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에게는 동대문운동장 자리에 들어설 건축물을 설계한 건축가이며, 카리스마 가득한 작품을 만드는 건축가로 알려진 자하 하디드.
세계를 주름잡는 건축가라면 대체로 하얀색 피부에 선진국의 영리한 머리를 갖춘 영재이지 않을까 싶지만 자하 하디드는 이라크 출신의 어두운 피부를 가진 여인이다. 많은 불리한 사정에도 불구하고 지금은 세계 최정상에서 활동하고 있는 건축가다. 우리의 상식과 충돌하는 부분이 적지 않은 건축가라 할 수 있는데, 이 건축가가 패션 브랜드들과의 인연이 깊다는 사실 또한 매우 쇼킹하다.
건축가라면 커다란 건축물만을 디자인 할 것 같지만, 자하 하디드는 루이비통을 비롯해서 수많은 패션 브랜드들의 상품이나 시설들을 의뢰 받아 디자인하고 있다는 사실은 아마 잘 알려져 있지 않은 것 같다. 또한 놀라운 사실이기도 하다. 그 중에서 루이비통 가방을 실리콘으로 재해석한 작품은 그녀의 초창기 작이면서도 거장다운 강렬한 인상을 각인시킨 바 있다.
실리콘이 무엇인가? 엔지니어링 플라스틱에 속하는 재료로서 공업 기술을 상징하며 각종 공업 부문에 유용하게 쓰이고 있다. 이런 재료로 루이비통의 가방을 만들다니. 장인의 손길을 빼면 시체(?)가 될 것 같은 명품 가방을, 실리콘이라는 지극히 공업적인 재료로 디자인했다는 것부터가 무척 도발적이었다. 플라스틱과 같은 건조하고 매끈한 표면의 재질이 어떻게 피부에 촥 감기는 가죽의 감촉을 흉내나 낼 수 있을까. 대개 거장들은 이렇게 일반적으로 생각되어지는 선입견에 한 방을 먹이고 시작한다.
재료라는 것이 사람의 손을 타면 탈수록 고급스러워지는 것은 사실이다. 아무리 산업이 발전한다고 하더라도 수공업적 공정을 많이 가진 물건들은 최첨단 제품들이 흉내낼 수 없는 가치를 가진다. 명품이 대접받는 것은 다 이유가 있다. 하지만 재료의 표현 범위를 생각해 보면 또 다른 측면이 보인다. 말하자면 그 어떤 값비싼 재료도 루이비통 가방 표면에 2차원으로 프린트 된 모노그램 로고를 3차원으로 드러내지는 못한다. 이것은 오로지 실리콘 재료만이 구사할 수 있는 표현 방법이다. 아무리 뛰어난 장인이라 하더라도 이처럼 많은 상징을 일사불란하고 자연스럽게 튀어나오게 할 수는 없다. 자하 하디드는 실리콘 만이 할 수 있는 표현을 장인들의 솜씨와 대적하게 만들어 버린 것이다.
게다가 그녀는 모노그램을 제품의 표면으로부터 볼록하게 튀어나오게 한 대신에 모든 색깔을 지워버렸다. 덕분에 고동색 배경색에 검은색의 문양이 덕지덕지(?) 칠해진 가방이 도저히 흉내낼 수 없는 격조를 가지게 되었다. 아무리 마찰을 가해도 닳지 않는 강인함을 가지면서도, 여성의 젖가슴을 흉내(?)낼 수 있는 부드러운 실리콘의 촉감이라면 자신이 공장 출신이라는 낮은 신분(?)을 가리고도 남게 만들 수 있을 것이라는 것을 자하 하디는 충분히 꿰뚫고 있었던 것 같다. 재료를 보는 자하 하디드의 통찰력이 돋보이는 대목이다. 그렇게 해서 실리콘으로 만들어진 루이비통 가방은 하얀 속살을 그대로 드러낸 채 수많은 루이뷔통 선배(?)들을 뒤로 하고 스포트 라이트의 찬란한 빛을 독점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처럼 재료의 귀천(?)을 가리지 않고, 그 재료가 가지고 있는 특징을 최대한 활용하여 자기가 표현하고자 하는 바를 최대한 이끌어 내는 디자이너도 드물 것이다.
표면으로 튀어나온 루이비통의 상징은 새하얀 가방 위에 자신의 존재를 그림자로 선명하게, 그렇지만 직접적이지 않게 드러내고 있다. 고고하고, 진귀하고, 화려한 이미지로 요약할 수 있는 명품의 이미지를 공업적 재료로 이렇게 완벽하게 재해석한 경우가 과연 있을까?
그 위에 자신의 분신과도 같이 드리워져 있는 우아하면서도 다이나믹한 곡선의 퍼포먼스는 루이비통의 명품스러움을 완전히 압도적으로 구현하고 있다. 그러한 모든 것들이 색도 안 칠해져 있고, 가격도 싸고, 기계로 대량 찍어 낼 수 있는 재료로 구사되어있다는 사실은 보면 자하 하디드는 현대판 마이다스의 손을 가진 사람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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