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패션계에 몸담고 있다면, 아니 대한민국의 성인이라면 적어도 한 번쯤 ‘김성주’라는 이름을 들어봤을 것이다. 얼마 전 한 취업정보 사이트 설문조사 결과 존경하는 CEO 10위에 이름을 올렸을 정도로 김성주 회장은 폭넓은 사회적인 관심과 지지를 얻고 있다. 그렇지만 아직도 많은 사람들은 그를 ‘럭셔리 브랜드를 운영하고, 대외 활동에 적극적인 재벌기업막내딸 출신의 호사로운 경영자’로 인식하고 있다. 그러나 경영난에 허덕이는 독일계 럭셔리 브랜드 「MCM」을 인수해 세계적인 명품 브랜드 반열에 올려놓은 지난 4년간의 숨가쁜 행보는 김 회장을 대한민국은 물론 글로벌시장에서도 인정받는 창업자이자 경영인으로 부르기에 손색이 없다.
유럽과 미국에서 의미 있는 성과를 거둔 것에 만족하지 않은 그는 또다시 영토 확장을 위해 세계패션 브랜드의 격전지 중국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연말연시 축제 분위기를 즐길 틈도 없이 상하이 매장 오픈을 진두지휘하기 위해 출국하는 그를 만나기 위해 22일 청담동 ‘MCM HOUS’를 찾았다. “회장님을 보니 정말 바쁘게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 실감이 납니다” 안부 인사에 돌아온 김 회장의 대답은 난데없는 ‘칭기즈칸’론 이었다. “얼마 전 글로벌 브랜드 전략에 대해 의견을 나누고 싶다는 모 패션기업 경영자의 연락을 받았습니다. 시간이 없기도 했지만 그 회사가 많은 돈을 투자하고 끊임없이 시도하면서도 번번히 해외 사업에서 어려움을 겪는 이유가 간단한 곳에 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칭기즈칸’을 연구하면 답이 나올 것이라고 얘기해주고 전화를 끊었습니다. 칭기즈칸은 영토 확장을 할 때 부하를 내보내지 않았습니다. 자신이 직접 전장에 서 있었습니다. 마찬가지 이치입니다. 언어가 좀 부족하다해도 크게 문제될 것이 없습니다. 직접 나가서 부딪히며 배우고 현지인들과 교류해야 합니다. 오너가 책상에서 현장 보고를 받는 데 무슨 지휘가 되겠습니까.
물론 내수 시장에서도 치열하게 경쟁해야 하는 우리 패션기업 현실상 쉽지 않은 일인 것은 잘 압니다. 그렇다고 당장 먹고 사는데 얽매여서 미래의 식량을 준비하지 않는다면 영원히 대한민국은 패션 식민지를 벗어나지 못할 것입니다.”
「MCM」 인수 이후 많은 사람들의 우려를 불식시키고 상당한 성과를 거뒀습니다. 그간의 과정은 어땠습니까? “벌써 5년 가까이 지났네요. 이제야 겨우 글로벌 패션 비즈니스가 무엇인지 알 것 같다는 게 솔직한 심정입니다. 육상 경기를 예를 들어 표현하자면 1500미터 달리기에서 이제 트랙을 딱 한 바퀴를 돌았다고나 할까요? 생각보다 쉽지 않았습니다. 독일 뮌헨에 있는 본사에 출근하는 첫 날 현지 직원들의 배타심은 상상 이상이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10년 넘도록 디스트리뷰터였던 아시아의 작은 나라 여자 사장이 갑자기 자신들의 오너가 됐는데 오죽했겠습니다. 노동자를 보호하는 법규가 강한 독일에서는 본사를 해외로 이전하는 것 외에는 구조조정을 할 수 없었습니다. 직원들이 강력하게 반발했지만 수년 동안 침체되어 있는 「MCM」을 회생시키는 방법은 강력한 구조조정 밖에 없었습니다.
