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F/W 파리 컬렉션 주제는 ‘바우하우스’, 디자인의 기본 강조

프랑스 파리는 콧대가 높은 곳이다. 자존심이 하늘을 찌른다. 특히 패션에서 파리는 세계의 중심이다. 세계 시장을 뚫기 위해선 그곳에서 반드시 성공해야 한다. 파리 진출 10여년만에 피리지앵을 매료시킨 남성복 디자이너 우영미(54) ‘솔리드’ 대표. 그는 2013 FW 파리 맨즈 컬렉션(1월 16~20일) 기간 중 토요일인 19일 오후 4시 무대에 섰다. 파리 출국 하루 전날 서울 신사동 ‘맨메이드 우영미(Men made WOOYOUNGMI)에서 그를 만났다.
◇파리를 넘어 세계로!
“처음에는 무작정 파리로 떠났습니다. 서양에서 온 남성복을 그 중심에서 인정받고 싶었죠. 글로벌 브랜드가 되고, 또 잘 자라길 바랍니다. ‘한국’ 하면 떠오르는 디자이너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하지만 2002년 그가 파리컬렉션에 처음 섰을 때는 패션 전문가들이 가장 싫어하는 일요일 오전 10시 무대였다. 토요일 밤늦게 파티를 즐기고 늦잠을 자는 파리지앵의 라이프스타일을 안다면 “악!” 소리가 저절로 나오는 시간대였다. 하지만 패션계에 이름도 잘 알려지지 않은 ‘코리아’의 남성복 디자이너로선 어쩔 수 없었다.
2012 FW 컬렉션부터 파리의상조합 정회원으로 참여해온 그는 이번 컬렉션에도 무척 신경을 썼다. 세계 4대 컬렉션을 주관하는 권위적인 이 조합은 그 명성만큼이나 까다롭다. 엄격하고 폐쇄적으로 ‘브랜드’를 운영한다. 조합이 인정한 하우스만 ‘오트쿠튀르’, ‘프레타포르테’ 라벨을 붙일 수 있고, 최고 15명 이상의 스태프를 고용한 자신만의 아틀리에를 가져야 한다. 또 1년에 두번 열리는 컬렉션에 30벌 이상의 착장을 보여야 한다. 더군다나 정회원이 되려면 기존 정회원 중 2개 이상 브랜드로부터 추천을 받아야 한다. 현재 가입된 디자이너로는 샤넬, 크리스찬 디올, 지방시, 장 폴 고티에, 스테판 롤랑, 지암바티스타 발리 등이 공식 멤버로 활동하고, 조르지오 아르마니, 베르사체, 엘리 사브 등의 외국인 디자이너 하우스는 코레스폰던트 멤버로 가입되어 있다.
파리의상조합 정회원으로 참여하는 일이 얼마나 대단한지 알 수 있다.

◇창의성이 생명, 정체성도 중요해
“비결이요? 글쎄, 열심히 앞만 보고 살았어요. 뒤돌아볼 정신도 없었어요. 디자이너에겐 창의성이 역시 제일 중요하죠. 또 정체성이 있어야죠. 겉으로 보면 디자이너가 화려하지만 늘 ‘내가 정말 좋은 디자이너일까. 창의적일까’ 스스로 되묻고 자책하지요. ”
정상에 오르는 길은 참으로 고된 일이다. 그러고보니 그는 민낯이었다. “얼굴 사진을 제공하겠다”고 한 이유가 납득이 되었다. 예쁘게 나와야 할 텐데, 화장할 시간도 없이 민낯으로 하루 24시간도 짧게 일하다가 약속 시간에 나온 참이었다.
이번 파리컬렉션의 주제는 ‘바우하우스(Bauhaus)’. 디테일을 묻자 “파리에서 결정된다”며 말을 아꼈다. 바우하우스란 2차 세계대전 직전 독일에서 시도된 새로운 개념의 미술학교였다. 미래 지향적이었던 바우하우스의 정신을 계승하겠다는 우 대표의 의지를 확인시켜준 셈이다. 추측컨대 「우영미」 다운 새 컬렉션의 탄생을 기대해봄직하다.
◇디자인 영감 위해 늘 안테나 세우고 살아야
디자인 영감은 어디서 얻는지 묻자 “정해진 것은 없어요. 눈으로 보는 모든 것에서 영감을 얻을 수 있죠. 그냥 안테나를 세우고 있으면 돼요”란 대답이 돌아왔다.
우 대표는 「솔리드 옴므(SOLID HOMME)」와 「우영미(WOOYOUNGMI)」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와 대표 디자이너를 맡고 있다. 파리에 처음 간 것은 1997년 파리에서 열리는 의상 전시회 참가차였다. 파리컬렉션은 2002년부터 시작했다. 꼭 10년만인 2011년 11월 ‘파리의상조합 정회원’이 됐다. 이로써 루이비통, 샤넬, 에르메스, 크리스챤 디올, 드레스 반 노튼, 알렉산더 맥퀸 등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세계적인 디자이너 반열에 올랐다. ‘K패션’의 대표 주자로, 어느덧 파리 컬렉션 참가가 22회째인 베테랑이다. 하지만 처음 파리에 갈 당시만해도 무모하고 저돌적인 모습으로 보였다.
“아마 이성적으로만 판단했다면 그리 못했겠죠. 제 옷이 그들에게 통할 거라고 믿고, 그곳에서 점검 받아보고 싶었어요.”
◇세계 25개국 40개 매장, 장동건 류승범 최시원도 고객

