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형만한 아우가 없다’는 말이 패션계에서는 적용이 안 된다. 최근 하이엔드 패션계의 트렌드를 돌아보면 시그너처 라인의 매출을 능가하는 세컨드 라인 또는 디퓨전 라인의 활약이 눈부실 정도다. 실제로 시그너처 라인의 후광을 바탕으로 좀 더 ‘트렌디하고 편한 가격’에 선보이는 세컨드 라인은 뛰어난 소비자 소통 능력을 발휘하며 시그너처 라인의 제한적인 시장 소통 능력을 머쓱하게 한다.

세컨드 라인의 위상 갈수록 커져
뛰어난 디자인 감성과 테일러링 능력을 자랑했지만 오랜 매출 부진에 시달렸던 故 알렉산더맥퀸의 자존심을 살렸던 것은 웨어러블한 세컨드 라인 ‘McQ’였고, 지금은 돌체&가바나에 통합되었지만 D&C의 인지도와 글로벌 매출은 돌체&가바나를 위협할 정도였다. 실제로 런던 패션주간에 펼쳐진 McQ 캣워크쇼 무대에는 시그너처 라인을 능가하는 드라마틱한 무대와 톱 모델이 화려함을 더했고, 프론트로에는 PPR의 CEO가 참석해 럭셔리 제국 PPR 그룹 안에서 McQ의 중요성을 가늠할 수 있었다.
또한 밀라노 패션주간을 빛내는 로베트로까발리의 ‘저스트까발리’, 아르마니의 ‘엠포리오아르마니’ 제냐의 ‘Z Zegna’, 알베르토페라리의 ‘필로소피’ 또한 패셔니스타들의 사랑을 받는 대표적인 세컨드 라인으로 시그너처 라인과 더 이상 결부되지 않는, 독특한 패션 영역을 확보하고 있다.
파리 패션주간의 즐거움을 더하는 클로에의 세컨드 라인 '시바이클로에’도 활짝 핀 세컨드 라인의 하나다.
세컨드 라인의 캣워크 쇼에 호의적인 밀라노나 뉴욕 패션주간과 달리 보수적인 시각을 견지하는 파리 패션주간의 ‘완고함’을 생각하면, 캣워쇼 일정에 이름을 올린 ‘시바이클클로에’가 파리 패션가에서 차지하는 위상을 짐작할 수 있다.
특히 10년의 전통을 자랑하는 시바이클로에의 캣워크쇼는 온라인 라이브 스트리밍으로 생중계되어 글로벌 시장에서 소통 능력이 더욱 높아질 전망이다.

구찌, 샤넬, 루이비통은 디퓨전 라인 론칭 안해
하지만 구찌나 샤넬, 루이비통의 디퓨전 라인이 탄생될 가능성은 천지가 개벽해도 ‘없다’. 이들 글로벌 럭셔리 브랜드는 그 자체가 이제 하나의 신화로 자리하고 있고 브랜드 자체 내에서 울트라 럭셔리가 분지되어 있는 상태라 디퓨전 라인을 통해 브랜드 이미지를 저하시킬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즉 소재나 라인에 따라 동일 브랜드 내에서 가격대 차이를 두기 때문에 정통파 고객들의 브랜드 애착도를 손상시킬 수 있는 대중적인 라인-디퓨전 라인에 도전할 이유가 없다.
파리 패션주간이 세컨드 라인을 끌어안는데 인색한 이유도 그 때문이다. 전통적인 오뜨꾸튀르를 기반으로 한 파리 패션계는 기성복, 즉 ‘프레따포르떼’까지만 패션의 적자로 생각하는 분위기. 따라서 이미 시장성을 담보로 한 프레따포르떼 브랜드의 세컨드 라인까지 포용하기에는 자부심이 허용하지 않는다.
럭셔리 제국들의 입장도 비슷하다. 고가의 하이엔드 브랜드는 가격과 디자인, 그리고 상징성에서 이미 ‘오뜨꾸튀르’ 레벨인 만큼 세컨드 라인 론칭은 곧 브랜드 이미지 손상과 이어질 수 있다고 본다.
때문에 세컨드 라인을 통해 브랜드 이미지를 손상시킬 필요가 없다는 입장이다.
