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민 사장이 자신의 이름을 걸고 독립한지 1년 반이 흘렀다. 1년 반만에 「지프」는 시장에 안착하며 합격점을 받았다.
순탄치는 않았다. 예상하지 못한 건 아니지만 '월급쟁이 사장'과 '오너 사장'은 차이가 컸다. 월급쟁이 때에 비해 오너는 챙겨야 할게 몇 곱절 늘었다. 지금의 결정이 자신을 믿고 따르는 직원 수십 명의 미래를 좌우할 수 있다는 생각에 정신을 바짝 차렸다. 유통가를 떠도는 루머들도 끊이지 않고 괴롭혔다. 자금난으로 브랜드 운영이 어렵다는 소문이 돌면서 웃지 못할 해프닝도 수차례 겪었다.
“창업 초기 여러 사건을 겪으면서 한 가지를 분명히 정했어요. '원칙을 정확히 세우고 나부터 원칙을 지키자. 그리고 어떤 상황이 생기더라도 더도 덜도 말고 원칙대로만 하자.' 그러고 나니 한결 마음이 편해지더군요. 100% 지켰다고는 할 수 없겠지만 나름대로 충실하게 하려고 노력했죠. 지금 「지프」의 모습이 그 결과가 아닌가 싶습니다.”
디자이너 출신이라는 성향 때문인지 김 사장은 과거 감성적인 면이 강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래서 때로는 불이익을 겪기도 했다. 물론 지금도 기본적인 성향에는 변함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오너’라는 자리는 가슴보다 머리의 역할을 더 필요로 했다. 김 사장이 선택한 방법은 ‘원칙 경영’이었다.
원칙 1. 속도보다 ‘브랜드 가치’가 우선이다
“「지프」는 남들보다 싸지 않습니다. 오랜 경륜으로 고정고객을 확보하고 있지도 않습니다. 그런데 지난해 장사를 마감하고 보니 기대 이상의 이익을 거뒀습니다. 곰곰이 생각하면 할수록 정답은 고객에게 있다는 결론을 내릴 수 밖에 없습니다.”
김 사장의 첫 번째 원칙은 ‘먼저 고객에게 브랜드 가치를 인정받는다’였다. 그래서 상품 경쟁력을 높이는 데 집중했다.
“론칭 초반에 브랜드를 띄우는 전략적인 스킬은 누구보다 자신 있습니다. 많이 해봤으니까요. 그런데 그 방법이 처음 정한 원칙에 벗어나는 겁니다. 일종의 착시현상이랄까요? 좋은 상품, 좋은 브랜드로 인정받는 것이 아니라 분위기와 가격에 휩쓸리는 현상이 생기는 거죠. 그래서 상품 하나하나에 더 공을 들였습니다.”
김 사장의 작전은 맞아떨어졌다. 지난해 봄부터 겨울까지 4개 시즌의 평균 판매율이 65%에 달한 것이 이를 증명한다. 모자부터 티셔츠, 데님, 점퍼까지 골고루 팔렸다. 소위 말하는 ‘대박’ 아이템은 없었다. 아니 만들지 않았다는 표현이 정확할지 모르겠다. 초반에 반응이 좋은 상품들은 발빠른 리피트 생산으로 물량을 쏟아부을 수도 있었겠지만 오히려 판매 진도를 조절하면서 고객들의 반응을 살폈다.
“물론 유혹이 있었습니다. 여름 티셔츠의 초기 반응이 워낙 빨라서 그대로 가다가는 시즌 중반에 완판이 예상됐습니다. 원칙을 지킬 것인가 타협할 것인가를 놓고 고민하다 결국 원칙을 선택했습니다. 그랬더니 놀라운 일이 벌어지더군요. 고객들이 「지프」를 인정해주기 시작했습니다. 시즌 중후반이면 행사 매대를 깔아놓고 기획전을 하는 브랜드에 지친 소비자들이 우리의 가치를 높이 평가해주는 것이었습니다. 고객을 ‘싸구려’로 대하지 않은 진심이 통한 것이었습니다.”
원칙 2. 돈보다 사람이 우선이다
김 사장의 두 번째 원칙은 ‘사람’이다. 이제 막 시작한 회사인데다 신규 브랜드이다 보니 잡아야 할 체계도, 업무량도 많은 것은 불 보듯 뻔한 일이다. 그런데도 직원들은 김 사장을 믿고 함께 했다. 두 번째 원칙 ‘돈보다 사람’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직원들에게 표현을 많이 하려고 노력해요. 고맙다, 수고했다, 잘했다… 그렇다고 좋은 말만 하는 건 아니죠. 때로 싫은 소리도 하지만 중요한건 나부터 진심으로 대하면 직원들도 진실한 마음으로 답한다는 사실을 깨달았지요.”
김 사장의 사람 중심 경영은 ‘일당백’의 경쟁력으로 돌아왔다. 홀하우스의 전체 직원은 스무 명 남짓. 20~30대가 거의 대부분이다. 디자인실은 20대가 주축이다. 직원들을 어리다고 얕보지 않는다. 회사 안이건 밖이건 누구에게도 주눅들지 말라고 가르친다. 부수적인 일들은 외부 전문가나 기업을 적절히 활용해 아웃소싱하고 직원들은 본연의 임무에 더 집중하도록 했다.
