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구 어패럴 업계들이 중국 진출의 교두보로 삼아온 홍콩이 묘한 딜레마에 빠져 있다. 샘소나이트, 프라다가 중국 및 아시아 소비자와 투자자를 의식해 홍콩에서 IPO를 진행한 데 이어 젊고 실용적인 럭셔리 브랜드 코치의 홍콩 주식 상장 가능성이 대두되고 있지만 서구 어패럴 업체들 사이에서 홍콩의 매력이 시들해졌다는 분석이 제기되고 있는 것.
중국 본토로 직진 움직임
럭셔리 업계를 비롯한 서구 어패럴 브랜드들은 그간 홍콩을 중국 본토 시장 진입에 대한 교두보 내지 실험대로 활용해왔다. 중국 본토에 진입하기 전에 홍콩에 매장을 오픈, 본토 여행객들의 쇼핑을 유도하고 본토 시장에 진입 및 유통망 구축을 위한 전략과 노하우를 축척하는 것이 중국 시장에 접근하는 일반적인 관행이었다.
하지만 홍콩을 경유하지 않고 곧바로 상하이나 베이징에 유통망을 개설하는 업체가 증가하면서 ‘본토 경유지’로서의 홍콩이 누렸던 프리미엄이 약화되고 있다. 실제로 갭은 홍콩을 경유하지 않고 홍콩과 베이징에 곧바로 매장을 오픈하기로 결정, 패션계의 ‘중국 직진’ 트렌드를 주도하고 있다.
사실 중국에 직접 유통망을 구축하는 전력의 시발점은 일본 어패럴의 자존심, 유니클로였다. 유니클로는 2002년 상하이에 매장을 오픈, 중국 시장에 본격 진입했고 2005년이 되어서야 홍콩에 매장을 오픈하는 역 발상을 통해 중국 대도시 어디서나 찾을 수 있는, 가장 친근하고 수요 높은 브랜드로 유니클로를 중국 본토에 안착시켰다. 유니클로는 매년 100개 신규 매장을 오픈, 중국 본토 시장을 더욱 확대하고 중국 소비자들의 브랜드 충실도를 탄탄히 구축할 계획이다.

이처럼 홍콩을 경유하지 않고 중국 본토에 직접 유통망을 오픈하는 추세는 중국 시장의 인프라 구축이 한 몫을 한다. 중국 본토 대도시에 서구 어패럴 업체가 매장을 오픈할 수 있는 쇼핑몰과 백화점이 늘고 있어 중국 소비자를 현지에서 직접 만나기가 한결 쉬어졌다.
반면 홍콩은 세계에서 두 번째로 높은 매장 임대료를 자랑하고 있어 홍콩에서 사업을 펼치는데 부담을 느끼는 업체들이 늘고 있다. 따라서 중국 본토 마켓의 성장성을 생각하면, 중국 시장으로 곧바로 진입하는 편이 사업비 절감 및 효율적인 마켓 관리에 유리하다는 판단이 힘을 얻고 있다.
그럼에도 매력적인 홍콩
그렇다면 홍콩의 매력은 과거로 사라지는 것일까? 그럴 리가 있나. 홍콩은 매년 2~ 300만 명의 본토 관광객들이 몰려든다. 올해는 그 숫자가 25%나 증가될 것으로 예상되는 소중한 시장이다. 특히 중국의 높은 럭셔리 제품 관세를 피해 홍콩에서 쇼핑을 선택하는 본토 소비자들이 많아 홍콩은 서구 럭셔리 업계에게 고마운 존재가 아닐 수 없다.(홍콩은 동일 럭셔리 아이템에 부과되는 관세가 중국 본토보다 40%나 낮다.)
일례로 홍콩에서 매장을 임대하고 있는 주얼리 업체들의 경우 본토와 비교할 때, ㎡당 평균 10배나 많은 거래가 이뤄지고 있어 매출 면에서 높은 임대료를 상쇄하고도 남는다. 홍콩 주식 시장을 장악하고 있는 투자자들과 중국 본토에 리테일망을 확보하고 있는 디스튜리뷰터들 또한 홍콩을 매력적인 ‘교차로’로 자리하게 하는 힘이다.
즉 중국 본토 소비자를 유인하는 매출 창구이자 중국 본토에 효율적으로 접근하는 교두보로 작용하는 것이다. 실제로 홍콩에서 주식 상장을 한 록시땅의 경우 홍콩 시장의 매출이 10%인데 반해, 중국 본토 매출이 5%에 불과해 홍콩이 여전히 효율적인 매출 창구임을 입증하고 있다.
