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 의식에 몰려있던 이탈리아 남성복 업계가 회복되고 있는 것일까? 글로벌 불황과 중국산 저가 의류의 공세에 밀려 적자를 면치 못했던 이탈리아 남성복 업계가 2011년 말 3.4%의 수익 상승을 이뤄내며 3년간 이어지던 적자 고리를 끊었다. 하지만 ‘Made in Italy’의 자긍심을 이끌어온 이탈리아 제조업체들은 매년 8.9% 이상 생산력을 잃고, 대체 수입은 증가하고, 원사 가격은 상승하고 있어 수치상의 흑자는 현실과 다소 거리가 있다. 실제로 이탈리아 맨스웨어 업계는 소비 위축과 높은 임대 비용, 하청으로 쌓은 남성복 제조 기술과 낮은 인건비와 원사를 무기로 글로벌 시장을 공략하는 중국 업체들의 물량 공세, 그리고 ‘Made in Italy’의 밸류가 기대만큼의 힘을 발휘하지 못하면서 심각한 불안을 호소하고 있다.
정치·경제 동반 위기…이탈리아 패션계 침울
사실 이탈리아의 경제 위기는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이탈리아 특유의 가족 중심형, 소규모 제조업은 1990년대 값싼 인건비와 대규모 노동력을 무기로 한 아시아 제조업체들과의 경쟁에서 치명타를 입으며 ‘Made in Italy’ 패션의 균열을 알리는 신호탄이 되었다.

또한 글로벌 금융 위기가 강타한 2007년 이후 3년간 극심한 매출 위축으로 유동 자본 압박에 시달렸고, 중국을 위시한 이머징 마켓의 럭셔리 수요 증가에 힘입어 2010년 잠시 매출이 회복되는 듯했지만 그리스 발 유로존의 재정 위기와 이탈리아 정치적 혼돈, 그리고 누적된 국가 부채가 어깨를 짓누르며 불안의 늪을 쉽게 빠져 나오기 힘든 상황이다. 특히 이탈리아 국채 금리가 급등하며, 가뜩이나 불안한 유로존 재정 위기가 가속화 되고 있어 2~4월에 집중된 대규모 국채 만기를 감안하면 이탈리아 국내 패션 시장이 쉽게 활력을 얻기는 힘들다.
프랑스는 럭셔리 제국의 힘 강화
정치적, 경제적 환경의 악화 속에 이탈리아 패션계의 위기감이 심화되자 하이엔드 패션의 축은 프랑스로 넘어가 밀라노 패션주간보다 파리 패션주간에 더 많은 유명인이 몰려들었다.
불가리-에밀리오푸치는 LVMH, 구찌-보테가베네타-브리오니는 PPR 등 유명 이탈리아 브랜드들은 프랑스 럭셔리 집합 제국 산하에서 성장을 꾀하고 있다. 또한 지난해 럭셔리 스키웨어로 유명한 몽클레어가 프랑스 투자 업체 유라제오에 45%의 지분이 매각되며 이탈리아 패션계에 대한 프랑스의 입김이 갈수록 강화되는 분위기다.

