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순함이 아름답다 혼을 담아 디자인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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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 샌더 1 - 최경원이 바라본 패션 디자이너의 세계 ⑳

2011-02-11 오후 3:34:15

명품의 조건
질 샌더는 벤츠 , 비 엠 더블유, 아우디와 같은 자동차, 브라운 같은 전자제품, 보쉬와 같은 공구 등 산업이나 공업과 관련된 분야에서는 내로라하는 브랜드가 즐비하지만 패션에 있어서는 유독 한 손으로 꼽아도 남아도는 희귀한 브랜드를 자랑하는 독일 출신의 귀하디 귀한 디자이너이자 브랜드이다. 독일의 패션 브랜드들은 대체로 인근의 이탈리아나 프랑스의 패션 브랜드들보다는 자국의 자동차나 전자제품들과 독일 강직한 느낌의 이름만큼이나 단순함을 강조한 디자인으로 명성을 얻고 있는 브랜드가 많다. 올해 질 샌더의 봄, 여름 컬렉션에서 선보인 디자인도 굉장히 단순하지만 화려하고 인상에 남았다. 

선명한 하늘색 상의와 자몽 과즙색의 치마는 마치 남태평양의 한가로운 분위기를 연상시킨다.

상의는 우리가 흔히 입는 티셔츠이며 치마도 재단된 형태가 아닌 마치 큰 천을 그냥 허리에 둘둘 둘러서 질끈 묶은 것처럼 보인다. 내가 입으면 후줄근한 티셔츠에 월남치마 입고 동네 마트에 가는 패션처럼 보일 수도 있는데 사진 속 모델은 시크함 그 자체다. 심지어 비닐 백도 들었는데 말이다.

사진 ②는 더 단순해 보이는데 아름답다. 일반적인 검정색 정장 바지에 단순한 형태의 롱 재킷을 여러 벌 겹쳐 입었다. 화사한 색들을 겹쳐 입어 화려한 인상을 주면서도 형태가 단순해 충분히 직장에도 입고 갈 수 있을 것 같다.

이렇듯 두 의상의 조형적 특징은 복잡한 장식 없이 단순한 형태에 채도 높은 색들로 되어 있는데도 아름답다는 것이다. 단순한 것이 아름답다는 의견은 합당한 것일까? 우리가 지금까지 아름답다고 보아온 복잡하고 화려한 옷들은 무엇이란 말인가.

단순함은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미술과 시지각’을 쓴 독일의 예술 이론가 루돌프 아른하임은 인간의 시지각은 단순함을 추구한다고 말했다.

그는 그 주장을 입증하기 위해 지각 심리학자들의 실험을 인용했는데, 단순한 형태가 복잡한 것 보다 더욱 정확하게 혹은 쉽게 지각될 수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원, 삼각형, 사각형과 같은 단순한 기하학적 형태들은 타원이나 다면체 혹은 자유 곡선에 의한 형태와 같이 복잡한 형태보다는 쉽게 인지된다고 하며 이러한 실험결과는 일반 대중을 상대로 하여 기호나 형태 즉, 빠른 판단을 요구하는 사인이나 쉽게 인식되고 기억되어야 하는 심벌을 디자인하는데 응용된다. 도로 표지판이 원과 삼각형 등의 간단한 형태로 되어 있는 이유기도 하다.

아른하임은 우리의 시지각을 설명하기 위해 게슈탈트 이론을 인용하기도 했다. 게슈탈트 심리학자들은 형의 우수성(Figure goodness)을 설명하는 몇 가지 자질로서 단순성, 규칙성, 대칭성, 기억의 용이성을 들었다. 다시 말해 형태가 단순하고, 규칙적이며, 대칭적이고 기억이 용이한 형태가 우수하다는 것이다.

우리가 어떤 것을 본다고 할 때 있는 그대로의 세상을 다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다. 세상은 정리되지 않고 난잡하다. 따라서 우리의 눈으로 들어온 복잡한 형태들을 뇌에서 정리하여 선별적으로 받아들이게 된다. 그 과정에서 뇌는 필요한 정보에 집중하기 위해 가장 간단하고 안정적인 형태를 선택하게 된다.  이 이론을 질 샌더의 컬렉션 사진들에 적용해 보자.

