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피는 따뜻하고 부드럽고 우아한 품위와 아름다움 때문에 시대를 초월해 사랑 받아온 최초의 의복 소재다. 고대 이집트에서는 성직자가 권위의 상징으로 표범의 모피를 의식용으로 둘렀다. 로마인들 역시 권력과 부를 상징하는 수단으로 모피를 애용했고, 전쟁에서는 최고의 전리품이었다. 중세에 모피가 더욱 애용됐다. 왕족을 비롯한 상류 계층은 담비, 비버 등 고급 모피를, 일반 서민들은 토끼나 개, 고양이 등 모피를 사용했다. 나폴레옹은 전쟁 중에는 병사들의 방한복으로 모피를 사용하였고, 전쟁 후 부유층 사이에서 모피로 모자나 칼라를 장식하는 것이 유행하였다. 이 때문에 천연 모피가 고갈되었고, 모피 짐승의 사육이 요구되기 시작했다.
모피가 완전한 패션으로 정착된 것은 1870년대였다. 파리 패션계에 부분 장식이나 안감용이 아닌 겉옷 전체를 모피로 만든 옷이 등장했다. 특히 1886년 미국에서 밍크 양식이 성공하면서 모피 패션은 급속히 발전하였다. 이후 여우의 양식이 성공하는 등 모피 공급의 증가와 함께 모피 산업은 더욱 발전하여 오늘에 이르렀다. 그러나 양식이 가능하다 하여도 모피는 천연물이므로 공급이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거기에다 전 생산 과정이 고도의 전문 기능인의 수작업에 의해서만 가능하므로 더욱 가치가 높아진다. 그래서 언제나 값이 비싸다.
우리나라에서도 일찌기 모피가 이용되었다. 난모(煖帽: 보온을 위해 쓰는 모자류)나 토시 또는 배자 안에 모피를 넣었다. 북미, 북유럽 등지에서 여우 양식이 가능하던 1930년대에는 우리나라에서도 여우 목도리가 유행했다. 그러나 1970년대 말에 이르러서야 비로써 모피가 대중에게 가깝게 다가오기 시작했다. 칼라에 모피 장식을 하는 정도였으나 차츰 커프스, 단 장식 등 이용량이 증가되더니 온몸을 덮는 코트까지 유행하기에 이르렀다.
털로 온 몸을 감싸는 이 코트는 중년 층의 옷으로 여겨졌었지만, 몇 년 전부터 20~30대 멋쟁이들이 모피를 걸치기 시작하였다. 그들에게 맞는 디자인뿐 아니라 값 싼 다양한 종류가 등장하였다. 그들 중 가장 인기가 있는 옷이 바로 조끼다. 특히 유행이 지나 입지 못하고 장 속에 걸려있던 어머니의 비싼 밍크를 조끼로 쉽게 리폼할 수 있다는 점이 유행을 더욱 부추긴 것 같다.
모피는 우아하고 아름답고 품위가 있으며 에로티시즘을 표현하기까지 한다고 한다. 그렇다쳐도 간과해서는 안 되는 것이 따뜻함일 것이다. 지난 연말연시 때에 몰아친 혹한에, 아무리 모피라 하여도 조끼가 그 추위를 막기에는 부족하다는 경험을 했을 것이다. 이 부분에서 과학이 필요하다.
인간은 항온 동물이어서 심부(core)가 일정한 온도(약 37℃)를 유지해야 한다. 심부에 해당하는 부위는 머리, 몸통, 그리고 팔 위 쪽이다. 따라서 어깨까지만 오는 조끼는 팔 위 쪽을 보온 할 수 없기 때문에 열 손실이 크다. 어깨에서 조금만 더 내려와도 더욱 따뜻하게 입을 수 있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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