그의 옷은 댄디하다. 그러면서도 너무 포멀하지 않고, 약간의 위트감이 살아있는 옷. 군더더기 없고, 클래식하면서도 패브릭의 느낌이 좋다.
프랑스, 영국, 홍콩 등 세계 25개국 40개 매장에 수출한다. 액수는 연간 100억원대. 파리에 일년중 넉달 정도는 파리에 체류한다. 파리 마레 지역에서 단독 매장을 5년여 운영한 데 이어 잠시 문을 닫고 올해 5월에 누보 마레로 이전, 매장을 연다.
하지만 그는 아직 갈 길이 멀다고 말한다. 세계 남성들의 옷은 물론, 가방과 신발까지 토털 패션으로 다가가고자 한다.
파리 진출을 통해 배운 건 시스템화의 중요성. 스텝들과 쇼 6개월 전부터 회의를 거치고 디벨롭 과정을 거친다. 물론 메인 아이디어와 결정은 그의 몫이다.
“새로운 것을 보여줘야 한다는 데 대한 압박감이 큰 게 사실이죠. ‘뭘 보여줘야 하나’ 늘 생각에 생각을 거듭하죠. 어느 한 순간에 결정하는 건 아니에요.”

◇“내 디자인으로 글로벌 브랜드 만들고 싶어”
물론 하루 아침에 그런 영예가 찾아온 것은 아니다. 15년 전부터 꿈을 향해 노력해온 숨은 공이있다.
왜 그는 굳이 파리로 갔을까. “남성복이 있는 해외 컬렉션이 파리와 밀라노인데, 밀라노는 디자이너 브랜드를 하기에 적당하지 않아서 저로서는 파리컬렉션에 집중할 수밖에 없었죠.”
한국과 파리의 환경 차이를 묻자 “유통 구조도 너무 다르고, 라이프스타일도 다르고··· 두 나라는 참 많이 달라요”라고 답한다. 처음에는 어려움이 너무 많았지만 지금은 다 익숙해졌다 한다.
그래도 한국과 달리 파티가 많아서 옷에 대한 수요가 많은 건 반길만 했다. 또 창의성에 대해 인정해주고 그 가치 만큼 대우하는 것을 당연시하는 것은 배울 점이었다. 안타깝게 한국은 남의 창의성을 별로 인정하지 않고 눈치껏 모방하는 것에 익숙하고 아량이 넓은 편이 아닌가.
이쯤에서 다시 한번 ‘성공의 요인’을 물었다. 한동안 생각하더니 “생활을 단순화하고 작업에만 매달린 결과랄까요. 내 일에 집중해 올인했어요. 디자인하우스 규모도 안 키웠고 한 우물만 파왔어요”란 단순한 대답이다.
주로 블랙 의상에 커트형의 헤어스타일을 쭉 고수해온 그답게 생활 자체도 단순했다.
◇보보스족이었던 친정 아버지 통해 예술적 감성 키워
해외에서 인기있는 비결은 뜻밖에 그가 여성이기에 가능한 부분도 있었다. 디자이너 대부분이 본인이 입고 싶은 옷을 디자인하는데, 그럴 경우 브랜드도 나이를 먹는다. 하지만 여성으로서 남성복을 만들면 이상적인 남성상을 그리면서 그 남성이 입을 옷을 디자인하다보니 디자인도 변하거나 늙지 않고 유지된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그렇다면 그의 이상형은 어떤 스타일일까.
“인텔리전트한 남자, 예술을 좋아하고, 감성적인 남자죠. 보통 여자들이 꿈꾸는 스타일이에요.”
옆에서 누군가 귀띔한다. 건축을 전공한 그의 친정 아버지가 그런 스타일이라고.
지난해 ‘맨메이드 우영미’ 플래그십 스토어에서 파리컬렉션 데뷔 10주년 기념으로 ‘우영미 리포지터리(repository)’ 를 열었을 때 눈길을 끈 사진 중 하나가 어린 시절 가족사진이었다.

