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불황이 패션계에 가져온 가장 큰 교훈 중의 하나는 글로벌 유통망의 다변화가 위험 분산 효과를 가져 온다는 사실이었다. 실제로 글로벌 금융 위기의 본산지인 미국 어패럴 업체는 극도로 위축된 소비 심리의 직격탄을 맞으며 북미 시장 매출이 급격히 하락했지만 유럽 시장의 매출은 상대적으로 호조를 보이면서 부진한 매출을 상당량 상쇄하는 효과를 얻었다. 루이비통, 에르메스, 구찌, 아르마니 등 하이엔드 브랜드는 물론 H&M, 자라, 유니클로 등은 하이스트릿 업체들은 불황이 정점을 이룰 때 조차 자국 내 시장, 혹은 기존의 유통망에서 벗어나 신규 시장을 개척에 더욱 적극적인 전략을 펼쳤다. 이는 기존의 시장이 포화 상태를 이뤘다는 1차적 이유도 있지만 유통망을 보다 다변화시키는 것이 위험분산 효과를 가져온다는 진리를 절감했기 때문이다.
면밀한 현지 시장 조사 선행돼야
그렇다면 신규 시장 진입은 언제나 달콤한 매출을 약속해줄까? 그럴 리가 있나. 시장이 다양해진다는 것은 곧 각 로컬 시장에 대한 치밀한 분석과 전략이 필요하고, 무엇보다 새로운 타깃인 로컬 소비자들의 심리를 파악해야 하는 예민한 작업이 동반되어야만 성공이 가능한 예민한 작업이다. 특히 로컬 시장의 특성을 반영하지 않고 모든 시장에 일관된 전략을 섣불리 도입했다가는 유통망 확장전이 유동 자본 유실과 브랜드 이미지를 손상시키는 불편한 결과를 가져 올 수도 있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된다.
이를 감안할 때 도쿄 긴자 지구에 문을 연 아버크롬비&피치의 행보는 브랜드 이미지의 통일성과 현지 소비자들의 정서 중 어느 것이 더 매출 구축에 성공적인지를 가늠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된다. 백인지향적 브랜드 이미지와 광고로 미국 젊은이들의 사랑을 받아온 어패럴 업체 아버크롬비&피치는 H&M, 자라 등 값싸고 트렌디한 하이스트릿 리테일러가 시장을 확대하면서 미국 내에서 급속한 매출 부진을 경험, 미국외 유통망 확대를 매출 구축하는 전략에 돌입했고 일본에 첫 번째 상륙을 감행한 상태. (전문가들은 상대적으로 선택폭이 좁고 변화가 적은 아버크롬비&피치의 제품 구색이 값싸고 트렌디하게 신제품을 제공, 소비자들의 믹스&매치 욕구를 충족시키는 H&M과 자라에게 시장을 빼앗기게 된 원인으로 보고 있다. 또한 유색 인종을 차별하는 듯한 인사 관리와 백인 지향적 광고 캠페인과 동양인을 조롱하는 듯한 반복되는 ‘이슈 마케팅’이 매출 구축 효과보다는 브랜드 이미지에 부정적 영향을 미쳤다는 지적을 하고 있다.)
문제는 아시아 시장의 관문이라 할 도쿄에 진출한 아버크롬비&피치가 그보다 먼저 일본 시장에 진출, 매장 오픈 첫날 매출만 평균 55만 달러에 달한 것으로 알려진 H&M과 자라 등의 하이스트릿 리테일러와 달리 다소 불안한 반응을 보이고 있는 것.
현재 일본 시장은 럭셔리 브랜드에 대한s선호도에서 벗어나 유니클로, H&M, Forever21, Shibuya109 등 믹스&매치가 가능한 저가의 하이스트릿 리테일러들이 시장성을 인정받고 있는 상태로 아버크롬비&피치의 일본 시장 진입은 시기적으로 적당하다. 하지만 아버크롬비&피치는 하이스트릿 시장을 타깃으로 하면서도 의류의 가격을 미국 시장보다 두 배나 높게 책정, 브랜드 포지셔닝과 가격 포지셔닝에 간극을 만들면서 일본 소비자들의 반감을 사고 있다. 실제로 Nikkei's Marketings Journal이 조사한 바에 의하면 조사에 응한 일본 소비자들의 61.7%는 아버크롬비&피치의 가격이 ‘다소 높다’고 대답했고, 18.3%는 ‘터무니 없이 높다‘라고 응답, 가격에 대한 불만을 표시했다. 즉 많은 소비자들이 미국 내 시장과 달리 일본 시장에서 높은 마진을 얻으려는 아버크롬비&피치의 정책에 비판적 시각을 드러내고 있는 것.
