세컨드 브랜드인 「SJ.WANI」도 선보일 생각이 없느냐”고 묻자 “「손정완」이 더 단단히 뿌리내려야 하는 만큼 「손정완」에 집중한다. 안정적인 판로 개척에 최선을 다하고 싶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올해로 「손정완」이 뉴욕에 진출한지 2년. 유명인들이나 바이어, 언론의 반응이 좋은 편이다. 사업적 성공의 감도 느낀다.
“세계의 중심인 뉴욕 미국 현지에서의 반응은 ‘very gorgeous(대단히 멋지다)’는 쪽이다. 한국 고객들이 패션 감각이 세계 어디에 내놔도 최고인만큼, 한국 고객에게 사랑받으면 세계 어디에서나 사랑받을 수 있다는 것을 확인했다. 또 패션 피플들이 원하는 건 뉴욕이나 서울이나 마찬가지인 것 같다. 섹시하고, 페미닌하고 럭셔리한 옷을 좋아한다. 이 세 가지 향이 잘 조화되면 성공할 수 있다.”
“예상보다 현지 반응이 뜨거워 감사하다”는 손정완씨는 “성공 가능성을 점치고 있지만 해외 시장에서의 성공은 1,2년으로는 안 되니 더 길게 보고 있다”고 말했다.

◇ 어려서부터 옷 좋아하던 미술학도 출신
“여려서부터 옷을 좋아했다”는 손 디자이너는 열두살 나이에 엄마 손을 붙잡고 당시 명동서 유명하던 ‘송옥의상실’을 찾았다. 얼마나 까다롭던지 결국엔 본인이 커다란 링 모양 고리의 민소매 짚업 셔츠 디자인을 청해서 맞춰 입었다. 학교에서도 워낙 옷을 잘 입는 것으로 유명했다. 그는 숙명여대에서 산업공예학을 전공했다. 디자이너가 된 데는 패션 회사에 먼저 취직한 친구의 권유 덕이었다.
“패션 회사에 먼저 취직한 친구가 제게 복장학원을 한 달 정도만 다녀도 배울 수 있지만 감
각은 아무나 가질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제 칭찬을 했어요. 그 말에 솔깃해 옷을 만들기 시작했죠.”
학교 졸업 후 ‘뼝뼝’이라는 의류회사에 들어갔다. 하지만 아방가르드한 옷과 파격적인 스타일을 좋아하던 당시 그에게 기성복 회사의 일은 너무나 답답한 노릇이었다. 출근부 도장을 찍는 것도 도저히 견디기 힘들었다. 타 대학출신 디자이너들의 배타성도 싫었다. 결국 1년여 만에 회사를 그만두고 어머니에게 돈을 빌려 1987년 강남구 압구정동에 첫 매장을 열었다.
“처음엔 매장 오픈을 후회했어요. 출퇴근도 없고, 일에 잡혀 살게 되더라구요. 직원들 월급을 책임져야 한다는 것도 엄청난 부담이었구요.”
미싱사와 패턴사 등 소수의 직원과 함께 조졸하게 시작했지만, 열심히 했고, 금방 입소문이 났다. 소위 강남 멋쟁이들과 연예인들 사이에 입소문이 나면서 그의 압구정동 매장은 명소가 됐다.
재미있는 점은 처음엔 그의 옷이 아방가르드했다는 점이다. 시간이 흐르면서 그도 대중이 좋아하는 여성스럽고 우아한 옷으로 전환했다.
갓 서른을 넘겼을 때 그는 갤러리아(1990년)를 시작으로 삼풍?롯데 등 백화점들로부터 입점 요청을 받았다. 수입 브랜드의 공세에도 불구하고 갤러리아 백화점에서 20년 동안 자리를 지킨 유일한 브랜드다. 매장은 20여년간 40개로 늘어났다. 매 시즌 그의 패션쇼에는 수많은 고객이 참석해 발디딜 틈도 없는 것으로 유명하다. 세월이 흘러 이젠 「손정완」의 20~30대 고객들이 딸과 함께 그를 찾는다.