한 여름 집 마당에서 큰 개 곁에 선 아버지와 남동생을 안은 어머니, 여동생 등과 함께 찍은 어린 시절 사진. 그 속에서 아버지와 함께 검은 선글라스를 낀 채 강아지를 품에 안은 어린 시절의 우영미 대표를 목격하게 된다. 아버지와 취향이 비슷해 보인다. 똑 같이 검은 선글라스에 개를 데리고 있는 모습이다.
“1남4녀 중 둘째였는데, 가족 분위기가 늘 뭔가 만들 수 있는 문화적인 분위기였다.”
그의 부친은 실크 가운, 가죽 버버리에 파이프 담배를 피우는 멋쟁이였다. 빈티지 카를 몰던 전후 보보스족이었다.
뭘해도 디자인이 우선이었다. 집에는 엘르 잡지가 뒹굴었고, 미술 선생님이었던 어머니 덕에 집에는 뭔가 만들고 꾸밀 수 있는 재료들이 넘쳐났다. 오남매가 뭔지도 모르고 보고 자란 가족 분위기는 돈으로도 살 수 없는 문화적 자산이었던 셈이다.
그 덕에 네 자매 중 둘째(우영미 대표) 넷째(우장희 전무)는 패션을, 첫째와 셋째는 디자인·조경· 인테리어 사업을 한다. 다시 우 대표의 예술적 DNA는 우 대표의 딸 정유경(27· 「우영미」 아트디렉터)씨로 흐른다.
◇우영미-장희, 한국 패션계의 반고흐-테오도르
우 대표 옆엔 우장희(47) 전무가 있다. 마치 반고흐 옆에 동생 테오도르가 든든한 지원자였던 것처럼. 언젠가 우 대표는 “우장희 전무의 진취적인 면, 크리에이티브를 중시하는 점이 밸런스와 기본기를 중시하는 본인과 잘 조화를 이룬다”는 말을 했다.
두 자매는 2012 FW 파리 컬렉션에서 미국 사실주의 작가 에드워드 호퍼의 ‘밤을 지새우는 사람들(Nighthawks)’ 속의 쓸쓸하고 공허함이 담긴 도시의 고독한 일상의 순간에서 짙은 외로움의 미를 주제로 쇼를 펼쳐 큰 호평을 받았다. 파리의상조합 정회원으로서 펼친 첫 컬렉션이었기에 반향은 더욱 컸다. 르피가로지는 지난해 1월 23일자에서 ‘컷과 디테일에서 볼 수 있는 밀리터리룩을 통해 한국 디자이너(우영미)의 컬렉션은 더욱 짜임새 있고 깔끔한 면을 보여주고 있다’고 평했다.
그러나 그도 처음엔 여성복 디자이너였다. 성균관대 의상학과를 졸업한 후 LG패션의 전신인 반도패션에서 여성복 담당을 했던 것. 그러나 너무 재미가 없고 지루해서 그만두었다.
“제가 중성적인 성격이어서 그런지 취향도 중성적이에요. 그래서 여성성의 궁극에 간 옷은 저와 잘 안 맞아요. 남성을 이해하는 게 더 좋더군요.”
결국 남성복으로 선회했다. 솔리드옴므란 남성복 매장을 1988년 서울 압구정동에 냈다. 당시 오렌지족으로 불리던 유학파들이 그의 주 고객이었다.
“제 옷 취향과 다른 수많은 일반 사람 취향에 맞는 옷을 만들 수도 있었겠지요. 하지만 내 취향을 좋아해줄 더 많은 고객을 찾고 싶었어요. 내 옷이 과연 세계적인 경쟁력이 있을까 궁금했고, 세계 시장에 옷을 팔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알고 싶었죠.”

유럽 바이어들 중에 그의 옷을 좋아하는 이들이 많다. 영국 GQ매거진 기자 조지나 월터는 “우영미의 옷은 역동적이어서 참 좋다”고 말했다. 그런가하면 1년여전 영국의 셀프리지백화점 팝업스토어에서는 우영미의 팬을 자처한 5명의 영국 아티스트가 그의 코트를 재해석해 판매하고, 기부하는 특별 이벤트를 벌이기도 했다.
세계 명품 디자인 브랜드 「우영미(WOOY OUNGMI)」가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사진제공 ‘솔리드’>
이화순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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