그나마 프라다와 페라가모, 아르마니, 발렌티노, 제냐, 돌체&가바나, 로베르토까발리 및 활력을 되찾는 베르사체가 이탈리아 패션의 자부심을 위로하고 있지만 거대 자본과 유통망, 전략으로 무장한 거대 집합 제국이 주도하는 하이엔드 업계에 가족 사업형, 혹은 단일 패션하우스가 대항력을 갖추기에는 한계가 있다.
해외 수요 증가 덕 아동복 박람회 성황
이런 와중에 최근 진행된 피린체 아동복 박람회(Pitti Bimbo)는 해외 방문객들의 성황 속에 희망을 전달한다. 실제로 러시아와 일본, 브라질에서 참여한 방문객들은 각 14.5%, 80%, 18% 증가했고 미국 17%, 터키15%, 우크라이나 18%, 한국 15% 등으로 국제 아동복 교류 거점으로 이탈리아의 활기를 뒷받침한다. 또한 박람회 장을 찾은 8000여명의 바이어 중 2700여명이 해외 버이어들로 글로벌 유명 부띠끄와 백화점, 리테일러들도 모두 참석한 것으로 나타났다. (베르사체 또한 0~12세를 타깃으로 한 영 베르사체 컬렉션으로 활기를 더했다.)
흥미로운 점은 홍콩과 덴마크, 폴란드, 이스라엘, 쿠웨이트, 카자흐스탄 등 상대적으로 발길이 뜸했던 해외 마켓의 바이어 및 방문객의 숫자가 증가한 반면 스페인, 그리스, 포르투칼, 이탈리아 등의 참가 숫자가 현저히 감소, 재정 위기에 시달리는 유로존의 상황을 여실히 드러냈다는 사실. (Sistema moda Italia 자료)
한편 2011년에는 0~14세 아동을 타깃으로 한 이탈리아 니트웨어 및 패브릭 의류(언더웨어, 액세서리 포함) 부문의 활약이 돋보였는데 이는 2008년 이후 3년간 고전을 면치 못했던 글로벌 경기 상황이 개선된 데다 이머징 마켓의 고급 아동복 수요가 증가한 것이 유리하게 작용했기 때문이다.
2011 이탈리아 아동복 부문은 4.1% 수익 성장을 기록, 3년간의 적자 흐름을 벗어났지만 이탈리아 국내 시장은 여전히 위축된 상태다.
맨스웨어 “중국을 믿어봐”
아이러니하게도 현재 이탈리아가 믿을 구석은 중국이다. 중국은 럭셔리 남성복 매출이 여성복 매출의 두 배에 달하는 남성 주도적 시장으로서 럭셔리 하이엔드 맨스웨어 업계의 이상향이다. 이미 중국에 안착한 제냐는 물론 로베르토까발리, 돌체&가바나 등은 중국 소비자들의 강한 수요가 전체 매출의 낙관적 상승을 가져올 것으로 예상하고 있고, 살바토레페라가모는 경기 불안과 상관없이 중국을 위시한 아시아 마켓 매장 확대를 지속할 계획이다.
아시아와 함께 러시아 또한 우울한 이탈리아 패션계에 긍정의 날개를 달아주는 힘으로 밀라노 패션가는 아시아와 러시아 바이어들의 지속적인 구매 발길이 올해 이탈리아 패션의 동력이 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이탈리아 패션의 2011년 매출은 66억5400만 달러로 올해 상반기 매출은 6% 정도 상향될 것으로 기대된다.
그래도 할리우드는 伊 디자이너 좋아해
상황이 어떻든 이탈리아 디자이너에 대한 할리우드의 사랑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할리우드 레드카펫에서 스타들을 빛내온 이탈리아 디자이너들은 2012 골든글로브 시상식에서 여전히 진가를 발휘했다. 시상식에 참석한 안젤리나졸리는 아름다운 커팅이 돋보이는 화이트 컬러의 원숄더 가운을 입고 등장, 여신 같은 매력을 더했는데 이 의상은 베르사체 꾸튀르 컬렉션, 아뜰리에베르사체의 제품이었다. 그녀의 곁을 빛낸 브래드피트는 페라가모의 수트를 선택, 할리우드 핫 커플의 핫 쵸이스는 이탈리아 디자이너로 귀결된다.

한편 제시카알바는 비드 자수가 장식된 구찌 핑크 스트랩리스 드레스+불가리 팔찌를, 케이트베켄세일은 로베르토까바리의 핑크 스트랩리스 가운을, 조지클루니의 여자 친구 스테이시키버는 발렌티노 드레스, 영화 "Help로 주목받은 비올라데이비스는 에밀리오푸치의 가운을, 매력적인 눈망울의 쥬이드샤넬은 프라다의 블랙+그린 자수 실크 드레스로 독특한 매력을 강조했다. 모델 출신의 여배우 에반레이첼우드는 구찌의 블랙+그린 깃털 장식 가운을 선택해 레드카펫에서 차별적 아름다움을 강조한 경우다.
니콜키드맨은 클래식한 베르사체 골드자수 드레스를, 셀마헤이엑은 구찌, 프리다핀토는 프라다를 선택해 2012 골든글로브 시상식은 문자 그대로 이탈리아 디자이너가 ‘지배’하는 느낌이었다.
정치, 경제적 혼돈과 시장의 변화 속에서 이탈리아 패션이 쉽지 않은 한 해를 보낼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오랜 방황 끝에 다시 패션의 중심에 돌아온 베르사체처럼, 성공적 IPO로 이탈리아 패션의 자부심을 과시한 프라다와 페라가모처럼, 중국 하이엔드 맨스웨어를 지배하고 있는 에르메네질도제냐처럼 이탈리아 패션의 저력은 아직도 건재하고 있다.
예정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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