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근 패션계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
글로벌 패션가를 얼어붙게 했던 금융 위기를 벗어난 지금 럭셔리 패션가가 잠시 다소 편한 가격대의 아이템을 늘렸던 시도를 버리고 가격 인상 및 울트라 럭셔리 지향적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가운데 싼 값과 트렌디함을 무기로 움직였던 하이 스트리트 업계마저 가격 인상 계획을 밝히고 나선 것.
럭셔리 업계의 가격 인상이 미치는 파급이 한정적이라면 폭넓은 소비층을 포섭하고 있는 하이 스트리트 업계의 가격 인상은 보다 직접적인 파급력을 갖고 있어 시장의 시선이 쏠릴 수밖에 없다. 특히 영국의 경우 많은 유통망을 확보하고 있는 하이 스트리트 체인들이 ‘실질적 경제 상황 및 윤리성을 반영한 가격 인상’을 표방하고 있어 그 움직임이 주목된다.
경제·사회·윤리적 논리 속속 앞세워 가격 인상
흥미로운 점은 하이 스트리트 업계가 내놓은 ‘가격 인상의 필연성’을 뒷받침 하는 논리가 단순히 ‘경제성’ 논리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업계의 치열한 경쟁으로 가격 인하전이 촉발된 것은 사실이지만 생산 단가를 낮추기 위해 노동력이 싼 제3세계 국가의 하청 공장에서 제품을 생산하면서 노동력 착취라는 윤리 문제가 대두되고, 생산 과정에서 적절한 환경 보호 정책이 실현되지 않아 토양 및 수질 오염 문제가 발생하고, 값싸고 트렌디한 옷을 생산하면서 불필요한 어패럴 쓰레기가 양산되는 윤리·환경적 문제까지 뒤섞이면서 하이 스트리트 업계의 낮은 가격 책정이 오히려 업계를 둘러싼 불편한 시각을 제공하게 되었다는 설명.
실제로 영국 디스카운트 어패럴 체인의 거두, Next와 Debenhams, 그리고 프리마크 등은 코튼 가격이 45%나 인상되었고, 동남아시아의 노동 임금이 인상되고 영국 파운드화의 약세, 간이과세가 내년 1월 20%까지 인상됨에 따라 의류가 인상은 필수불가결하다고 한 목소리를 냈다.
따라서 영국 하이 스트리트 업계는 이 같은 경제 ‘사회 ‘윤리적 문제가 복합된 시장의 상황을 반영, 2011년부터 가격 인상을 피할 수 없다는 점을 명백히 했다. 프리마켓 관계자 또한 코튼과 기타 원자재 가격이 인상되고, 간이과세까지 증가하면서 수익 마진 하락을 피할 수 없기 때문에 일정 부분 제품가 인상을 진행하지 않을 수 없다는 입장을 밝힌 상태다.
공정무역 등에 업고 여론 유도
그렇다면 가격 인상이 하이 스트리트 업계의 수익 창출에 도움이 될까? 영국 어패럴 업계의 전망은 그리 긍정적이지 않다.
2011년 제품가 8% 인상 방침을 밝힌 하이 스트리트 체인 Next 관계자는 제품가가 10% 인상되면 소비자들이 구매하는 제품 수가 10% 하락할 수밖에 없어 머천다이징 구색 및 재고 관리가 좀 더 까다로워질 뿐 아니라 지난 15년 간 영국 하이 스트리트 업계의 가격 인상이 미뤄져 왔던 만큼 싼 가격에 익숙해진 소비자들이 가격 인상에 부정적 반응을 보일 수 있다는 분석.
마켓 전문가들 또한 소비자들의 반응에 주목하고 있는 모습이다. 오랜 기간 동안 하이 스트리트 브랜드의 가격 인하전에 익숙해진 소비자들이 글로벌 불황이 겨우 끝난 지금, 업계의 가격 인상 전략에 당황할 수밖에 없고 다양한 종류의 아이템을 싼 값으로 구매하던 소비 행태가 가격 인상이 진행된 뒤에도 계속될 지 의문이라고 지적한다.
즉 하이 스트리트 업계의 가격 인상 움직임은 소비자들에게 가격 인상 폭만큼 구매하는 물품을 줄일 것인지, 혹은 추가 가격을 지불하고 기존의 소비 패턴을 이어갈 지를 고민하게 할 시험대라 할 수 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최근 영국의 소비자 지수가 3.1% 정도 상승했고 의류와 풋웨어, 항공료 소비가 이 같은 흐름을 이끌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 가격 인상이 된다고 당장 구매율 감소로 이어질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는 정도.
