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LK TO MENTOR - 최지형, 이상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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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3-25 오후 5:08:41


세대간의 만남이라고 이름 붙이면 너무 거창할까?
이영희, 진태옥 등 정말 맨땅에 헤딩하면서 해외 컬렉션을 두드렸던 선배들에 비하면 본인은 그래도 조언해 줄 선배가 있어 행복했다는 디자이너 이상봉과 이제 막 해외 진출을 시작하는 까마득한 후배 최지형. 꽃샘추위가 기승을 부리던 3월 중순 어느 수요일, 삼성동 이상봉의 작업실에서 만난 두 사람은 처음 만났다는 게 무색할 만큼 대화에 푹 빠져들었다. 파리 컬렉션을 앞둔 후배 디자이너의 긴장과 두려움, 그리고 이미 그 시기를 거쳐간 선배 디자이너의 조언과 재미있는 경험담. 저녁 7시에 시작한 인터뷰는 밤 11시가 되도록 끝날 줄을 몰랐다.                                            글 한지형, 사진 남광호 기자


이상봉(이하 이) : 아, 최지형 디자이너! 현재 우리나라 패션계의 희망 아니냐. (웃음) 만나서 반갑다.
최지형(이하 최) : 무슨 말씀을요, 제가 더 영광입니다. 사실 11년 전에 제가 에스모드 3학년에 재학 중일 때 중앙디자인그룹에 지원했는데 그때 선생님이 심사위원이셨어요.
이 : 어? 심사위원은 몇 번 안 했었는데… 그렇게 따지면 우리 인연이 꽤 깊은 편이네. 하하하.
최 : 선생님과 인터뷰 하는 기회가 있다고 해서 정말 기뻤어요. 물어볼 게 너무 많아서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 지 모르겠어요.
이 : 기뻤다고 하니 나도 기분이 좋네. 사실 이런 기회가 아니면 요즘 젊은 디자이너들 하고 만나서 대화할 일이 없어서. 나도 듣고 싶은 얘기가 많으니 허심탄회하게 대화를 나눴으면 좋겠다.
최 : 작년에 서울시 선정 대표 디자이너에 뽑히고 나서 올해 파리 컬렉션에 설 수 있는 기회를 얻었어요. 처음에는 서울시에서 컬렉션 쇼와 세일즈 비즈니스를 동시에 진행한다고 해서 둘 중 어디에 초점을 맞춰야하나 막막했어요. 그러다 파리에 가기 2주일 전에 갑자기 쇼 일정이 뒤로 미뤄진다는 거예요. 애초에 컬렉션에 맞춰 디자인을 생각했는데 쇼룸에 먼저 선보여야 된다고 하니까 너무 혼란스러웠어요.
이 : 내가 보기엔 오히려 쇼가 미뤄진 게 더 잘된 일인 것 같은데? 처음 해외 컬렉션에 나갈 때는 빨리 브랜드를 알리고 잘 해야겠다는 조바심이 크기 때문에 홍보에 신중하지 못한 경우가 많아. 기왕 쇼가 미뤄졌으니 현지 에이전시와 사전 홍보에 주력해야 한다. 나는 다른 디자이너들의 쇼를 전혀 못 본 상태에서 파리 쇼를 진행했는데 지형씨는 미리 파리를 보고 느끼면서 준비할 수 있으니까 훨씬 더 마음의 여유를 가질 수 있을 거다.
최 : 쇼룸에서 비쳐지는 피스들이 브랜드를 충분히 보여줄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하는데… 이런저런 고민을 안고 일단 가서 보고 판단하자는 생각으로 무작정 파리로 갔어요. 파리 현지 에이전시가 ‘MC2’라는 곳인데, 가져간 옷을 보여 주자마자 아무 얘기도 않고 딱딱 쇼룸에 들어갈 옷을 고르더라고요. 저는 나름대로 좋은 원단을 쓰고 실루엣도 신경썼는데 그들과는 보는 시각이 다르다는 걸 알게 됐어요.
이 : ‘MC2’는 나도 들어가고 싶을 정도로 상당히 파워 있는 에이전시인데. 부럽다. (웃음) 아직 해외 경험이 많지 않은 상태니까 에이전시가 해주는 대로 따르는 게 좋아. 그런 에이전시는 전문적 지식이 많고 오랫동안 바이어들을 상대해 왔기 때문에 패션의 흐름을 잘 알고 있다. ‘MC2’도 나름의 추구하는 비즈니스 방향이 있으니까 앞으로 계속 현지에서 비즈니스를 하려면 믿는 게 낫다. 그 사람들은 잘 팔기 위해 조언을 하니까 긍정적으로 받아들여.
