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어와의 거래에서 클레임이 발생하면 손실을 따지기에 앞서 해결하는데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먼저 한 발 물러서면 바이어도 결국 알게 됩니다. 진실이 최선의 비즈니스 전략이죠.”
대표적인 교직물 업체로서 ‘프리미에르비죵 파리’ 전시회에 참가해 호평을 받아온 신흥(대표 이동수)은 해외 수출을 통해 성장해 왔다. 이를 진두지휘하고 있는 장두훈 전무는 직물 개발과 해외 영업의 대가답게 항상 출장을 준비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매월 출장을 가는 편이다. 어느 해는 바이어를 만나 상담하고 새로운 소재를 찾기 위해 148일을 해외에서 보냈을 정도로 그는 꿈을 꾸는 유목민이다. 그래서 항상 아내와 아이들에게는 미안한 마음을 지니고 산다고 했다.
장 전무는 영남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직장 생활을 하던 중, 1990년 4월 부친이 운영하던 신흥직물이 어려워지면서 합류했다. 서울사무소를 맡아 동분서주하며 섬유 분야에서만 20년 세월이 흘렀다.
당시 신흥은 체코산 셔틀체인지 직기 48대를 가지고 나일론 타슬란을 짜서 코오롱에 납품하고 해동의 폴리에스터 직물 임직을 하고 있었지만 직기 가동율이 60%를 밑도는 어려운 시절이었다. 그러다 장 전무는 N/C 직물을 개발했는데 체코산 직기의 고장이 잦아 말썽이었다.
이렇게 교직물 생산을 시작해 N/C 직물 생지를 만들어 해외에 팔다가 홍콩 바이어를 만나며 가공지를 시작한 것이 터닝 포인트가 됐다고 했다. 당시 수출과 로칼 실적을 합쳐 1000만달러를 넘었고 마진도 10%가 넘어 회사가 활기를 찾았다.
신흥은 1996년에 염색 공장에 140억원을 투자하게 된다. 이를 바탕으로 1998년 5월에는 스타일만 등 대형 가먼트 업체와 거래를 시작했다. 그 해 가을에는 미국 지사를 설립해 아베크롬비로부터 N/C 직물 오더를 받았고, 뉴욕 현지 오더만 연간 1500만 달러 상당을 받을 정도로 안정을 찾았다. 그 후 장 전무는 마이크로 직물, 해도사 스웨드에 이어 메탈 직물을 대체할 형상기억 소재인 PTT 메모리 직물 개발에 성공했다.
특히 일본 출장 중 아이디어를 얻어 휴비스와 함께 시작한 메모리 후염 직물 개발은 상용화에 어려움을 겪으며 중단 위기에 놓인 적이 있었다. 고심하던 중에 캘빈클라인으로부터 원사 100톤이 소요되는 10만야드의 오더가 터지는 행운이 찾아왔다. 다음에는 20만야드로 늘었고, 염색이 안정되면서 활기를 찾았다. 그 후 중국에서 메모리 솔라트윌 오더가 들어왔고, 국내 패션 업체에게도 3년간 130만야드를 팔 정도로 효자 상품이 됐다.
“지금까지 무엇보다 항상 운이 따랐고 밀고 나가는 저력이 있었다. 또 트렌드를 정확히 읽었고, 품질의 A/S를 철저히 한 것이 주효했다”면서 “신흥은 외부에 검사를 맡기지 않고 엄격하게 자체 검품을 하는데 이것도 바이어의 신뢰가 없으면 불가능하다”고 장 전무는 강조했다.
또 “하드웨어가 탄탄한 국내 패션 업계가 이제부터 소프트웨어인 컬러 트렌드 지배력을 갖추며 소재 업계와 협력하면 해외 시장을 확대할 수 있을 것”이라고 장 전무는 제안했다.
신흥은 현재 최대 바이어인 독일 칼스타드 백화점에 재킷용 원단을 납품 중이고, 미국의 페리엘리스, 가먼트 딜러인 G3와도 거래하고 있다.
“앞으로는 ‘모노텍스’를 명품 원단 글로벌 브랜드로 만드는데 승부를 걸어, 신흥의 2개 공장에 있는 130명의 인원이 매월 50만야드만 생산해도 먹고 살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려고 한다”면서 “개인적으로는 빠른 시일 내에 하이 게이지 니트 직물을 짜고 싶고 반드시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하는 장 전무의 힘찬 행보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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