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행을 알기 전에 자기를 아는 생활의 패션
유럽을 다니는 동안 많은 사람들의 옷차림들을 통해 느낀 것은 ‘자기 자신’이었다. 옷을 입는다는 것은 내가 남에게 보여지는 것과 관련된다. 옷을 입는 것은 그런 점에서 커뮤니케이션이라고 할 수 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내가 남에게 어떤 것을 가지고 의사소통을 할 것인가인데, 그래서 무엇보다 먼저 챙겨야 할 것은 자기 자신이다.
다양함
유럽을 통해 알게된 놀라운(?) 사실은 패션 잡지나 연예인을 방불케하는 유럽인들의 외모와 옷차림이 아니라 나라마다, 사람마다 모두 다른 스타일의 옷을 입고 다닌다는 것이었다. 수수하면서도 발랄한 스타일은 주로 네덜란드에서 많이 찾아볼 수 있었다.
영국 사람들은 화려하면서도 현대적인 정갈함을 잃지 않는 옷차림새가 특징적이었다.(그림 ①)
이탈리아 사람들의 옷차림은 역시 발랄하면서도 강렬한 색상이 두드러졌다.(그림 ②)
프랑스 사람들은 역시 어떤 옷을 입더라도 귀족적 분위기를 물씬 풍긴다.(그림 ③)
군더더기를 싫어하는 독일 사람들은 역시 옷차림도 단순하면서도 힘을 잃지 않는 모습이다.(그림 ④)
어느 나라를 가더라도 똑같지 않는 모습에 자유분방한 차림새를 원없이 볼 수 있지만, 앞서 살펴본 것처럼 유럽 사람들의 이런 개성들은 막연히 자유로운 것이 아니라 나라마다 고유하게 품고 있는 전통의 흐름 속에서 자유롭다. 독일 사람들의 현대적인 옷차림들을 뒤에 있는 건물들과 같이 보면 이들의 심플한 개성이 거져 얻어진 것이 아니라 역사적 맥락을 가지고 있음을 쉽게 알 수 있다.(그림 ⑤)
가우디가 만든 구엘공원의 명물 도마뱀 조형물의 화려한 외관과 자연스럽게 어울리는 스페인 아이들의 화려한 옷 색깔을 보면 가우디가 천재라기 보다는 스페인 문화가 그런 경향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그림 ⑥)
이탈리아의 경우에는 보다 연속성이 명백하다. 르네상스 전후로 이어지는 이탈리아 특유의 색깔 감각이 지금까지, 그것도 일반인들의 삶 깊숙한 곳에까지 미치고 있음을 금방 알 수 있다.(그림 ⑦)
프랑스의 경우에는 18세기 절대왕정기에서부터 내려오는 화려하고 귀족적인 이미지가 현대 디자인 곳곳에 적용되고 있음을 확인 할 수 있다.(그림 ⑧)
눈을 파고 들어오는 화려한 색상이 현대 디스플레이 작업이나, 밝고 화사한 옷 색깔에 그대로 적용되고 있다. 프랑스의 전통을 기반으로 개성있는 현대문화들이 짜임새있게 구축되어있음을 잘 확인할 수 있다.(그림⑨)
네덜란드와 같이 비교적 유럽의 문화 중심지에서 살짝 벗어나 있는 지역에서도 현대적 개성과 전통의 흐름이 자연스럽게 합류되어있음을 알 수 있다. 도시 한복판을 흐르는 운하 주변으로 형성된 소박한 고전적 건축물들의 소박한 인상이 현대 네덜란드 디자인의 인상과 유사하게 이어진다. 아울러 사람들의 옷차림도 여기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고 있다.(그림 ⑩)
분방한 자유로움으로 그치지 않고 전통과 입체적으로 연속되며 자유로운 유럽인들의 옷차림새들을 보면 역시 전통이란 게 현재를 풍요롭게 하는 주요한 자산임을 새삼 느낄 수 있다. 우리처럼 불행했던 현대사의 과정을 통해 전통의 흐름을 제대로 이어놓지 못하고, 그나마 있는 전통들도 화석화되었을 경우, 일반인들의 옷차림새에도 극심한 혼란을 겪을 수 밖에 없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느끼게 된다.
