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늘씬한 스포츠카가 남성의 전유물이 아니듯 패션도 더 이상 여성들의 놀이터가 아니다. 21세기 패션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는 패션을 통해 자신을 표출하려는 남성 파워가 활화산처럼 폭발하고 있다는 점이다. 권력과 멋진 스포츠카, 그리고 늘씬한 미녀가 등장하는 스파이 영화가 현실로 옮겨진 것일까? 맨스웨어 시장, 특히 럭셔리 맨스웨어 시장은 아우토반처럼 스피디한 매출 속도전을 펼치고 있다.
이머징 마켓의 젊은 부자층 주목
럭셔리 맨스웨어 마켓의 무한 질주를 주도하는 힘은 중국을 위시한 이머징 마켓의 높은 수요다. 미국과 일본의 남성 백만장자 중 70~80%가 45세 이상인 반면 중국은 45세 미만의 '젊은 부자'들이 80%를 차지한다.
이들 '젊은 부자'의 특징은 패션을 통해 자신의 신분과 경제적 위치를 드러내는데 열정적일 뿐 아니라 패션 자체를 즐긴다. 그만큼 트렌드에도 민감하고 지속적인 수요를 구축하는 것이 특징이다.
그 결과 이들 '젊고 부유한 남성들'을 타깃으로 한 럭셔리 아이템이 럭셔리 마켓의 절반을 차지할 정도로 확대되고 있으며 의류부터 풋웨어까지 거의 모든 부문에서 여성 럭셔리 마켓을 능가하는 실적을 보이고 있다. 특히 중국은 유럽 럭셔리 남성 브랜드의 자연 성장률이 20%에 달할 정도로 막강한 성장 탄력을 보이고 있다.

미국과 유럽도 비슷한 상황이다. 지난해 코치의 맨스 비즈니스는 두 배나 증가한 실적을 자랑했고 코치의 글로벌 비즈니스에서 맨스웨어가 차지하는 비율이 5%로 늘어났다. 금액으로 환산하면 2억 달러에 달하는 수치다. 코치는 맨스웨어 마켓의 지속적인 수요 증가에 힘입어 코치의 글로벌 매출 중 맨스웨어 매출 비중을 15% 끌어올릴 계획이다.
또한 에르메스는 2년 전 뉴욕에 문을 연 글로벌 남성 매장 한 곳의 매출의 미국 전체의 매출 평균 성장률을 뛰어넘었을 정도로 남성 마켓의 높은 수요를 입증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르봉마르세, 벅도프굿맨 등 고급 백화점들은 하이엔드 맨스웨어 매장 부지를 확대하는 작업을 진행했고, 쁘렝땅 백화점은 남성 럭셔리 액세서리 코너를 오픈했는가 하면 해로즈백화점은 새로 꾸민 남성 슈즈 매장 안에 다양한 컬러와 가죽을 자랑하는 럭셔리 풋웨어와 액세서리 룸을 구비하며 하이엔드 맨스웨어 마켓의 열매 수확에 나섰다.
PPR, 제임스본드 수트 ‘브리오니’ 인수
럭셔리 제국 LVMH와 PPR의 움직임은 이 같은 흐름을 잘 대변해 주고 있다. 패션 중심의 사업 구조로 재편성된 PPR은 영화 007 시리즈의 주인공, 제임스본드의 수트로 유명한 브리오니를 인수했고, LVMH는 남성복 풋웨어 라벨 벌루티를 레디투웨어로 확대하는 사업의 지휘자로 제국의 후계자 앙뜨완느아르노를 임명했다.
이탈리안 테일러링의 대명사 브리오니의 특징은 넓은 어깨와 가는 허리가 특징으로 세련된 남성미는 물론 섹시한 매력이 살아있다. 영화 ‘007 카지노 로열’에서 탄탄하고 정돈된 근육질을 자랑했던 다니엘크레이그에게 차가운 섹시미를 더해준 것이 바로 브리오니의 깔끔한 테일러링이었다.

브리오니가 아니었다면 다니엘크리에그는 그저 그런 터프한 마초처럼 보일 수도 있었지만 탄탄한 근육질 체형을 물 흐르듯 감싸준 슬림 수트 속에서 그의 거친 매력은 시크하게 순화되었다. (브리오니는 영화 개봉에 맞춰 제임스본드를 테마로 한 턱시도를 한정 판매했는데, 실버라이닝에 ‘James Bond’ 글자가 스티치 된 턱시도 한 벌의 가격은 무려 4760달러에 달했다.)
한편 1996년 작품 ‘007 골든아이’에서 제임스본드 역할을 한 피어스브로스난은 다니엘크레이그와 달리 슬림한 체구를 갖고 있었고, '넓은 어깨와 가는 허리선'이 돋보이는 브리오니의 수트와 절묘한 시너지를 이끌어냈다.
