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글로벌 금융 불황기를 떨치고 화려한 날개를 펼친 럭셔리 업계. 중국을 위시한 이머징 마켓의 수요 급증과 주가 상승이 이어지는 가운데 럭셔리·하이엔드 디자이너 업계의 M&A 바람이 거세지고 있다.
올 6월 기준 럭셔리 업계의 M&A는 2010년 총액을 뛰어넘는 64억 달러에 달하고 최근 매각된 지미추나 주식 상장을 통해 일정 지분을 매각한 프라다, 페라가모, 그리고 소규모 지분 매각 가능성을 내비친 마이클코어스, 소니아리키엘 등 지분 매각이나 인수 합병 리스트에 오른 하이엔드 브랜드는 줄을 잇는 상태. 일각에서는 현 상황이 M&A 광풍이 불었던 2007년을 연상하게 한다고 말할 정도다. 2007년 럭셔리 업계의 M&A 총액은 115억 달러에 달했다.
지분 매각, 인수 합병 잇달아
그렇다면 왜 지금 럭셔리 업계의 M&A 물살이 거세지고 있을까? 이유는 명확하다. 지난 몇 년간 글로벌 금융 불황으로 매출 부진과 자금 압박에 시달려온 하이엔드 브랜드들이 든든한 자금력을 갖춘 지원군의 필요성을 절감했고 LVMH나 리쉬몽처럼 많은 럭셔리 브랜드를 보유한 집합 럭셔리 제국들의 시장 장악력은 더욱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즉 럭셔리 업계가 더 이상 패밀리 비즈니스나 단독 브랜드 대결의 장이 아닌 거대한 자본과 네트워크, 전략으로 무장한 럭셔리 집합 제국들의 경연장으로 변모했고 제국의 그늘로 들어가는 것이 독자 사업을 펼치는 것보다 브랜드 성장에 유리해졌다. 수익성이 강조되는 럭셔리 시장에서 도태될 것인가 혹은 제국에 편입되어 브랜드의 몸집을 살릴 것인가라는 선택 앞에서 결국 제국의 일원이 되는 것을 선택하게 된 것.
실제로 지난해 루이비통, 지방시, 마크제이콥스, 도나카란, 셀린 등을 보유한 LVMH의 12개월 수익은 203억 유로, 구찌/보테가베네타/알렉산더맥퀸/입셍로랑 등을 보유한 리쉬몽 그룹은 69억 유로로 전년대비 각각 19%, 33%의 수익 상승을 일궈내며 브랜드 집합 제국의 파워를 과시한 바 있다.

LVMH는 불가리, 라벨럭스는 지미추 인수
올 한해 럭셔리 업계 최대의 M&A는 LV MH의 불가리 인수다.
LVMH는 불가리를 인수하기 위해 총 53억 달러의 현금 및 별도의 지분 인수를 했다. 이 같은 금액은 루이비통 스텔라매카트니 지방시 도나카란 등 많은 브랜드를 보유하고 있는 LVMH 역사상 가장 높은 인수 대금을 지불한 사례이기도 하다.
이는 그만큼 불가리의 시장성을 높게 평가하고 있다는 증거로 글로벌 불황기에 매출 부진 및 자금 압박에 시달렸던 불가리로서는 LVMH의 체계적 전략 및 유통망/자금 지원 아래 글로벌 시장 확대에 탄력을 더하게 되었다.
발리, 데릭램 등을 보유하고 있는 스위스 럭셔리 그룹 라벨럭스 또한 브랜드 사냥이 거세지는 럭셔리 업계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 그룹이다. 실제로 라벨럭스는 치열한 경쟁을 뚫고 패셔니스타들이 열광하는 또한 하이엔드 슈즈 브랜드 지미추를 낚아챈 데 이어 영국 아우터웨어 브랜드 벨스태프를 인수, 다크 호스로 떠올랐다.
현재 라벨럭스는 발리, 데릭 램, 지미추 주얼리 라벨 잘리아니 등의 패션 브랜드 포토폴리오를 확보한 상태로 지미추를 통해 글로벌 하이엔드 슈즈 시장을 포섭하고, 유니크한 감성의 벨스태프를 글로벌 브랜드로 성장시키면서 럭셔리 사업에 영향력을 강화시킬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PPR과 버버리 행보 주목
소문으로 끝났지만 매각설이 끊이지 않는 버버리와 버버리 인수 가능성을 타진했던 PPR의 움직임도 여전히 주목할 만하다. LVMH와 대결의 각을 세우고 있는 럭셔리 제국 PPR은 1990년대 말 구찌 인수를 노렸던 LVMH에 대항, 구찌와 연합 전선을 파면서 사실상 구찌를 인수한 전력이 있고 패션 중심의 사업 편성을 위해 소매 유통 사업을 매각하면서 버버리 인수에 필요한 자금력을 갖추고 있어 관심을 모았다.