해외 쇼핑 즐기는 중국 럭셔리 소비자들
홍콩을 경유하든, 중국 본토에 곧바로 진입하든 중국 소비자의 왕성한 브랜드 소비욕은 서구 패션가의 매출 욕구를 충족시키기에 모자람이 없었다. 하지만 유럽과 미국의 재정 및 금융 불안이 지속되고 중국 경기 침체 가능성이 제기되면서 올 한해 중국 럭셔리 마켓의 성장은 다소 둔화될 전망이다. 지난 몇 년간 급속한 유통망 확장 경쟁을 펼쳐왔던 서구 럭셔리 업체들은 유통망 확장 속도를 늦추고 기존의 매장의 기능을 재정비, 효율적 쇼핑과 매출을 도모하는 전략으로 선회한 것도 바로 그 때문이다.
실제로 2010년 중국 본토의 럭셔리 매출이 전년 대비 27% 증가한 140억 달러였지만 올해는 이보다 26% 정도로 예상되며, 45%의 성장률을 자랑했던 럭셔리 시계 부문은 40%, 가죽 제품의 성장 폭 또한 25~ 30% 정도에 그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물론 수치상으로 여전히 상당한 매출 성장세가 기대되지만, 폭주 기관차처럼 달려왔던 중국 럭셔리 마켓의 성장 폭이 둔화되고 있다는 것은 럭셔리 업계를 긴장시키는 이유로 충분하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중국의 럭셔리 맨스웨어/우먼스웨어 시장의 성장 폭이 2010년보다 빠른 속도로 확장될 것으로 예상된다는 점이다.
흥미로운 점은 본토 시장의 럭셔리 매출 흐름과 상관없이 해외로 쇼핑을 나가는 중국인들은 여전하다는 사실이다.
해외 럭셔리 쇼핑을 즐기는 중국인들의 매출은 여전히 홍콩, 마카오 등 전통적인 쇼핑 창구가 절반에 달하지만 럭셔리 세일을 찾아 런던으로, 밀라노로, 파리로 달려가는 중국인들이 늘고 있다는 점은 본토 유통망 확장에 몰두해온 럭셔리 업계에 새로운 전략을 요구한다.
실제로 지난 크리스마스 시즌, 영국에는 버버리, 프라다, 구찌는 물론 쥬이시꾸튀르, 어그 등 이름있는 브랜드를 싼 값에 구매하려는 중국 유학생과 관광객들이 줄지어 늘어서 ‘럭셔리 브랜드’ 만큼 ‘할인’을 즐기는 중국인들의 쇼핑 습관을 다시금 드러냈다.
버버리가 런던 플래그십 매장에 거금을 들여 재단장한 이유가 런던 올림픽을 맞아 런던을 찾는 중국 관광객들의 큰 손 쇼핑을 노린 것임은 굳이 말할 필요도 없다. 런던의 업 마켓 백화점 하비니콜스 또한 외국 관광객들-주로 중국 관광객들-의 통 큰 구매 파워 덕분에 세후 연 수익이 32%나 증가했고, 해로즈 백화점은 2011년 10억 파운드를 넘는 기록적인 매출과 세전 수익 39% 증가라는 대기록을 세웠다. 특히 해로즈를 찾는 중국 관광객들은 회당 평균 3500파운드를 쇼핑에 투자하며 ‘가장 구매력 높은 관광객 1위’를 차지해 중국 관광객들이 런던 럭셔리 쇼핑가의 중요한 소비 군단임을 확인했다.
최근 중국에서 럭셔리 제품의 관세를 인하, 중국인들의 자국 내 쇼핑을 유도하자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는 것도 ‘할인 효과’를 얻기 위해 해외로 나가는 중국의 럭셔리 쇼퍼들이 갈수록 늘고 있기 때문이다.
육스, 중국 디자이너 창구 열어줘
이런 와중에 온라인 럭셔리 리테일러 육스가 중국 디자이너들의 컬렉션 창구를 제공해 눈길을 끈다. 육스는 틈새 디자이너 사이트 thecorner.com.cn를 통해 우마왕, 크리스챤루, 리코만쉬트오, 샹구안지, 조유 등 다섯 명의 중국 디자이너들의 컬렉션을 한정 판매하며, 중국 패션의 힘을 전파하고 있다.
18종의 아이템, 150~190 달러의 가격대로 구성된 중국 디자이너들의 컬렉션은 올 봄까지 판매되며, 성장하는 중국 패션의 자신감을 드러낼 예정이다.
예정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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