이성적이며 계산적인 패션쇼
처음에는 화려한 색의 옷을 입고 무대를 걸어 나오는 모델만 보였겠지만 찬찬히 살펴보면 다양한 관객들도 앉아 있다. 첫 눈에는 옷만 보였지 복잡한 뒤의 사람들은 인지도 되지 않았다.  

질 샌더, 엄밀히 말하자면 질 샌더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인 라프 시몬스는 이것까지 계산에 넣었을지도 모르겠다. 단순한 배경을 뒤로하고 걸어 나오는 평범한 무대를 두고 구지 관객들 사이를 걸어 나오는 무대를 아무 계산 없이 연출하진 않았을 테다.

이렇듯 우리의 뇌는 단순한 형태를 우선적으로 받아들인다. 질 샌더의 옷들은 형태가 군더더기 없이 간결하다.

따라서 인상적인 것이 맞다. 하지만 형태적으로는 우리가 평소에 입는 재킷이나 바지와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런데도 눈에 띄는 것은 분명 색의 역할이 크다고 할 수 있겠다. 

사진 ①과 ②에서 보았듯이 형태는 일반적으로 입는 옷과 크게 다르지 않다. 누구나 입는 티셔츠, 재킷, 바지에 치마만 약간 특이한 정도이다. 그런데도 이런 평범한 옷이 컬렉션 무대에 올라 우리에게 감동을 주는 것은 이성적으로 세밀하게 조정된 색과 비례의 가치가 크기 때문이다. 

사진 ①을 다시 보자. 크게 파랑과 빨강, 두 색의 대비가 이뤄진다. 구두는 피부색과 비슷한 색으로 눈에 띄지 않게 하여 상의와 가방의 푸른 기, 치마와 또 다른 가방의 붉은 기를 대비를 이루도록 도와준다. 게다가 상의와 하의는 1:3 정도의 비율로 다리를 더 길어보이게 하여 몸매를 더욱 매력적으로 보이게 한다.

사진 ②의 옷은 더더욱 치밀하게 계산되어 있다. 빨강의 유사색들을 겹쳐 입은 상의는 검정하의가 대비된다. 가장 겉에 입는 빨강 재킷도 그 자체만으로 눈을 파고드는데, 그 안으로 명도 차이가 나는 분홍색, 색상 차이 나는 귤색을 배치하여 인접 색만으로도 차분하면서 화려한 인상을 완성했다.

금방이라도 타오를 듯 화려한 상의와 대비되는 검정 바지와 구두는 듬직하게 하의의 중심을 잡아준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얇은 선으로 들어간 구두의 주황색 밑창은 이 의상의 완결성을 한층 높여준다. 놓치기 아까울 정도로 디자이너의 세심함이 돋보인다. 단순히 감각적이라고 감탄할 것이 아니라 얼마나 계산에 계산을 거듭하여 완성한 하나의 룩인지 알아 봐 주는 것이 이성적인 디자이너에 대한 예의이며 관객의 수준이다.    

이렇듯 단순한 형태에 색만으로 디자인을 한다는 것은 쉽지 않다. 게다가 디자이너로써 장식을 배제한다는 것은 굉장한 절제심을 요구한다. 질 샌더도 장식을 한다. 하지만 남들과는 다른 방식이다.

평범한 검정색 티셔츠에 하얀 바지를 입었는데 상의에 붙었을지, 하의에 붙었을지 모를 볼륨감이 살아있는 파랑색 허리 장식은 낯설지만 시각적으로 불편하지 않고 매력적이다. 그것은 허리 장식이 마치 주름을 가득 넣은 치마를 짧게 잘라낸 것 같이 익숙한 것의 변형이기 때문이다. 

원래 허리선보다 약간 더 높이 붙은 장식은 비율도 좋아보이게 한다. 평범한 하양 티셔츠에 검정 바지가 파랑색의 허리 장식으로 신선하고도 새로운 아름다움을 일깨워 준다.

이처럼 질 샌더의 옷은 화려한 액세서리나 명품 가방이 없어도 시선을 끌고 고급스러운 인상을 준다.
그것은 이성적으로 계산된 디자인은 순간적으로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것이  아니라 보다 영원하고 아름다우며 정신성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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