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묘한 일이다. 한 때 진취적이고 개방적인 도전으로 취급되었던 남녀 공용 스타일-안드로지니어스, 유니섹스 스타일-은 진부한 개념으로 밀려났고 20세기 말 스타일을 즐기는 남성들을 사로잡았던 메트로섹슈얼, 위버섹슈얼은 이제 더 이상 새로울 것 없는 대중적 스타일이 되어버렸다.
유니섹스/안드로지니어스 스타일이 여성들에게 남성미, 혹은 자신의 파워를 표현하는 실험대를 제공했다면, 메트로섹슈얼은 아름다움에 대한 욕구 표현에 늘 망설여온 남성에게 본격적인 패션의 즐거움을 열어준 의미 있는 장치였다.
물론 전자가 과도한 남성적 미를 표면에 등장시켜 여성성을 포위하는 장치로 작용, 이성에게 매력을 반감시키는 요소로 등장한 반면 후자는 ‘감각 있고 멋진, 자신을 가꿀 수 있는 남성’이라는 이미지로 여성들에도 호평 받았다는 온도 차이는 있지만 말이다.
하지만 여성을 남성의 패션 영역으로, 혹은 남성을 여성의 패션 영역으로 넘을 수 있는 문을 열어준 스타일 변혁은 점점 더 진화하며 패션계의 영역을 넓히고 있다.
성별의 모호함, 그 패션의 미학유니섹스나 메트로섹슈얼이 남자와 여자라는 성별의 ‘넘나들기’를 실험하는데 그쳤다면 최근 패션계는 아예 남녀 성별 자체를 뒤집거나 모호하게 만드는, 혹은 양성이 공존하는 트랜스섹슈얼, 트랜스젠더적 미학에 흠뻑 빠진 분위기다.
만화 ‘베르사이유의 장미’의 오스칼을 연상시키듯 섬세한 아름다움 속에 남성적 파워가 더해진 묘한 매력의 소유자, 안드레이페익은 마크제이콥스를 비롯한 디자이너들의 광고와 런웨이를 점령했고 강하고 선명한 골격 속에 남성미와 여성미가 뒤섞인 양성적 매력으로 지방시 광고 캠페인에서 강렬한 매력을 자랑한 여자모델 리아 T나 성장을 멈춘 사춘기 소년처럼 신선한 매력으로 런웨이를 장식하고 있는 프레야베하는 트랜스섹슈얼한 묘한 매력으로 보는 이의 가슴을 들뜨게 한다.
그뿐이 아니다. 일찌감치 커밍아웃한 디자이너 마크제이콥스는 잡지 Industrie 커버에 양성적 이미지가 혼재하는 퇴폐적 모습으로 등장했고 ‘스파이더맨’의 매력적인 악당, 제임스프랑코는 흑백 영화 속에서 튀어난 듯 매혹적인 여자의 모습으로 Candy 잡지 커버를 장식했다.
마치 패션계 전체가 줄지어 늘어서 “Viva, transsexual” 을 외치는 듯한 지금의 상황은 낯설고 충격적인 동시에 새롭고 관능적이다. 도대체 왜 패션계가 트랜스섹슈얼한 이미지에 흠뻑 빠져 버린 것일까?
성별의 정체성을 혼돈 시키는, 혹은 양성이 혼재하는 트랜스섹슈얼한 이미지는 늘 패션계를 매혹시키는 소재였다.
1960년대에는 앤디워홀의 뮤즈로 1970년대에는 트랜스섹슈얼한 모델로 스티븐프라우즈 뮤즈로 유명했던 캔디 달링, 1960년대 보그 영국판 모델로 등장했다 트렌스젠더라는 사실이 알려져 모델을 접어야 했던 에어프릴애쉴리, 토드올드햄의 런웨이에 등장했던 트렌스젠더 빌리비욘드, 1980년대 티에리머글러의 무대에 자주 등장했던 모델 조이아리아스 트랜스섹슈얼한 이미지로 패션계를 매혹시켰던 존재였다.
금기 자극하는 도전적 관능미굳이 패션계뿐 아니다. 18세기 낭만주의 소설가 조르즈샹드(본명: 아망딘 오뤼리뒤드방)은 남작 부인이라는 안정된 자리를 박차고 나와 남성복 차림으로 남성이 지배하던 예술 문화계에 뛰어들었고 쇼팽, 메리메, 알프레도 디 뮈세 등 예술가들을 사랑의 포로로 만드는 치명적 매력을 발휘한다.