최 : 그런데 선생님, 컬렉션과 비즈니스는 완전히 다른거잖아요. 어디에 초점을 맞춰서 디자인을 해야할 지 방향 잡는 게 너무 힘들더라고요. 선생님은 쇼와 비즈니스를 구분해서 옷을 만드시나요?
이 : 두 가지가 다르긴 하지. 컬렉션 쇼에서는 프레스와 스타일리스트의 눈길을 끌만한 옷이 필요하고 쇼룸에서는 하나라도 더 팔릴 수 있는 옷을 선보이는 게 중요해. 나는 1997년 IMF 때 처음 파리에 가서 그때부터 5년 동안 전시만 하면서 옷을 팔았지. 당시만 해도 쇼 보다는 철저하게 판매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으니까. 지금도 마찬가지일거야. 아무리 크리에이티브하다 해도 결국은 많이 팔아야 인정받아. 하지만 컬렉션은 달라. 파리 진출 후 5년 뒤에 컬렉션을 본격적으로 시작하니까 가격이 오를 수 밖에 없었다. 기존에 내 옷을 사던 사람들이 확실히 구분 되더라. 애초에 그 사람들은 컬렉션 옷을 살 수 있는 능력이 안 됐던 거였어. 결국은 하이 레벨로 가느냐 보통 수준에서 그냥 맞춰 가느냐인데… 처음에 방향을 어떻게 설정하는지가 중요한거지.
최 : 그 두 가지 사이에서 중간점을 찾는 게 정말 힘든 것 같아요. 에이전시랑 한 번 미팅하고 나니까 머릿 속에 수만가지 물음표가 생기는 거예요. 그러던 와중에 선생님 쇼를 보게 됐는데 와, 정말 저절로 탄성이 나오더라고요.
이 : 나도 많이 바뀐거지. 근데 지금도 보는 사람에 따라 반응이 천지차이다. 이제야 겨우 입을 만한 옷을 만든다며 잘 바꿨다고 좋아하는 사람들도 있고, 예전의 강한 옷들이 그립다고 아쉬워하는 사람들도 있어. 자금 여유가 있으면 컬렉션용과 판매용을 따로 제작하면 되지만 국내에는 그럴만한 여력이 있는 디자이너가 없다. 어쨌거나 지형씨는 운이 좋다. ‘MC2’ 같이 좋은 에이전시를 만난 것도 방향을 설정하는 데 있어서 많은 도움이 될거다. 난 그런게 하나도 없었는데 말이야. (웃음) 책임감은 느끼겠지만 너무 강박관념을 갖지는 말고…
최 : 그러면 파리와 한국에서의 비즈니스는 어떻게 균형을 잡아햐 하나요? 선생님은 어떻게 하고 계시죠? 
이 : 파리에서 한창 활동할 때 나를 지켜보던 많은 사람들이 같은 목소리로 조언했던 게 ‘국내를 놓지마라’였다. 일본에서는 자국에서 성공한 디자이너들이나 파리에서 쇼를 하는거지 한국처럼 신진 디자이너가 바로 하는 경우는 정부 지원이 없다면 거의 불가능한 얘기다. 이건 너무 큰 행운이야. 정욱준이나 송지오, 우영미 같은 세대는 혼자 부단히 노력해서 해외에서 성공했지만 결국 한국에서 성공해야 해외에서도 성공한다. 내가 지원 없이도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건 한국에서의 비즈니스가 유지됐기 때문이야. 현재 한국에서 백화점 위주의 편집숍에서 비즈니스를 하고 있는 걸로 아는데 이를 바탕으로 국내 비즈니스를 더 잘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국내에서 뿌리가 튼튼해야 해외에서 실패해도 다시 나갈 수 있는 동력이 되거든.
최 : 선생님도 훌륭하시지만 정욱준, 송지오, 우영미 등 파리에서 지속적으로 컬렉션을 하는 한국 디자이너가 많아서 힘이 돼요. 파리에서의 한국 디자이너 계보가 생긴거 같아요. ‘MC2’도 한국 남성복 디자이너들이 잘하니까 저처럼 또 다른 한국 디자이너에 대한 신뢰가 생기는 것 같고…
이 : 그건 우영미의 공이 크지. 처음 어려울 때 잘했던 게 한국 디자이너의 위상을 높이는 데 큰 영향을 줬다. 그에 대한 효과가 지금 나타나기 시작하는 것 같다. 지형씨는 잘할 것 같아. 1인으로 선택된 행운을 어떻게 지속적으로 성장시켜 갈지 그걸 고민해라.
