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황이 깨닫게 한 테크놀로지의 가능성
패션계의 흐름과 민감한 패션 잡지들의 상황도 유쾌하지 못했다. 유례없는 매출 부진에 시달린 패션계가 자본 확충을 위한 홍보비 절감을 위해 패션 잡지 지면 광고를 축소하면서 패션계에 미치는 영향력을 즐겨왔던 유명 패션 잡지들 또한 광고 축소로 매출 부진에 시달렸고 일부 편집자들은 광고 축소 및 구독자 감소로 생존 위기를 느끼는 상황에 몰려 당황하는 일이 벌어졌을 정도.
하지만 역경이 진화를 재촉한다고나 할까? 위기는 역시 진화를 재촉하는 흥미로운 자극이라는 사실은 패션계에서도 잘 드러나고 있다. 전통적 소비자 접근 방식, 즉 인쇄 매체를 통한 광고에 주력해왔던 패션하우스들은 자체 인쇄 잡지 발행을 통한 타깃 중심형 홍보를 시작하는가 하면 시간과 국경을 넘어 무한한 고객과 접근이 가능한 디지털 테크놀로지의 가능성을 절감하고, 디지털 통로를 홍보의 장으로 한껏 끌어안기 시작한 것이다.
패션계가 디지털 테크놀로지를 차용하는 가장 흔한 방식은 인터넷용 광고 필름을 제작하거나 트위터, 혹은 블로그, 페이스북을 통한 소비자들의 자생적 팬 사이트 확보 및 런웨이 무대 모습을 닮은 필름을 통해 소비자들에게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방식이지만, 최근에는 여기에서 벗어나 보다 리얼리티 TV처럼 패션하우스의 이면을 보여주거나 다양한 콘텐츠를 갖춘 인터넷 잡지 형태로 진화되어, 인터넷 세상을 움직이는 소비자들의 시선을 붙잡고 있다.
샤넬, 즐거운 디지털 테크놀로지
다소 의외로 여겨질지 모르지만 디지털 테크놀로지 차용에 가장 적극적인 패션하우스 중의 하나는 샤넬이다. 지난해 11월 자체적으로 제작한 최초의 샤넬 매거진을 전 세계 샤넬 매장에 배포, 패션 잡지에 의존하지 않는 독자적 인쇄 매체 광고를 시작한 샤넬은 전통적 인쇄 매체에 만족치 않고 소비자와 소통할 수 있는 직접적인 매체 통로로 디지털 테크놀로지 활용에도 발 빠른 감각을 발휘하고 있다. (올리비에잠이 디렉팅하고 디자인한 샤넬 잡지 속에는 31 샤넬 깜봉의 다양한 이미지가 집중 수록되어 디자인뿐 아니라 매체를 통한 고객 접근에 보다 적극적인 샤넬의 모습을 엿볼 수 있다.)
직접 필름과 음악에 조예가 깊은 샤넬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는 아이팟이 처음 등장했을 때 아이팟 커버와 컬렉션 박스까지 제작, 런웨이에 올렸을 정도로 변화하는 테크놀로지에 관심을 보여 왔다. 얼마 전에는 2002년 샤넬이 인수한 파리 아뜰리에에 대한 일종의 헌사라 할 수 있는 ‘Métiers d’Art’ 컬렉션 쇼케이스를 디지털 통로-인터넷용 오리지널 콘텐츠로 제작, 배포하면서 샤넬의 전통과 정신을 디지털 세상에 전파시키는 작업을 진행, 눈길을 끌었다.
2009 파리-모스코 Pre-Fall 컬렉션과 Paris-Venice Resort 2009-2010 ‘Métiers d’Art’ 컬렉션 런웨이 모습을 무성 영화 및 단편 비디오 티저로 제작, 흥미를 자아냈는가 하면 파리 상하이 Pre-Fall 2010 컬렉션 런웨이 장면은 이보다 긴 장편 필름 형식으로 제작, 인터넷에 배포했다.
이처럼 디지털 유목민들에게 궁금증을 불러일으키는 샤넬의 디지털 홍보 전략은 다큐멘터리, 단편 영화, 혹은 티저 형식의 필름 뿐 아니라 전통 매체을 통해 전달되는 광고 캠페인의 제작 과정을 유트브를 통해 릴리즈하고, 샤넬 웹사이트의 Chanel News 섹션에 공개하는 등 제작부터 런웨이까지, 디자인부터 완성된 제품까지 전 과정을 마치 리얼리티 TV 쇼처럼 인터넷을 통해 중계하면서 디지털 세상 속에 확고한 자리를 확보하는데 성공했다.