또한 지금까지도 ‘할리우드 역사상 가장 매혹적인 다리‘로 꼽히는 여배우 마를렌느디트히리는 헐렁한 맨스 셔츠와 수트 차림으로도 화려한 드레스로 표현할 수 없는 관능미를 발산, 당대의 섹스심벌로 자리하며 여성들에게도 야릇한 설레임을 이끌어냈고. 할리우드의 전설적 여신, 그레타가르보나 캐더린헵번은 남성용 수츠와 팬츠, 셔츠와 슈즈 속에서 여성성만으로는 표출할 수 없는 오묘한, 매력을 발산한 트랜스젠더적 매력으로 유명한 인물이다. (가슴과 허리를 강조하는 당시 스타일에 벗어난 이들의 파괴적 매력은 남녀 모두에게 충격과 매력으로 다가섰고 이들은 지금까지 양성애자, 혹은 동성애자였다는 소문에 휩싸이게 한 원인으로 자리했다.)
또한 패션 역사의 가장 매력적인 순간의 하나로 꼽히는 입셍로랑의 ‘르스모킹’룩은 섬세한 여성미가 파워풀한 남성성과 얼마나 매혹적인 시너지를 이뤄낼 수 있는 지 보여주는 깨우침의 순간이었다.
멀릴 갈 것도 없다. ‘커피프린스 1호점’, ‘바람의 화원’ ‘성균관스캔들’ 등 열혈 팬들을 양산한 TV 드라마 속의 여주인공은 하나같이 남장을 한 양성적 매력으로 중무장 하고 있으니까.
특히 ‘커피프린스 1호점’의 원작을 보면 여주인공 고은찬이 성장을 멈춘 사춘기 소년처럼 키는 멀대 같이 크고 눈은 둥글고 얼굴은 하얗고 가슴은 납작한 ‘꽃미남’ 스타일로 묘사된다. 즉 남성과 여성에게 동시에 호소력을 갖춘 양성적 매력의 소유자였던 것이다. 최근 화제가 된 ‘시크릿 가든’의 여주인공도 마찬가지다.
노골적인 남장은 하지 않았지만 길라임은 스타일부터 직업까지 여성성과는 거리가 먼 ‘보이쉬 한’ 모습으로 일관해 대책 없이 연약하고 부담스럽게 예쁜 여주인공에 지친 여성 시청자들에게 신선한 즐거움을 선사한다. 간단하다.
여자들은 남성적 향기가 풍기는 미소년 같은 여성에게 매력을 느끼고 어딘지 모르게 몸을 가두고 조이는 여성복에서 벗어나 매니쉬한 의상을 입을 때 해방감을 느낀다. 패션계가 남성적 이미지로 포장한, 독특하고 매혹적인 트랜스섹슈얼 이미지에 매료되어 있는 것도 그 때문이다.
남자들에겐 아직 먼 ‘스커트’ 패션바로 여기서 반전이 등장한다. 패션계가 남성적 이미지를 차용하는 여성이나 매니쉬한 스타일, 나아가 여성의 남성적 트랜스섹슈얼化에 관용적 시선을 보이는 반면 여성적 이미지를 전면 포진시킨, 남성의 여성적 트랜스섹슈얼化에는 여전히 거부감을 보이는 것.
실제로 20세기 초반 여성들이 남성의 맨스웨어를 적극 도입, 여성 패션의 중심으로 끌어온 반면 남성들이 전통 여성 패션을 조금이나 실험할 수 있었던 것은 메트로섹슈얼이 힘을 얻은 20세기 후반이 되어서야 가능했다.
그렇다면 남성들은 언제쯤 금기의 벽, 스커트를 입게 될까? 유니섹스, 앤드로지니어스 스타일은 이름이 상징하는 이미지와는 달리 매니쉬한 스타일을 통해 오묘한 여성미를 ‘강화’시키는 장치로 활용된 측면이 강했고, 남성의 억눌려온 패션 욕구를 채워주는 통로이자 여성적 디테일도 두려워않는 메트로섹슈얼이 대중화 되었다고 해도 남성들의 트랜스섹슈얼한 패션 실험은 여전히 두려움의 대상이다.
맨스웨어를 차용한 여성 패션계가 즐겨 선보이는 반바지 수트는 오랜 팬츠의 역사를 가진 남성들에게 여전히 일탈적인 도전이며, 성적 경계를 허무는 최후의 상징인 ‘스커트’는 트랜스섹슈얼한 이미지가 ‘통하는’ 21세기 패션계에도 여전히 넘기 힘든 사차원의 벽이다.
물론 2000년대 초반 디자이너 마크제이콥스가 팬츠에 대한 대안으로 티셔츠와 재킷 등 전통적 맨스웨어에 킬츠나 샤롱을 곁들인 파격적 스타일을 통해 남성복에서 ‘스커트’의 가능성을 실험했지만 킬츠는 스코틀랜드, 사롱은 말레이시아 원주민 남성들이 입었던 전통 의상이었던 만큼 여성의 ‘스커트’를 차용했다고 말하기는 힘들다.
하지만 이번 시즌 스타일리쉬한 남성들을 사로잡은 하이힐 부츠나 굽 높은 슈즈, 하렘팬츠, 헐렁한 티셔츠+레깅스 등은 패션의 성적 벽에 도전하는 남성들을 위한 양성적 패션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흥미로운 도전이다.
예정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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