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 동안 위축되었던 러시아 럭셔리 시장이 다시 움직이고 있다. 글로벌 금융 위기를 맞아 급격히 줄었던 소비자들이 다시금 럭셔리 구매에 관심을 보이고 하이엔드 디자이너들의 매장 오픈이 증가하는 등 회복 조짐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돌아오는 럭셔리 소비자들
중국과 더불어 럭셔리 업계의 이머징 마켓으로 기대를 모았던 러시아는 2년 전 글로벌 금융 위기의 직격탄을 맞아 80억 달러 규모의 럭셔리 시장 규모가 절반 이하로 침체되었고 매출 부진에 시달린 알렉산더맥퀸, 스텔라매카트니, 비비안웨스트우드 등은 매장을 폐쇄하고 러시아를 등진 바 있다.
하지만 오일 가격이 상승하면서 러시아 가 경제에 자신감을 되찾자 소비자들이 러시아 럭셔리 브랜드의 집결지, TSUM 백화점으로 발길을 옮기고 있는 것. (TSUM의 매출은 2009년 대비 15~20% 상승했고 구찌와 돌체&가바나가 TSUM 백화점에서 가장 잘 팔리는 럭셔리 브랜드다.)
실제로 글로벌 금융 위기 당시 급격히 하락했던 원유 가격이 1배럴 당 115달러로 반등하면서 모스크바 루이비통 매장과 마놀로블라닉 매장은 소비자를 맞느라 부산해졌다. 모스크바가 러시아 럭셔리 매출의 80%를 차지하는 점을 감안하면 이는 곧 러시아 럭셔리 시장의 부활을 의미하는 것이다. 전문가들 역시 시장의 불확실성은 여전하지만 원유가 인상으로 러시아 럭셔리 소비 심리가 회복된 것은 사실이라고 진단하고 있다. 러시아에 진출한 경매 업체 크리스티는 러시아인들의 경매 참여가 3년 전보다 35% 이상 증가했으며 2010 크리스티 수익의 8%가 러시아 입찰자의 힘이었다고 밝혀 러시아 시장에 대한 낙관론에 힘을 싣는다.

러시아 시장 매력 살아날까?
하지만 중국, 일본, 한국 등이 글로벌 불황기에도 상대적으론 높은 매출을 유지한 것과 달리 급격한 위축세를 보인 러시아는 안정된 시장을 원하는 럭셔리 업계의 투자를 꺼리게 만드는 요소다. 중국과 미국, 유럽 럭셔리 시장이 내수, 혹은 여행객 소비로 가파른 상승세를 보인 반면 러시아는 미약한 반등에 그친 것이 사실이기 때문이다. 2011년 글로벌 럭셔리 시장이 8~10% 상승될 전망인데 반해 러시아는 글로벌 럭셔리 매출의 3% 정도, 추후 5년간 1~2% 정도 성장하는데 그칠 것이라는 분석도 러시아 시장에 대한 매력을 반감시키는 요소다. 게다가 급격한 중상류층의 증가가 이뤄지고 있는 아시아, 중동 시장과 달리 러시아의 럭셔리 소비층은 제한적이어서 시장 성장 폭이 더딜 수밖에 없다는 분석이다.
디자이너들 러시아 속속 컴백
그럼에도 불구하고 러시아 시장은 여전히 매력적이다. 흥미로운 점은 과거 단독 매장 오픈을 통해 브랜드 위상을 과시했던 서구 업체들이 기존의 러시아 럭셔리 유통망의 힘을 빌어, 위험을 줄이려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실제로 2009년 매출 부진의 쓴맛을 본 후 러시아를 떠났던 스텔라매카트니는 TSUM에 임대 매장을 오픈, 보다 융통적인 환경에서 고객 잡기에 나섰고 이탈리아 라벨 우만(Uman) 또한 TSUM 백화점 매장에 입점, 러시아 소비자를 만난다. (알렉산더맥퀸과 스텔라매카트니 매장은 글로벌 불황으로 문을 닫기 전 70% 가격 인하를 단행하며 러시아 시장의 만만찮음을 경험한 바 있다.)
이밖에 루마노프 왕조의 후손인 러시아인은 혈통 상 럭셔리를 좋아할 수밖에 없다고 주장하며 시장 확대를 꾀했던 톰포드나 러시아 럭셔리 시장에 최초로 진출한 베르사체 또한 글로벌 불황기에 축소했던 확장 계획에 재시동을 걸고 있어 러시아 럭셔리 시장은 다시 따뜻해지는 분위기다.