◇패션계의 의좋은 세 자매

「손정완」을 완성하는 데는 손정완 디자이너의 두 동생도 큰 힘이 되었다. 패션계의 세 자매로도 유명한 이들은 손 디자이너를 비롯, 사장 손순혜씨(51), 실장 손은희씨(48). 손정완씨는 직함없이 ‘선생님’으로 불린다. 우애가 남다르게 좋다.
모이기만 하면 ‘호호 깔깔‘ 재미있는 이들은 ‘손정완’ 숍이 위치한 서울 강남구 논현동 비손빌딩 모처에 휴식용으로 놓인 침대에 셋이 꼭 붙어 누워서도 수다를 떤다.
“두 동생의 도움이 없었으면 이렇게 자리잡기 힘들었을 거에요.”
세 자매는 서로 개성이나 장점이 서로 다른데, 모이면 서로 최고의 합이 된다.
손정완씨는 어려서부터 멋내는 것을 좋아했다. 막내 은희씨는 터키어를 전공한 후 국제복장학원에서 디자인을 공부했다. 큰 언니의 개성을 대중화하고, 시대의 흐름을 가미하는데 큰 도움을 준다. 반면 두 사람에게 부족한 경영 감각과 숫자 감각은 둘째 순혜씨가 뛰어나다. 매장이 4곳일 때까지는 버틸만했지만, 매장이 늘고 일이 커지면서 경영과 영업을 맡아줄 사람을 찾다가 결국 외국인 회사 지사장을 맡고 있던 순혜씨에게 SOS를 쳤다.
감성적인 첫째, 셋째 사이에서 이성적이고 경영적인 판단을 똑 부러지게 하는 둘째에게 자연스레 대표 자리가 돌아갔다. 잘 나가는 외국인회사 지사장 자리를 떠나 ‘손정완 부티크’를 기업으로 키워냈다.
◇결혼, 행복, 사랑… “「손정완」 영원하길”
그는 행복하다. 무엇보다 좋아하는 옷을 원하는 대로 만들 수 있어 행복하고, 옆에 두 자매들이 함께 해서 행복하다. 또 은석초등학교 동창생인 멋진 남편과 마흔이 다된 나이에 결혼, 열세살난 든든한 아들을 두어 행복하다. 인터뷰 중에도 남편의 전화가 걸려와 아들에 대해 뭔가 대화를 나누는 모습이 여느 어머니들과 다를 바 없는 모습이었다.
‘아들’에 대해 묻자, 얼굴이 더욱 화사해진다. “아들은 제 인생의 모든 것이죠”란 대답을 한다.
“사실 일에 치중해 사는 편인데, 아들이 태어난 후에는 아들에 많이 빠져 살았죠. 그런데 요즘 아들이 좀 컸다고 저를 밀어내서 섭섭해요. 하지만 누가 그러더군요. 아이에게 너무 매달리면 오히려 아이에게도 안 좋다고… 그래서 일에 더 집중하기로 했어요.”
그는 삶의 에너지는 사랑하는 마음에서 나온다고 생각한다. 옷을 사랑하고 일을 사랑하고 가족을 사랑하는 데서. 진부한 듯 보이지만, 사랑과 진심이 담겼을 때 옷도 고객들에게 사랑받을 수 있다고 확신한다.
후배들을 위한 조언을 청했더니 “촉각을 곤두세우고, 감각을 발동시키되 트렌드와 사회 현상을 수용하면서 성실하고 또 행복하게 일할 것을 권하고 싶다”고 말했다. 물론 이렇게 되려면 오랜 수련이 필요하다. 디자이너는 여성이 가질 수 있는 상위 1%에 속하는 좋은 직업이나 쉽게 성취될 수 있는 건 아니어서 끊임없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손정완씨는 “음악과 그림, 영화 등 예술적인 부분에서 영감을 많이 받고, 또 여행도 상당히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그 모든 경험과 체험을 오롯이 느끼고 디자인으로 살려내는 역량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앞으로의 목표는 뉴욕까지 갔으니 사업적인 성공을 거두고 「손정완」이 영원한 브랜드로 남는 것이다. 개인적인 취향이나 아집의 틀을 깨고 최대한 젊은 마인드로 브랜드가 노화되지 않도록 노력하는 것.
뉴욕에서 성공해서 한국 패션의 지명도를 더 높이고, 영원한 브랜드가 되길 바란다.
이화순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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