또 유럽 지역의 매장이 130개에 달했지만 쓸만한 매장이 거의 없더군요. 그래서 90% 이상 문을 닫았습니다. 당장의 캐시플로어가 막히더라도 럭셔리 시장의 메인스트림으로 진입하기 위해서는 새로 시작해야 한다고 판단했습니다. 물론 한국에서 든든한 매출이 뒷받침 됐기 때문에 그런 결정을 내릴 수 있었지요. 한편으로는 상품력과 브랜드 이미지 강화에 총력을 기울였습니다. Y-3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명성을 얻은 마이클 미쉘스키를 삼고초려 끝에 「MCM」에 합류시킨 것도 이런 맥락에서였습니다. 원부자재도 세계 최고 수준으로 업그레이드하고 바뀐 상품을 고객들에게 적극적으로 알렸지요. 이런 노력이 소비자들로부터 인정 받으면서 높은 유통업체의 문이 하나씩 열렸습니다. 2007년 미국 블루밍데일 백화점 14개 매장 동시 입점, 전 세계 35개국에 글로벌 마켓 개척, 2008년 11월 뉴욕 맨해튼의 랜드마크인 플라자 호텔 입점, 2009년 9월 미국 최고 명품 백화점인 ‘삭스 핍스 애비뉴’ 15개점 동시 입점이 그간의 성과입니다.”
진입 장벽이 높기로 유명한 글로벌 럭셔리 시장에서 이처럼 빠른 성장을 할 수 있었던 특별한 이유라도 있습니까? “1992년 도산 직전까지 갔던 「구찌」가 불과 수 년만에 재도약 하는 과정을 함께 경험했던 것이 가장 큰 힘이 됐던 것 같습니다. 당시 「구찌」의 전세계 매출 가운데 5등 안에 드는 한국 시장의 디스트리뷰터 자격으로 세일즈와 마케팅에 관여했었는데 도산 직전에 있던 회사가 1994년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톰 포드를 영입하고 이듬해 최고경영자로 도미니크 드 솔레를 영입하면서 폭발적인 성장을 거듭해 불과 수 년만에 40억 달러의 매출을 올리며 재기에 성공하는 신화적인 과정을 곁에서 함께 했습니다. 그래서 「MCM」도 당장은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충분히 승산이 있다고 판단할 수 있었던 것이지요. 또 이런 제 판단을 믿고 따라준 직원들의 노력이 있었습니다. 상당수 직원이 한 번씩은 병원 신세를 졌을 정도니까요.”(웃음)
내년 1월 상하이에 매장을 오픈한다고 들었습니다. 이제 본격적으로 중국 시장 공략을 시작하는 겁니까? “맞습니다. 2010년의 첫 매장을 1월 26일 중국 상하이에 오픈합니다. 새로운 10년의 출발을 글로벌 패션 시장의 최대 격전지에서 시작하겠다는 메시지이기도 합니다. 유럽과 미국에서 「MCM」의 브랜드력을 입증해온 지금까지의 과정은 중국과 일본 등 아시아 시장으로 진입하기 위한 포석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겁니다.
세계 경제, 세계 패션의 흐름이 유럽과 미국을 거쳐 아시아로 이동하고 있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입니다. 이 때문에 세계 최고 수준의 브랜드들이 중국 시장을 선점하기 위해 공을 들이고 있는 것이지요. 우리는 지리적으로나 문화적으로 아시아의 중앙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잘만 한다면 5000년 역사 가운데 글로벌 리더가 될 수 있는 최초의 기회를 맞닥뜨리고 있는 셈입니다.” 상당수 국내 기업이 중국 진출을 시도하지만 녹록치 않은 것이 현실입니다. 왜일까요? “제조 유통 마인드로 접근하기 때문입니다. 우리 경제는 원자재를 해외에서 수입해 가공해서 내다파는 가공 무역 방식으로 성장해왔고 이제 겨우 서비스와 지식 산업으로 넘어가고 있는 단계입니다. 하지만 중국은 달라요. 순식간에 제조업을 장악하고는 벌써 브랜드 비즈니스 단계로 넘어가고 있습니다.
중국 자본이 세계 유수의 브랜드들을 사들이고 있는 것도 이런 관점에서 볼 수 있습니다. 오랜 기간 잘 쌓아놓은 브랜드 이미지를 자본으로 사들인다는 논리지요. 우리의 체질을 브랜드 비즈니스로 전환해야 합니다. 해외 브랜드 수입을 통한 학습은 이 정도면 충분합니다. 지금 유럽 시장에는 좋은 브랜드들이 매물로 쏟아지고 있습니다. 자본이 있는 기업들이 먼저 나서서 브랜드를 사들이고 글로벌 시장을 상대로 비즈니스를 펼쳐야 합니다. 또 이제는 전문화시대입니다. 모든 영역을 본사에서 하겠다는 생각을 버려야합니다. 핵심 전략을 갖고 있다면 각 분야별로 전문화된 파트너를 통해 더 나은 결과를 만들어낼 수 있을 것입니다.”
김성주 회장의 글로벌 경영 전략과 ‘패션=컬처=뉴 캐피탈’ 이론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다음호에 이어집니다.
김정명 기자
kjm@f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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