이런 가운데 러시아 패션 시장을 노리는 디자이너들의 플랫폼, Russian Fashion Week에 참가하는 업체들의 수도 안정세로 돌아섰고, 파리와 밀라노 패션주간을 찾는 러시아 버이어들도 활기를 되찾고 있어 글로벌 불황기 러시아 패션계를 감싸던 우울한 빛은 한결 완화된 모습이다.

안정적인 유통 채널 선회
러시아의 럭셔리 유통 통로는 흔히 단독 매장과 멀티 브랜드 숍, 럭셔리 백화점, 패션몰 등으로 구분되며 레챠콥스키 거리와 스톨리쉬니콥 거리는 패션 브랜드가 몰려있는 러시아 패션 거리로 명성이 높다.
이중 러시아 럭셔리 시장을 탐내는 브랜드들이 가장 선호하는 것은 갤러리형 럭셔리 백화점 Petrovsky Passage, GUM, TSUM 등이며 모스코 패션 트레이딩 하우스는 샤넬, 구찌, 질샌더, 에르메네질도제냐 등 럭셔리 브랜드가 입점한 럭셔리 패션몰의 대명사라 할 수 있다.
반면 페트롭스키패시지는 서구 기준에 맞춰 전통 빌딩을 모던하게 재건축한 최초의 백화점으로 서구 유명 브랜드들에게 매장을 임대하는 임대 목적을 가진 고급 오피스와 유통 건물로 브랜드 소매 사업을 펼치는 독자적 리테일러라기 보다는 고가의 임대료를 받고 유명 브랜드에게 매장을 임대하는 ‘임대 유통업체’ 쪽에 가깝다. 또한 럭셔리 브랜드의 명소로 변모하고 있는 굼(Gum) 백화점은 두 차례 재건축 및 외장 리뉴얼을 진행, 서구의 모던한 분위기를 선호하는 러시아 소비자들의 입맛에 맞는 유통 몰로 탈바꿈했다. 그 결과 과거 10 % 정도에 불과했던 입점 서구 패션 브랜드의 입점 수도 증가하는 추세다.
글로벌 불황 이후 러시아 진입 유통 경로가 ‘로컬 럭셔리 유통 통로’ 혹은 ‘럭셔리 브랜드의 백화점’으로 집중되고 있는 것도 눈여겨 볼 대목이다. 이는 럭셔리 업계가 경쟁적으로 매장 부지를 찾아 나서면서 위치 좋은 유통 부지의 가격 인상 붐으로 연결, 러시아 시장 진출 및 매출 구축에 부담으로 작용했던 초창기의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한 것으로 변화무쌍한 러시아 현지 상황에 민감히 반응하는 시장의 특성상 럭셔리 브랜드가 집결된 TSUM 같은 로컬 유통 통로가 유리하다는 판단을 한 것으로 분석된다.
하이엔드 아동복 시장도 후끈
중국만큼의 매출 파워를 발휘하고 있지는 않지만 디자이너 및 럭셔리 브랜드에 대한 선호도가 높은 러시아 시장은 여전히 매력적인 시장이다. 샤넬, 불가리, 돌체앤가바나, 구찌, 티파니, 아르마니 등의 브랜드의 러시아 진입을 성사시킨 러시아 럭셔리 유통 거두 머큐리 그룹을 시작으로 보스코디셀리에지, 자밀코 등이 지방시, 겐조, 만다리나덕, 마리아리날디, 막스마라, 니나리치, 에르메스, 크리스챤디올, 세루띠, 요지야마모또, 에스까다 등을 현지에 소개하며 럭셔리 친화적 환경을 구축하고 있는데다 럭셔리 소비가 성인 어패럴에서 값비싼 아동복과 틴에이저 의류로 확대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하이엔드 아동복 시장의 성장세가 두드러져 모스크바를 비롯한 대도시에는 하이엔드 부띠끄가 증가하는 추세다. 일례로 모스크바에 들어선 아동복 부띠끄 체인 「텐더에이지(Tender age)-러시아어로 「네쯔니보짜스트(Nezhny Vozrast)-에는 로베르토까발리의 아동복, 디올 아동용 재킷 등 럭셔리 디자이너 아동복이 진열되어 있고 한정본으로 생산된 제품도 종종 발견할 수 있을 정도로 러시아 럭셔리 시장의 성장 폭은 넓어졌다. 중국과 아시아 시장에 무한 애정을 쏟고 있는 럭셔리 업계가 러시아 시장에 대한 애정을 여전히 버리지 못하고 있는 것도 바로 그 때문이다.
예정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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