현지화 전략에 약한 아버크롬비&피치
또 다른 문제는 아버크롬비&피치에 앞서 일본 시장에 진출한 H&M이나 Forever21 등이 일본 현지 파트너와 소통을 통해 일본 소비자들의 특성을 반영한 마케팅 전략과 소통 방식을 정립, 브랜드 이미지를 현지화시켜 긍정적 결과를 얻은 것과 달리 아버크롬비&피치는 미국 시장에서 사용했던 마케팅 전략과 브랜드 이미지를 일방적으로 일본 시장에 적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즉 매장 건축이나 제품 프리젠테이션은 물론 인사 관리까지 ‘철저히 미국적 아버크롬비&피치’ 방식을 적용, 긴자 매장 플로어에는 일본인임을 확실히 알 수 있는 외모의 직원이 하나도 없다. 따라서 매장에 들어가면 일본인이 아닌 외국인 (혹은 미국인) 직원들이 영어로 쇼핑객을 맞이하는 우스꽝스런 상황이 벌어지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 것. 게다가 일본식 공손함이 전혀 없는 직원들과 시끌법석한 노래와 춤이 뒤엉킨 요란스런 매장 분위기, 협소한 판매 공간은 즐거운 쇼핑 공간이라고 하기 보다는 빨리 벗어나고 싶다는 느낌을 준다는 평이다. 하지만 일본 소비자들이 가장 큰 불만을 표시하고 있는 점은 매장에 들어서면 늘씬한 남자 직원들이 단단한 근육질 상체를 그대로 드러낸 채 고객을 맞고 있다는 것으로, 섹스 어필을 내세운 미국 내 아버크롬비&피치 매장 분위기에 익숙한 소비자라면 놀랄 일도 아니지만 비좁고 시끄러운 매장에서 반나의 남성들이 고객을 맞이하는 아버크롬비&매장의 생경한 풍경에 문화적 쇼크를 느낄 정도라고.
맥도날드가 미국식 패스트푸드 음식 문화를 글로벌 시장에서 똑같은 매장, 똑같은 판매 시스템으로 성공을 거둔 것을 지나치게 의식한 것일까?
아버크롬비&피치의 노골적인 ‘미국적 브랜드/미국적 매장’ 각인 전략은 로컬 시장의 특성을 고려하기 보다는 로컬 고객을 ‘아버크롬비&피치의 입맞에 맞게 길들이려는 의도가 엿보인다. 실제로 일각에서는 아버크롬비&피치의 전략이 수입품을 좋아하는 일본 고객을 정면으로 공략하기 위한 것으로 분석하고 있지만 정작 직접 매장을 찾는 고객들이 편치 않은 쇼핑 환경이 쇼핑의 즐거움을 떨어뜨리는 것으로 밝히고 있는 만큼 획일적 매장 전략을 고집하기 보다는 일본 현지 소비자가 원하는 쇼핑환경에 대해 좀 더 면밀한 분석이 필요한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일본에서 성공한 대다수의 어패럴 업체들이 매장 직원을 ‘브랜드의 대표자’로 생각, 브랜드 이미지에 손상이 가지 않는 공손한 자세와 어패럴에 대한 지식을 갖추게 하고, 마네킹을 활용해 최신 트렌드와 신제품을 소비자들에게 전달하는 등 소비자들이 편안한 환경 속에서 쇼핑 할 수 있도록 배려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흐릿한 불빛 아래 야한 이벤트 현장 같은 아버크롬비 &피치의 매장 분위기가 소비자들에게 부담감을 주는 것은 부인하기 힘든 사실,
또 다른 문제는 향수를 즐기지 않는 일본인들의 심리를 전혀 반영하지 않고 매장 전체에서 미국적 향수 냄새-아버크롬비&피치의 시그너쳐 향수-가 진동하고 있다는 점이다. 일본인들은 강한 코롱이나 향수를 수집하거나 진열은 해도 실제로 뿌리는 것은 싫어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래서 많은 어패럴 매장들은 향수를 매장에 쓰지 않고 설사 사용하더라도 살짝 향기가 나는 정도로 절제하는 입장.
그런만큼 영어로 떠들어대는 반나의 남성들이 껄렁한 태도로 매장을 활보하고, 엘리베이터처럼 비좁은 판매 공간에는 독한 향수 냄새가 진동을 하고, 시끄러운 음악이 매장 안을 가득 채운 긴자 지구의 아버크롬비&피치 매장이 일본 소비자들에게 편안히 여기기는 쉽지 않다. 여기에 엘리베이터가 7층까지 밖에 없어서 여성복 매장을 찾는 소비자들은 계단으로 한층 올라가야 하는 구조적 결함까지 겹치면서 아무리 ‘미국적이고 이국적인’ 상황을 연출하려는 의도라고 해도 아버크롬비&피치의 긴자 매장은 일본 소비자들이 가까이 하기엔 쉽지 않는 구성이다.
예정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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