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물은 반드시 형태와 색깔을 가진다. 형태는 손으로 만질 수 있는 분명한 사물의 성질이지만 색깔은 조금 다르다. 주변의 상황이 조금만 달라도 변한다. 따라서 존 로크와 같은 근대 철학자는 형태와 달리 색을 사물의 표피에 기생하는 흐물흐물한 어떤 것으로 보았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보는 사람의 눈에 바로 달려갈 수 있는 것도 색이다.
대부분의 패션 디자인은 형태보다는 색깔에 그 아이덴터티를 의지하는 바가 크다. 검은 색을 트레이드 마크로 삼아 수십 년을 변신해 온 ‘샤넬’, 이탈리아의 대리석 색을 가진 ‘조르지오 아르마니’, 우아하고 화려한 색을 자랑하는 ‘이브 생 로랑’, 꼬집어주고 싶을 정도로 귀여운 색의 ‘마크 제이콥스’ 등을 보면 쉽게 알 수가 있다.
조형과 색
우리 귀에 들리는 음악을 인수분해하면 음정과 박자로 나누어지듯이 우리 눈에 보이는 형상을 인수분해하면 형태와 색으로 나뉘어진다. 형태는 물체의 부피와 구조, 윤곽 등을 형성하고 색은 우리의 눈을 휘황찬란하게 자극한다. 말하자면 형태는 우리 눈에 보이는 형상의 움직일 수 없는 윤곽을 이루고, 색은 형태 위에 코팅되어서 보는 이의 눈 맛을 자극한다. 꼭 이렇게 단순화될 수는 없지만 형태는 안정감과 관계하고 색은 시각적 효과와 관계한다고 볼 수 있다. 눈을 감아도 형태는 손으로 만질 수 있지만 색은 없어지기 때문이다.
존 로크와 같은 철학자는 이렇게 사물의 변하지 않는 속성과 사람의 의식 속에서 실존하는 사물의 속성을 나누어서 1차 성질과 2차 성질로 구분한다. 물론 형태는 제1성질에, 색은 제2성질에 속한다고 정확히 설명하고 있다. 로크의 설명에 입각하면 색은 형태와 달리 사물에 고착되지 않고 사물 위에 붕 떠 있는 어떤 흐물흐물한 성격이 된다.
하지만 존 로크의 혜안과는 달리 디자인에서 색은 넘버 투로 밀릴 사안은 아니다. 비록 사물의 완전한 성질은 아니지만 보는 사람의 감각에 보다 적극적으로 다가가는 것이 색이기 때문이다. 아무튼 디자이너들은 형태에서는 안정성을, 색에서는 표현성을 중심으로 학습하는 것이 좋다.
디자인 영역과 색의 비중
디자인에는 제품 디자인, 인테리어 디자인, 웹 디자인 등 다양한 영역들이 있다. 조형은 이 모든 디자인 영역에 보편적인 것이긴 하지만 그 비중은 영역에 따라 조금씩 다르다. 라이프 사이클이 비교적 길고, 어려운 첨단기술이 많이 들어가고, 대량으로 생산되는 디자인의 경우에는 형태의 역할이 더 크다. 하지만 패션 디자인과 같이 그 반대 경우의 디자인에서는 색의 역할이 더 크다고 할 수 있다.
패션은 우선 사람이 입어야 한다. 따라서 사람의 몸이라는 제약으로부터 벗어날 수가 없다. 그런 점에서는 형태의 자유도가 비교적 낮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패션은 수천억원 하는 금형을 파서 수천만 개를 만드는 디자인에 비해서는 비교적 생산이 용이한 편이다. 따라서 제한된 범위 안에서는 어떠한 디자인 분야보다도 자유롭게 조형적 표현을 할 수 있다. 이 점은 다른 디자인 분야에서 대단히 부러워하는 점이다. 그리고 패션은 무엇보다 돋보이고 싶어하는 사람들의 필요를 등에 업고 있기 때문에 실용성보다는 장식성에 대한 비중이 크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제작의 용이함과 장식성에 대한 추구는 한정된 형태의 범위 안에서 형태보다는 색을 통해 구현되기 쉽다. 따라서 패션 디자인에서는 형태보다는 색이 상대적으로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사실 매시즌 쏟아져 나오는 수많은 옷들은 색의 향연이라고 보아도 될 정도로 화려한 색으로 점철되어 있다. 매년 봄과 가을에 선보이는 대규모의 패션 쇼들은 마치 봄날에 피어나는 개나리, 진달래, 벚꽃들의 색의 향연이나 가을철 온 산천을 뒤덮는 단풍의 불타는 색의 축제같이 화려하다. 매시즌 화려하게 피었다가 지고 다음 시즌에 다시 어김없이 화려한 꽃을 피우는 것을 보면 패션은 분명 식물성인 것 같다.
수많은 패션 브랜드들을 보면 색의 영향력을 더욱 확실히 알 수 있다. 대부분의 명품 브랜드들은 형태보다는 색에 의해서 아이덴터티가 결정된다. 검은 색을 트레이드 마크로 삼아 수십 년을 변신해 온 ‘샤넬’, 이탈리아의 대리석 색을 가진 ‘조르지오 아르마니’, 우아하고 화려한 색을 자랑하는 ‘이브 생 로랑’, 꼬집어주고 싶을 정도로 귀여운 색의 ‘마크 제이콥스’ 등 대부분의 유명 브랜드들은 색에 의해 성격이 규정되고 있다. 때론 우아하고 화려한 느낌을, 때론 절제되고 정리된 느낌을, 때론 과격하고 퇴폐적인 느낌을 표현해야 할 때 색은 문학에서 언어가 하는 역할을 그대로 수행한다.
색 공부의 중요성과 문제점들
패션 디자인에서 색이 차지하는 비중이 크다는 것은 그만큼 패션 디자이너들이 색에 대한 많은 공부를 해야 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하지만
최경원 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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