실제로 고급스런 디자이너의 룩을 놀랄 만큼 편한 가격에 제공, 영국판 패스트 패션의 대명사로 자리한 프리마크는 BBC 방송 조사 결과 인도의 아동 노동력을 활용, 생산 단가를 낮췄다는 조사 결과 이후 부정적 여론을 피할 수 없었다.
아이러니한 점은 싼값에 고품질을 원하는 소비 심리만큼이나 ‘아동 노동력 착취’ 혹은 노동자의 인권을 무시하는 스웻샵 행태에 대한 소비자들의 분노가 높다는 사실이다. 따라서 하이 스트리트 업계는 이 같은 양면성을 지닌 소비자의 심리를 적절히 활용, 가격 인상의 정당성을 설파하는 전략을 취하는 것이 유리하다는 분석이다.
면제품은 생산국 간 묘한 알력으로 진통
이런 와중에 패션계의 화두로 자리한 공정무역(Fairtrade_-생산자에게 정당한 대가를 제공하고 환경 친화적인 방식으로 생산·거래하는 운동)을 주도하는 단체들이 현재 코튼 가격이 더욱 인상되어야 한다는 분석을 내놓고 있어 눈길을 끈다.
이들은 지난 ‘15년간 코튼가 인상이 지속된 것은 사실이지만 시장 흐름 대비 실질 가치를 비교할 경우 1970년의 코튼가의 1/3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면서, 이로 인해 코튼을 생산하는 남반구 지역의 가난한 코튼 재배 농들의 삶이 더욱 힘겹게 살고 있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즉 공정무역이 힘을 얻고 있는 지금 원료 생산자에게 정당한 대가를 제공하기 위해서는 코튼가 인상이 지속될 수 있다는 것. 따라서 하이 스트리트 업계가 내놓는 가격 인상의 여러 가지 이유 중, 윤리적 생산과 구매를 중시하는 소비자들은 이 같은 논리에 기반을 둔 가격 인상의 필연성에 일부분 공감하지 않을 수 없다.
결국 하이 스트리트 업계의 가격 인상 움직임에는 코튼 가격의 인상이 깊이 관여하고 있다는 것인데 코튼 생산국 간에도 묘한 시각 차이가 있어 시선을 끈다. 공정무역을 주창하는 사람들은 단순히 코튼가 인상이 재배 농가의 수입에 반영되지 않는 만큼 생산자의 정당한 대가를 독려하는 공정무역의 확대를 주장하면서,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코튼을 수출하는 미국 코튼 농가가 매년 미국 정부로부터 엄청난 지원금을 받고 있어 가난한 코튼 생산 국가의 생산 농가는 정당한 경쟁의 기회를 아예 빼앗기고 만다고 지적한다.
이런 와중에 중국과 파키스탄 등 주요 코튼 생산 국가들이 홍수 피해를 엄청난 생산 손실을 겪었고 제2의 코튼 생산국인 인도는 국내 코튼가 인상을 도모하기 위해 수출을 금지시키는 전략을 취하고 있어 코튼 가격 인상은 피할 도리가 없다.
특히 글로벌 금융 불안이 휘몰아친 2년 전 농부들이 가치가 낮은 코튼 대신 옥수수나 콩 재배로 시선을 옮긴 점도 코튼 가격 인상을 가속시킨 원인이다.
가격 인하 경쟁 막 내리나
이런 상황을 감안하면 하이 스트리트 업계가 내세우는 윤리적 입장, ‘공정무역’으로 인한 코튼가 인상으로 제품 가격 인상이 유발되었다’는 설은 사실상 거리가 있어 보인다. 하지만 가격 인상을 피할 수 없는 업계로서는 ‘공정무역’에 대한 소비자의 양심을 자극, 인상에 따른 업계의 부담을 줄일 수 있는 공정무역 카드를 사용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일각에서는 코튼가 인상으로 코튼을 재배하는 농가들이 늘고 있는 만큼 조만간 코튼가 인상 바람이 주춤해질 것으로 예상하고 있지만, 한번 올라간 가격이 쉽게 내려오기 힘들다는 점을 감안할 때 하이 스트리트 업계의 가격 인상은 기정 사실로 받아들여지는 분위기다.
예정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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