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의 계층구조에 대해 스트레스를 받아온 소비자들이 계층간 교류가 활발해진 요즘 현실에 즐거움을 느끼고 있다. 전혀 상반된 계급처럼 여겨졌던 럭셔리, 디자이너 브랜드, 하이엔드 브랜드, 매스밸류 마켓의 경계가 점점 ‘넘을 수 있는 이웃집’처럼 변하고 있다. 적어도 몇몇 브랜드의 경우에서는 말이다.
지난해 어패럴가를 즐겁게 경악시켰던 ‘칼라거펠트-H&M 리미티드 컬렉션’은 자신이 속한 계급(시장) 외에 다른 계급(시장)에 접근하고자 하는 움직임이 극적으로 드러난 경우로서 ‘패션의 민주주의’가 본격화될 전조라 할 수 있다.
실제로 칼 라거펠트가 값싼 트렌드 라벨의 대명사 「H&M」과 손잡고 한정본을 내놓았을 때 소비자들이 보인 히스테릭한 반응은 소비자들이 서로 벽을 쌓고 있는 각 패션의 계급차에 대해 얼마나 스트레스를 받아왔는지 알려주는 사례였다. 동시에, 디자이너들에게는 ‘특별한 그들’을 대상으로 한 시장이 주는 ‘우월감’과 다수의 ‘소비자’를 상대로 ‘함께 호흡하며 매출을 구축’하는 것, 어느 쪽이 더 매력 있는지를 저울질할 기회를 주었다.
그렇다고 오랜 세월 동안 형성되어 온 패션 계급이 쉽게 무너질 수는 없으며 각자의 색깔이 선명한 브랜드가 희석되는 것 또한 손해 보는 일인 만큼 패션계는 필요한 경우 반대편에 서 있는 다른 계급의 브랜드(혹은 시장)와도 손을 잡는 융통성을 발휘, 민주주의를 실현하려는 모습을 보인다.
칼 라거펠트가 선보인 시퀸 장식이 달린 블랙 블레이저나 그의 얼굴을 프린팅한 티셔츠는 남의 집(?)을 넘보는 디자이너의 상징적인 이미지다. 사실 남의 집을 넘본 디자이너는 칼 라거펠트가 처음은 아니다. 타겟과 독점 라인을 운영하고 있는 재주 많은 디자이너 아이작 미즈라히는 가을 런어웨이쇼에 1천달러 꾸뛰르 드레스는 물론, 매스체인 ‘타겟(Target)’ 전용 아이템인 20달러 짜리 카디건을 함께 선보여 패션의 계급을 알뜰하게 뒤섞어버렸다. 신시아 롤리도 매스마켓용 아이템을 판매하고 있다. 여기에 재치 있는 아이작 미즈라히는 가을 패션쇼 이름을 아예 ‘High Low’로 명명해 디자이너(브랜드) 이름으로, 혹은 가격차로 결정되는 패션계의 계급을 재미나게 비꼬았다.
패스트 패션의 대명사 자라의 거만
그렇다면 럭셔리 또는 디자이너 브랜드만이 언제나 ‘있는 자의 거드름을 피우고’ 스트리트 브랜드들은 디자인을 카피, 팔아먹는 데 집중하고 있는 것일까? 결론은 꼭 그렇지만은 않다는 것이다. 타겟층이 다를 뿐 시장을 분석하고 소비자의 취향을 파악해 제품을 디자인하는 디자이너가 엄연히 존재하는 스트리트 브랜드들은 럭셔리 혹은 디자이너 브랜드에 비해 현저히 낮은 가격의 아이템을 팔아도 소비자의 마음을 사로잡는 자신에 대한 자부심이 엄청나다.
실제로 다양한 아이템, 급속한 유통순환체제, 트렌드에 앞서는 머천다이징을 갖춘 ‘패스트(fast) 패션’의 대명사 「자라(Zara)」는 사진촬영용으로 옷을 빌려달라는 제의에 시큰둥할 정도로 콧대 높은 브랜드로 유명하다. ‘필요하면 사 입으라’는 이 같은 배짱은 대다수의 소비자를 상대하기 위해 가격은 낮췄지만 창의성은 뒤지지 않는다는 자부심에 기초한 것으로서 이름 있는 스타일리스트라도 자기의 돈으로 ‘자라’ 옷을 구입하고, 손님이 많으면 스타라도 줄 서서 기다리는 분위기를 구축해 놓았다.
또한 대부분의 매장이 시즌별로 신제품을 출시하는 것과 달리 「자라」 「망고」 「H&M」 등의 브랜드들은 주 단위, 혹은 일 단위로 매장에 신제품을 반입하고 인기 없는 제품은 수거해서 소비자들이 싫증 낼 틈을 없앤다. 소비자가 매장을 많이 찾는 다는 것은 매출액 증가라는 단순한 사실 외에도 소비자들의 반응과 욕구를 쉽게 파악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따라서 기껏해야 시즌별 아이템을 내놓는 럭셔리 혹은 디자이너 브랜드들이 근접할 수 없는 소비자 친근도와 정확도를 가지게 되는 것이다. 제품가가 현저히 높지만 소비자가 한정된 고가 브랜드가 근접할 수 없는 것은 바로, 소비자와 함께 가고, 소비자의 욕구로 이뤄진 트렌드 브랜드의 날렵성이다.
세계적인 디자이너들이 트렌디 브랜드들의 움직임을 유심히 보고 직간접적으로 이들과 손을 잡고 한정 라인을 선보이는 현상은 결국 매스마켓의 파워를 활용해 자신들의 브랜드를 좀더 효과적으로 광고하고 매출을 구축하려는 현실적인 욕심 때문이다.
디자이너를 하나의 예술가처럼 여겼던 과거의 경우, 돈 때문에 남의 시장을 엿본다는 것은 수치스러운 일이었겠지만 럭셔리업계도 수지타산을 따지는 이익중심형 구조로 바뀌고 있는 지금, 필요에 의해 아랫집과 손잡는 현상은 전혀 유별난 일이 아니다.
럭셔리를 대중에게 돌려주자
패션 전문가들은 패
예정현 기자
- Copyrights ⓒ 메이비원(주) 패션인사이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