그 결과 프라다는 미우미우를 ‘세컨드 라인’이 아닌 ‘독립 브랜드’라 칭하고, LVMH는 ‘마크바이마크제이콥스’를 '마크제이콥스’와 별개의 라인으로 분류한다. 그만큼 세컨드 라인은 돈 되는 사업인 동시에 럭셔리 브랜드의 이미지 저하를 가져올 수 있는 뜨거운 감자라 할 수 있다.
디퓨전 라인 논란 차단한 에르메스의 ‘샹지아’
울트라 럭셔리의 상징, 에르메스는 조금 독특한 노선을 취하고 있다. 에르메스 자체의 디퓨전 라인은 없지만 중국 마켓을 타깃으로 한 로컬 브랜드 ‘샹지아’를 론칭한 것. ‘샹지아’는 중국 럭셔리 소비자들의 입맛에 맞는 제품을 중국에서 생산하는 중국을 위한 로컬 브랜드로 본격적이 디퓨전 라인이 아니다. 즉 중국 현지화 전략 브랜드를 라인업에 추가, 매출 확대를 의도한 것으로 바라보며 좋을 듯 하다.
지나치게 부담스러운 에르메스의 가격대를 감안해 일종의 징검다리 가격대의 ‘샹지아’를 론칭한 것으로 에르메스의 저통성과 가격을 손상할 위험없이 중국 로컬 시장의 틈새를 공략하는 방안이다.
일부 럭셔리 업체들이 중국 마켓을 타깃으로 한 로컬 전용 라인 론칭을 고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정식 디퓨전 라인이 아닌, 중국 전용 럭셔리 ‘디퓨전 라인’의 다양화가 이뤄질 가능성도 열려있다. 따라서 디퓨전 라인은 정통 럭셔리 브랜드가 시도하기는 위험하고, 브랜드 네임을 구축한 하이엔드 디자이너에게 적합한 포맷이라 할 수 있다.
하이엔드 디자이너에 유리한 포맷
'돈 되는 사업’인 세컨드 라인에 대한 시각에 부담을 느끼는 것은 소니아리키엘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H&M과 콜래보레이션 라인을 론칭하며, 하이스트리트 마켓에 대한 거부감을 완화시킨 소니아리키엘이지만 ‘돈’ 보다 ‘디자인의 다양성’을 위해 세컨드 라인을 론칭했다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즉 시그너처 라인보다 큐트하고, 프레피한, 신선한 디자인으로 구성된 ‘차별적’인 라인의 필요성으로 인해, ‘소니아바이소니아리키엘’을 진행하고 있을 뿐 ‘돈 되는 시장’을 노려 낮은 가격대의 세컨드 라인을 운영하는 것이 아니라는 설명이다. 특히 H&M과 한정본 라인을 론칭한 것을 의식하듯, ‘소니아바이소니아리키엘’은 시그너쳐 브랜드의 ‘정통성과 이미지를 고스란히 담은' 보다 젊고 에너제틱한 라인이라는 점을 강조, 세컨드 라인이 피해가기 힘든 ‘시장성'에 부담을 느끼는 모습이다.
간단히 말해서 세컨드 라인은 시장 확대를 통해 사세를 키워야 하는 하이엔드 디자이너들에게 가장 좋은 포맷이자, 소수의 고객을 타깃으로 한 럭셔리 브랜드가 감내하기는 껄끄러운 ‘상업적’인 포맷이라 할 수 있다. 어찌 보면 아이러니 한 일이지만 럭셔리 브랜드의 태생이 ‘소수를 타깃으로 한 고가의 상품’인 만큼 매출 구축에 유리한 세컨드 라인을 ‘인정’하기에는 자긍심이 허락을 하지 않는다.
‘상업성’이 부끄러운가요?
그 결과 시그너처 라인과 분리된 ‘독립적 라인’이든, 대 놓고 세컨드 라인을 인정하는 디자이너든 모두 세컨드 라인이 시그너처 라인과 버금가는 ‘높은 퀄리티와 디자인 감성’을 담고 있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이 같은 부연 설명은 그 만큼 하이엔드 브랜드들이 매출 구축의 절대적 사명과 ‘브랜드 위상’ 사이에서 갈등하고 있다는 증거가 된다. 이런 현상은 ‘매출은 좋지만 상업성은 싫다?’라는 논리라고나 할까? ‘시술’은 성형 수술이 아니라는 연예인들의 주장과 비슷한 맥락이다.
예정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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