하지만 구찌, 보네가베네타, 입셍로랑, 알렉산더맥퀸, 발렌시아가, 세르지오롯시, 부세른, 스텔라매카트니 등을 보유하고 있는 PPR의 패션 포토폴리오에 버버리의 브랜드 포지셔닝이 부적합하다며 소문을 일축한 상태다.
그럼에도 PPR이 포토폴리오 보강을 위해 적합한 하이엔드 브랜드를 찾고 것으로 알려져, PPR이 또다른 하이엔드 업체를 인수할 가능성은 여전하다. (PPR은 최근 감각적인 서프/스케이트보드 브랜드 볼컴을 인수, 활동적 라이프 스타일을 즐기는 여유 있는 글로벌 젊은 층 포섭에 나섰다. PPR의 볼컴 인수 대금은 6억750만 달러로 볼컴의 주가를 시중가 보다 30% 높은 한 주당 24달러 50센트로 계산, 볼컴의 성장성에 대한 기대감을 드러냈다.)

적대적 M&A 음모론까지 등장
패션계를 강타했던 LVMH의 에르메스 적대적 인수설은 업계의 선두에 서기 위한 럭셔리 업계의 치열한 암투를 더욱 드라마틱하게 변모시켰다.
지난해 10월 LVMH가 에르메스 인터내셔널의 지분 17.1%를 야금야금 축척해온 것이 밝혀지자 업계에서는 LVMH가 위법적으로 에르메스의 지분을 확보, 적대적 인수의 기반을 마련했다는 분석이 쏟아져 나왔다.
실제로 LVMH가 에르메스의 주식을 17.1%나 인수할 동안 에르메스는 물론 시장에서 조차 이를 감지 못한데다, LVMH가 시가보다 54%나 싼 가격으로 에르메스의 주식을 구입한 것이 밝혀지자 AMF(프랑스 시장 규제 위원회)가 즉각 위법성에 대한 조사에 돌입했고, 프랑스 소주주 협회 아담 또한 특정 기업의 지분을 10% 이상을 인수할 경우에는 시장에 이를 공고해야 하는데 에르메스의 주식을 17.1%나 확보한 LVMH가 이를 공지하지 않았다며 공정한 조사를 주장하기도 했다.
즉 LVMH의 에르메스 지분 인수가 편법적으로 이뤄졌고 이는 곧 에르메스 인수를 위한 LVMH의 전술이라는 것이 업계의 분석이다.
LVMH는 재빨리 에르메스 인수 의도나 이사진 참여 가능성을 일축하며 ‘주주의 역할만’ 하겠다고 밝혔지만 40~50명에 달하는 뒤마가족이 에르메스의 지분 72% 정도를 소유하고 있는 것을 제외하고 가장 큰 대주주인 LVMH의 역할에 에르메스가 위협감을 느끼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에르메스의 소유주 뒤마스 가족은 가족 멤버가 개인적으로 LVMH에게 접촉, 지분을 매각하지 못하도록 홀딩 회사를 구축 적법성을 인정받으면서 LVMH의 공략은 일단 멈춘 상태다.
일각에서는 에르메스가 주식을 추가 발행, 기존의 주주들에게 매각, 보다 공격적으로 LVMH의 적대적 인수 의도를 차단할 가능성을 전망하고 있어 LVMH와 에르메스의 대립의 각은 지속될 전망이다.
결론이 어떻게 나든 LVMH의 치밀한 에르메스 지분 인수 전략은 럭셔리 업계에서 우위를 차지하기 위한 LVMH의 공격적 투자 전력을 보여주는 것으로, 탄탄한 매출과 확고한 브랜드 이미지, 건전한 경영성을 갖고 있는 에르메스가 럭셔리 집합 그룹의 뜨거운 타깃이라는 점은 부인하기 힘들다.
결국 어떤 단일 브랜드도 럭셔리 업계에 몰아치고 있는 M&A 시장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것이 사실이다.
예정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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