“요즘 젊은 사람들에게는 열정이 부족하다고 말하는 기성세대가 많습니다. 저는 함께 일하는 방법을 잘 몰라서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생각합니다. 십수년 전에는 그냥 시키는대로만 했지만 요즘은 다르잖아요. 환경이 다르고 생각이 다른데 과거를 기준으로 하는 것부터가 잘못됐지요. 젊은 사람들 만의 경쟁력이 있습니다. 그걸 표출할 수 있는 문화를 만들어야 합니다.”
‘일벌레’라고 소문이 자자한 김 사장이지만 의도적으로 오후 7시 전에 퇴근한다. 자신부터 드라마도 챙겨보고 책도 보고, 가족과의 시간도 갖는다. 살가운 릴레이션십(관계)과 여유에서 오는 충전을 느낀다.
한 달에 한두 번은 전직원이 서울 근교 MT나 족구대회로 몸도 풀고 지친 마음도 달랜다. 관계를 중요하게 여기는 젊은 직원들을 위한 배려에서 시작했지만 김 사장 자신부터 새로운 시도에 많은 도움을 얻는다.
“많은 기업을 보면 윗사람은 자신이 피해자라고 생각하고 아랫사람은 상사가 ‘꼰대’라고 싫어합니다. 권위주의는 나쁘지만 ‘질서’는 중요합니다. 그래서 우리 회사는 위계질서를 강조합니다. 격렬한 토론을 하더라도 서로 존중하고 예의를 갖춥니다. 그래야 상하 모두 상생하는 문화가 생깁니다. 물론 어려운 부분입니다. 하지만 ‘돈보다 사람이 먼저’라는 원칙을 정하고 나면 그리 어려울 것도 없습니다.”
원칙 3. 오늘 하루 게으르면 내일은 없다
최근 홀하우스는 사무실을 넓혔다. 기존 건물의 1개층을 더 임차한 것이다. 품평회를 할 수 있는 공간과 직원 휴게 공간을 만들었다. 그리고 신규 브랜드 론칭을 위한 팀을 꾸릴 공간을 마련했다.
“누구나 시간이 많아지면 게으르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저의 원칙 중 하나가 ‘브랜드는 오늘 하루 게으르면 내일은 없다’에요. 저부터 게을러지면 분명히 조직 전체에 영향을 줍니다. 그러면 당연히 브랜드에도 영향이 미치지요. 브랜드는 살아 숨쉬는 유기체라고들 말합니다. 생명을 돌보는 일을 하면서 하루라도 게으를 수는 없겠지요.”
그래서 김 사장은 새로운 생명을 탄생시킬 준비를 하고 있다. 아직 「지프」를 성장시키는 데 더 집중해야 하지 않냐는 의견도 있었지만 이만하면 직원들 중심으로 브랜드 운영이 가능하기 때문에 자신의 일을 새롭게 만들기 위해서다. 초반에는 일일이 직접 챙겨야 했지만 이제 결과를 확인하고 보완할 사항만 짚어주면 되기 때문에 정작 자신이 쓸 수 있는 시간이 많아졌다는 것이다.
“캐주얼 시장이 어렵다고 하지만 분명히 많은 기회가 있습니다. 소비자들도 이제 획일적인 트렌드 중심 소비에서 벗어났고요. 소비자들의 욕구가 다양해진 만큼, 또 다른 개성을 가진 브랜드가 필요합니다. 아직 밝힐 수는 없지만 분명한 것은 캐주얼 시장에서 또 다른 성장 모델을 보여줄 겁니다.”
김 사장은 자신의 눈에 보이는 새로운 성장 가능성을 실현하기 위해, 자신이 게을러지는 것을 막기 위해 또 다른 브랜드 론칭을 준비하는 것이다.
“신규 브랜드 론칭은 정말 어렵습니다. 큰 그림은 있지만 디테일로 들어가자면 머릿속에 복잡하게 얽혀 있는 실타래를 하나하나 풀어서 그 끝을 끄집어 내는 것과 같다고 할까요? 그런데 그걸 풀어내고 나면 엄청난 성취감이 기다리고 있지요. 내년 봄 선보일 신규 브랜드는 이제 막 뭉쳐있는 실을 다 풀었다고나 할까요? 2~3개월 안에 실타래의 끝을 찾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몰입의 차이가 성과의 차이를 낳는다
하늘의 뜻을 깨닫는다는 지천명을 한 해 앞두고 있는 김성민 사장. 그는 자신이 이룬 성과를 논하자면, 일의 양보다 중요한 것이 바로 ‘몰입’의 차이라고 말한다. 흔히들 타고난 감각이 좋다고 칭찬하는 결과가 사소한 것 하나까지 ‘왜?’와 ‘어떻게?’에 끊임없이 몰두한 결과라는 것이다.
론칭 2년차의 「지프」. 그런대로 시장에서 인정받았지만 아직 가야 할 길이 더 멀다. 준비중인 신규 브랜드는 더 말할 나위가 없다. 그래서 김성민 사장은 자신을 지켜보는 많은 사람들에게 백마디 말보다 실천과 성과로 보여주겠다고 각오를 다진다.
김정명 기자
kjm@f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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