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요한 시합을 앞둔 달리기 선수가 출발 신호를 기다리고 있는 심정이랄까요. 45세 ‘드맹’의 시작은 이제부터입니다.”
8년 전 저서 ‘무명으로 만든 옷’ 출간 및 기념 전시 이래로 국내에서 대외적인 활동이 없던 디자이너 문광자씨(66). 목화씨를 들여온 문익점의 23대 후손인 그는 지난 6일 서울 청담동 송은아트스페이스에서 데뷔 45주년 기념 패션쇼를 가졌다. 유산(heritage)을 콘셉으로 한 쇼에서 무명을 다양한 형태로 재탄생시킨 그의 작품을 선보였다. 아울러 딸 이에스더씨(41)가 「드맹」의 전통을 이어가겠다는 의지를 공식적으로 밝히는 자리이기도 했다.
문씨는 “많은 소재 중에서도 특히 무명은 담백하고 고상합니다. 인격으로 비유한다면 순수하고 믿음직스러운 사람에 비유할 수 있겠죠. 무명의 올곧음은 부드러우면서도 위엄이 있어 좋아합니다"라고 운을 뗀 뛰 “22년간 무명만 바라보고 살았다”라고 덧붙이며 ‘만남’이라는 표현을 통해 애틋한 마음을 드러냈다. 그는 전국 각지에서 모은 무명 800필을 소장하고 있다. 국내에 남아있는 무명은 전부 그가 갖고 있는 것. 다른 것 보다도 소재에 대한 욕심이 큰 문씨는 마음에 드는 소재를 발견하면 전부 구입해서 소장한다.
그가 쓰는 소재는 국적, 형태, 용도를 불문하고 매우 다양하지만, 이번 컬렉션에는 아끼던 무명으로 65벌의 의상을 전부 제작했다. 지난 번 전통 염색 전문가 한광석씨와의 협업으로 천연 염색 무명을 일부 활용했던 것과 달리 이번에는 있는 그대로의 무명을 사용한 것이 특징. 무명 본연의 느낌을 살리는 것에 중점을 두고 레이스, 자수, 실크 등 다른 소재와 적절히 믹스매치한 디자인을 선보였다.
“깨끗이 세탁하고 푸새를 한 무명은 세월의 흐름이 느껴지지 않을 정도여서 놀라웠어요. 20년이 넘게 무명을 연구하고 있지만, 정말 어렵고 까다로운 소재예요. 다른 소재와의 어울림을 통해 ‘무명이 이렇게 세련될 수도 있구나’하는 것을 표현하고 싶었어요.”
오롯이 무명 한 길을 걸어온 문광자씨는 오뜨쿠튀르 디자이너로 인정 받고 있는 사람 중 한 명이다. 이러한 평가는 2003년 미국 이민 100주년을 기념해 뉴욕 소호의 앤섬 갤러리에서 진행한 전시회로부터 시작된다. 당시 아트 웨어의 대모로 불리는 줄리 섀플러 데일은 그의 무명 드레스에 깊은 감명을 받아 뉴욕의 줄리 아티잔스 갤러리 예술품으로서 전시를 요청하기도 했다. 이를 계기로 미국 아트 웨어 시장에 진출한 문씨는 이듬해 하와이 비숍박물관에서 서양화가인 아들 이성수씨와 함께 30점의 무명 드레스를 선보였다. ‘천으로 만든 조각 같다’는 호평을 받으며 상업적 디자이너가 아닌 아트웨어 작가로서 자리매김을 확고히 하게 된 것이다.
문광자 디자이너가 45년간 「드맹」을 유지해온 데는 가족의 도움이 컸다. 특히 딸 이에스더씨는 「드맹」을 스타 브랜드로 키우기 위해 패션 마케팅을 전공했고, 조력자의 역할을 톡톡히 해왔다. 이씨는 마케팅, 영업 뿐 아니라 디자인에도 참여했다. 「드맹」의 정통성을 유지하되 약간의 변화를 주면서 젊은 층을 공략한 것이다. 발목까지 내려오는 스커트를 잘라서 무릎 길이로 만들거나, 힙을 덮는 재킷도 짧게 줄여 바지와 코디해 40대가 입을 만한 옷으로 만들었다. 「드맹」을 찾는 고객의 연령층이 30~60대로 넓어질 수 있었던 것도 이 때부터다.
“예술 작품을 만드는 작가가 되고 싶다”고 말하는 문광자 디자이너는 후배들을 향한 조언도 아끼지 않았다. “좋은 옷은 보기에 아름다워야 할 뿐 만 아니라 입어서 편해야 한다. 입는 사람의 품격을 높여주는 옷이 최고의 옷이라고 생각한다. 디자이너가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꾸준히 하면서 깊이 있게 파고 들어가다 보면 작품의 완성도는 자연히 높아진다. 다른 것들에 흔들리지 말고 자기만의 철학을 만들어 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힘주어 말했다.
정민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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