최 : 국내에서 더 비즈니스를 키우고 싶어도 상황이 여의치가 않더라고요. 생각보다 들어갈 수 있는 편집숍이 적어요. 현재 입점해 있는 11개 편집숍에서는 매출 1위인데 더 이상 매출을 내기에는 파이의 한계가 있어요. 단독 매장은 전혀 다른 경제력을 필요로 하는 거라 아직 고려할 단계는 아니고요.
이 : 지금 가진 걸 잘 끌고 가는 것도 실력이다. 나 때는 백화점에서 디자이너 레이블에게 입점 기회를 준다는 건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지형씨가 말했듯이 우리나라에서 비즈니스를 하기가 힘든 건 아직 디자이너 레이블에 대한 수요가 없어서다. 일본에서는 일본인이 자국 디자이너의 상품을 많이 바잉하기 때문에 글로벌 디자이너가 많이 나온다. 땅도 넓고 인구도 많고 멀티숍도 어마어마하게 많다. 그렇기 때문에 일본 디자이너들이 해외에서 활동을 유지할 수 있다. 그런데 요즘에는 한국도 많이 변했어. 지금 편집숍에서 매출 1위를 하고 있으면 분명 백화점에서 다른 기회를 줄거야. 강진영 디자이너도 지금의 「오브제」를 성공시키기까지 10년, 20년이 넘는 시간이 걸렸다. 요즘 뉴욕에서 선전하고 있는 「앤디앤뎁」도 10년 넘게 브랜드를 키워왔어. 그만한 시간이 필요하다. 지형씨, 디자이너 평생할 거잖아? (웃음) 그러면 너무 서두르지 않아도 돼.
최 : 지금 말씀하신 브랜드 이후에 국내를 베이스로 한 스타 디자이너 계보가 만들어지지 않는 것도 참 안타까운 거 같아요. 하나의 군(群)이 형성되서 다같이 전진하는 그런 분위기가 됐으면 좋겠는데…
이 : 우리나라는 전시회보다 컬렉션 쇼에 더 중점을 두고 거기에만 매달리기 때문에 다양한 인재가 안 나온다. 지형씨처럼 실력도 좋고 운도 따르는 사람들은 쇼를 할 수 있는 기회가 있지만 대부분의 디자이너들은 그렇지가 못해. 전시회를 통해서 계속 외국 시장에 나가봐야 한다. 쇼가 꽃이라면 전시회는 뿌리다. 뿌리가 넓고 튼튼하게 퍼져야 꽃도 더 많이 피는 거 아니겠나? 소수정예로 집중적으로 지원해주는 것도 좋지만 양적으로 많은 것도 무시하지 못한다.
최 : 맞아요. 그러다보면 서로 강해지고 결국에는 한국 디자이너들이 커지는 것 같아요. 사실 파리에 가기 전에 너무 떨렸어요. 긴장도 많이 하고… 그래서 가까운 정욱준 디자이너를 붙잡고 이것저것 물어보는데 선뜻 ‘MC2’ 측에 메일을 보내주겠다고 하더라고요. ‘나 준지인데, 한국에서 최지형이라는 디자이너가 가니까 잘 부탁한다’고. (웃음) 그러고나서 ‘MC2’ 측 사람들과 만났는데 욱준한테 메일 받았다면서 인사를 하는거예요. 그 말 한마디가 얼마나 힘이 되던지…
이 : 맞아. 파리는 그런게 참 다른 도시랑은 다르지. 엄청난 역사를 가진 메종이 많고 또 그들이 파리 패션계를 움직이니까 누군가의 말 한마디가 꽤 큰 영향을 미친다. 서로 소통하는게 많은 위로가 될 거다.
최 : 부디 잘 해야할텐데 걱정이 앞서네요. 정부 지원이 한 사람에게 집중되는 건 그리 오래 가지 않겠죠? 명색이 ‘글로벌 브랜드 육성 프로젝트’인데 일년은 좀 짧지 않을까요? 구체적인 성과를 내기에도 그렇고. 
이 : 정부 입장에서는 형평성에 맞게 다른 디자이너에게도 골고루 기회를 줘야하기 때문에 지형씨만 계속 지원하기는 어려울거다. 주어진 조건에서 최선을 다하고 만약에 성과가 안나면 ‘다음 시즌부터는 내 돈으로 하지 뭐’ 하는 배포가 필요하다. 잘 되면 좋은거고 안되도 다음에 또 하면 되지 않겠나. 젊으니까 기회는 끊임없이 올거다. 두려워하지 말고 지금 상황에서 최선을 다해라.


 


▲패션인사이트 2011년 3월28일자(543호) 22~23면




한지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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