실제로 Chanel News는 샤넬에 관한 ‘정보’를 제공하는 일종의 블로그로서 샤넬에 대한 다양한 정보와 동향을 독창적이고, 정기적으로 배포하는 독접 온라인 매거진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샤넬에 대한 애정과 궁금증을 가진 소비자라면 Chanel News를 클릭해 릴리알렌이 등장한 2010 봄 여름 광고, 'Metiers d’Art 컬렉션 비디오, 코코샤넬 의 아파트, 샤샤피바보로바가 등장한 파리-모스코 컬렉션 모습 및 칼라거펠트가 직접 올리는 Karl's Diary 섹션, Fitting Room Follies, Vol de Jour' 등 단편 영화를 즐길 수 있어 그 어떤 인쇄매체보다 역동적이고 즐거운 샤넬의 독자적 인터넷 세상을 즐길 수 있다.
내겐 너무 가까운 디지털 세상
쉽게 접근하기 힘든 샤넬의 세상을 이렇게 오픈하는 것은 그 만큼 디지털 세상과의 친밀도가 기존의 소비자, 혹은 잠정적 소비자들을 보다 적극적으로 포섭할 수 있는 장치가 되기 때문이다. 또한 디지털 콘텐츠 개발과 배포를 통해 시간적 공간적 제약을 갖는 인쇄매체 홍보의 한계를 극복하고 변화되는 소비자 환경을 반영한 마케팅 전략이 브랜드 발전을 도모한다는 전략적 판단 때문이다.
패션 잡지의 에디토리얼이나 지면 광고, 혹은 빌보드 광고를 통한 일방적 광고 전략으로는 더 이상 발 빠르게 변화되는 디지털 세상 속의 소비자들의 움직임을 따라 잡기 힘들다는 판단이 샤넬을 디지털 테크놀로지 속에 빠져들게 만들고 있는 것.
광고, 혹은 홍보의 목적이 소비자의 시선을 붙잡는 시각적 자극, 혹은 메시지를 통해 구매를 자극하는 것이라면 24시간 끝없이 노출이 가능한 디지털 세상만큼 지속적인 소비자 자극이 가능한 매력적인 창구는 찾기 힘들다. 또한 전통 광고 방식이 전문 광고사를 통해 제작, 시간과 비용 면에서 부담이 높은 반면 인터넷용 비디오나 쇼트 필름의 경우, 패션하우스 자체 내에서 제작하고 배포할 수도 있어 보다 효율적이다.
패션하우스가 직접 소비자와 접촉하는 효율적 커뮤니케이션 통로를 확보한다는 점이 소비자와 다소 고립되어 있던 패션하우스들이 디지털 테크놀로지에 매력을 느끼는 가장 큰 원인이다. 즉 디지털 테크놀로지는 패션하우스들에게 자신이 원하는 ‘이미지’를 유지하면서도 소비자들과 소통하고, 브랜드에 관심을 끝없이 유발시킬 수 있는 매력적인 매체인 셈.
어찌 보면 디지털 테크놀로지는 광고 제작 및 배포 면에서 광고사나 잡지사에 일정 부분 권한을 빼앗겼던 과거의 관행에서 벗어나 패션하우스에게 광고 및 소비자 접촉의 ‘주도권’을 확보하게 해준다는 점에서 패션하우스들에게 막강한 소통의 도구를 제공한 것과 마찬가지다.
실제로 소비자들 역시 돈을 지불하고 접촉해야 했던 전통적 광고 매체와 달리 인터넷 세상에 접촉하면, 무한정 제공되는 패션하우스들의 광고, 혹은 정보 제공의 즐거움에 빠져들어 디지털 세상에서 스스로 특정 브랜드에 대한 정보와 동향을 수집하고 공유하는 자발적 홍보사이트-트위터나 페이스북, 블로그를 통해 특정 브랜드에 대한 정보를 교류하는 장-를 구성, 브랜드에 대한 충성심을 키우는 애정을 보이고 있다.
즉 디지털 테크놀로지를 통한 브랜드 홍보는 더 이상 일방적 소통이 아니라 패션하우스와 소비자들이 서로에게 소통하는 양방향 통로를 열어주는 것과 마찬가지. 그런 면에서 오랜 전통과 독특한 크리에이티비티를 통해 특유의 ‘사회적 위상’을 갖춘 럭셔리 브랜드의 경우 디지털 테크놀로지를 통한 소비자와의 소통은 더 많은 영향력을 가질 수 밖에 없는 것.
샤넬의 영리한 디지털 접근 전략이 흥미를 자아내는 것도 바로 이 같은 디지털 세상의 영향력을 누구보다 긍정적으로 활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예정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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