PPR이 브리오니 인수에 공을 들인 이유도 탄탄한 근육질이든, 슬림한 체형이든 입는 사람의 장점을 부각시키는 브리오니의 테일러링이 럭셔리 맨스웨어 마켓 확대에 세력을 넓히는 효과적인 무기가 될 것으로 판단했기 때문이다.
브리오니는 현재 직영 매장 32개를 포함, 74개의 글로벌 유통망을 갖고 있으며 PPR의 지원 아래 중국을 비롯한 이머징 마켓의 맨스웨어 마켓을 집중 공략할 방침이다.
LVMH, 벌루티 맨스웨어 전열 보강
PPR이 브리오니 인수를 완료하며 맨스웨어 마켓 공략 지도를 완성했다면, LVMH는 벌루티(Berluti)를 레디투웨어로 확대해 맨스웨어 전열을 보강하는 작전을 쓰고 있다.
1895년 론칭된 벌루티는 남성용 럭셔리 맞춤 슈즈 브랜드로 지난 2년간 레디투웨어/액세서리 라인을 론칭하며 럭셔리 맨스웨어 라이프 스타일 브랜드로 기반을 다지고 있다. 즉 벌루티의 정통성과 럭셔리한 이미지를 맨스웨어 전반으로 확대하는 전략으로 파리패션주간에 첫 선을 보인 벌루티 맨 컬렉션은 럭셔리하고 우아하고 세련되고 '젊은' 분위기가 신선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하지만 런웨이에 오른 모델들은 25~76세까지 다양한 연령층으로 구성되어, 할아버지와 손자 세대를 모두 아우르는 타깃 층을 노리는 LVMH의 야심을 읽을 수 있었다.
이를 반영하듯 벌루티를 본격 맨스웨어 라벨로 진화시키는 작업을 지휘해 온 앙뜨완느아르노는 '정통성과 장인 정신'을 강조하는 광고를 통해 '순간적 화려함이 아닌 지속적인 가치'를 투영하는 벌루티 맨의 이미지를 강조했다.
오직 남성만을 위한 매장 줄이어
맨스웨어 마켓에 대한 PPR의 야심은 남성 전용 콘셉 매장 구축으로 이어지고 있다. 하이엔드 맨스웨어가 럭셔리 시장을 중국에 구찌와 보테가베네타 남성 전용 콘셉 매장을 오픈, 가능성을 테스트한다는 PPR의 전략에 따라 보테가베네타는 선양 래배뉴쇼핑센터에 첫 번째 남성전용 매장을 오픈했다. 또한 5월에는 미국 매디슨 애너뷰에 남성전용 매장을 오픈, '남성들만의 쇼핑 공간'이 매출 구축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테스트할 방침이다.
루부탱도 예외는 아니다. 섹시한 여성, 성공한 여성의 상징 루부탱은 지난해 8월 파리에 첫 번째 맨스웨어 부띠끄를 오픈하며 맨스웨어 비즈니스 확대의 신호탄을 알렸다. 루부탱의 전체 사업에서 맨스웨어 비즈니스가 차지하는 비율은 5%가 채 안되지만 이를 15~20%까지 올리겠다는 것이 루부탱의 목표로 맨스웨어 마켓의 시장성에 대한 자신감을 읽을 수 있다.
남다른 품격을 찾는 남성들을 타깃으로 한 맞춤 주문 라인 마켓의 확대도 눈에 띠는 부분이다. 루이비통은 밀라노 몬테나폴레오네 매장에서 남성용 맞춤 주문 슈즈 서비스를 시작했고 올 6월에는 상하이 매장에도 맞춤 서비스를 진행한다.
알렉산더맥퀸 또한 160년 전통을 자랑하는 세빌로우의 신사복 숍, 헌츠맨과 손잡고 맞춤주문 맨스 수트 라인 ‘알렉산더맥퀸바이 헌츠맨’을 론칭, 차별적 품격을 찾는 울트라 럭셔리 맨스 마켓을 공략에 나선 경우.
맞춤 주문 라인 만큼 패브릭부터 바느질, 디테일까지 오뜨꾸뜨르적 감성이 물씬하며 섬세한 손맛이 럭셔리한 품격을 한층 드높인다.
글로벌 럭셔리 맨스웨어의 대결전을 알리는 PPR과 LVMH의 부산한 움직임, 남성 전용 매장과 고가의 맞춤 주문 라인 확대 등 결론은 간단하다. 한 마디로 ‘럭셔리 맨스웨어의 전성시대’가 활짝 열린 것이다.
예정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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