가장 문제는 거창한 문화적 전통을 갖지 못했다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에 대한 존중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자기 돌보기
유럽 사람들이 획일적인 옷차림이나 유행에 몸을 맡기지 않는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자신에 대한 존중이 중심을 단단하게 부여잡고 있기 때문이다. 하나같이 색다른 옷차림을 하고 다니는 유럽 사람들의 모습을 보면 그걸 잘 알 수 있다.
우리나라 사람들처럼 특정 연령대가 옷차림의 스타일을 주도하는 것이 아니라 연령에 상관없이 자기에게 걸맞는 아름다움을 표현하고 있는 유럽 사람들의 놀라운(?) 패션 감각을 보면 그러한 사실을 보다 더 절감하게 된다.(그림 ⑪)
나이든 노인이 이처럼 멋쟁이일 수 있는 것은 우리나라에서는 좀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다. 그저 위로의 말로 차려입은 노인들을 치하하는 경우는 있지만, 이처럼 젊은 사람들과 계급장(?) 떼고 붙어도 전혀 꿀리지 않을 살벌한 감각을 소유한 노인들을 볼 수 있다는 것은 정말 경이로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렇게 나이 듦의 매력을 듬뿍 보여주는 사람들이 유럽에는 가득 차 있다.(그림 ⑫)
네덜란드에서 만났던 노신사는 정말 늙고 싶은 마음이 들게 만들 정도이다. 머리카락 색과 콤비의 색, 목도리의 색들이 너무나 우아하게 만나고 있다. 거기다 세월의 흐름이 저장된 여유로운 미소는 전체적인 옷차림을 완성시키는 훌륭한 아이템(?)이 되고 있다. 얼굴의 주름살마저 화려한 장신구가 될 수 있다니.(그림 ⑬)
도저히 새파란 젊음으로는 흉내도 낼 수 없는 아름다움이다. 아름다움을 갉아 먹는 것 같았던 나이가 오히려 아름다움을 강화시킬 수 있는 자산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은 정말 놀라울 따름이다.
튀는 색보다는 미묘하게 차이가 나는 색들로 티 안 나게 조화를 이루는 것이 사실은 어렵다. 이 커플들의 옷차림은 평범한 듯 보이지만 비슷한 색조의 옷들을 이처럼 미묘한 차이로 조화를 이루어 비범한 이미지를 연출하는 것은 색에 대한 이해가 깊기 때문이다.(그림 ⑭)
옷도 옷이지만 자기가 들고 다니는 가방이나 심지어 쇼핑백의 색깔까지 맞춘다는 것은 보통 노련한 실력이 아니다. 이탈리아 특유의 튀는 색상들이 항상 고품격을 유지하는 것은 이처럼 화려한 색들을 주변의 상황과 잘 연결시키기 때문이다. 역시 노련한 색 감각이다.(그림 ⑮)
유럽 사람들의 이런 감각들을 보고 있노라면 옷을 잘 차려 입는 일이 단지 패션 잡지나 텔레비전 드라마 몇 편으로 되는 것이 아님을 알게 된다.
색을 이해하고 형태를 이해하는 숙련된 교육이 무엇보다 절실하다. 이런 이해가 있기 때문에 유럽 사람들은 자신있게 자신을 표현하고 전통을 활용할 수 있는 것이다. 자신감은 거져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교육을 통한 실력으로부터 비롯됨을 알 수 있다.
우리만큼 역사적 전통이 두툼한 나라도 없을 것이다. 옷을 잘 입을 수 있는 잠재력은 일단 대단하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부족한 점은 바로 기본에 대한 이해와 그것의 숙련을 통한 실력이다. 무조건 자기 자신을 찾으라는 말 보다는 기본적인 이해를 통해 자연스럽게 자신감을 가지고 자유롭게 옷을 입으라는 교훈을 유럽의 패션인들로부터 배우게 된다
최경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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