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문, 환상을 통한 패션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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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이너의 크리에이티브가 아무리 뛰어나도 시각적으로 표현하는 포토그래퍼 역할 더 중요

2009-11-06 오후 7:14:35


아직도 기억한다. 음울한 듯 몽롱한 세피아 컬러의 배경 속에 환상처럼 흩어지는 하얀 드레스를 입고 몽환적인 시선을 던지고 있던 사진 한 장을 잡지에서 발견했을 때 느꼈던 서늘한 충격을. 일부러 카메라를 흔든 듯 대상의 윤곽이 흐트러져 어스름한 새벽녘 분위기를 자아냈던 그 사진은 사라문의 패션 화보였다. 그때 처음 필자는 모호하게나마, 패션이 단순한 소비의 대상에 불과한 ‘옷’을 팔기 위한 현실의 장이 아니라 인간의 환상을 감정적으로 파고드는 매력적인 속삭임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사실 지금도 패션잡지를 선택할 때, 또 가장 먼저 찾게 되는 콘텐츠는 디자이너의 환상이 담겨있는 의상이 포토그래퍼의 렌즈를 통해 재구성되고 재해석되는 패션 화보가 아닐 수 없다. 디자이너의 크리에이티비티가 아무리 뛰어나고 매력적이어도 그 옷을 ‘시각적으로 재해석해주는 포토그래퍼’가 제대로 해석자 역할을 해내지 못하면 그 화보는 의미 없는 싸구려 광고 전단지가 될 수밖에 없다. 이런 점에서 패션이 인간이 욕망과 환상을 ‘옷’이라는 매개체로 표현하는 작업이라면, 패션 포토그래퍼는 그 ‘옷’이 담고 있는 욕망과 환상을 소비자들에게 해석해 전달하는 일종의 ‘옷 읽어주는’ 사람이라 봐도 지나치지 않을 듯 하다.


포토그래퍼 사라문의 놀라운 세계


뭔가 이슈를 노린 듯한 강한 터치나 자극적 이미지가 트렌드로 자리한 지금의 패션 사진에 익숙한 사람이라면 부서질 듯 연약한, 때론 비현실적이고 몽환적인 사라문의 사진에 이질감을 느낄 수도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사라문의 사진은 패션이라는 대상에 정확히 초점을 맞춘 직설적인 화법이 아니라 빗물이 흐른 뿌연 창을 사이에 두고 대상을 바라보는 듯한, 혹은 어스름한 안개 속에 저만치 떨어져 그 대상을 살피는 듯 정적인 세상 속에서 때론 무심한 듯, 혹은 엄마의 치마폭에 얼굴을 숨기고 세상에 대한 호기심을 드러내는 아이처럼 관찰하는 시선으로 패션을 표현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라문의 사진 속에서 패션은 전체 회화를 구성하는 중심이자 전체 회화의 한 부분으로 소리치고 비명 지르는 법 없이 그녀의 세상에서 재해석된 컬러와 질감, 그리고 구성을 통해 낮고 속삭이는 음성으로 패션이 전달할 수 있는 환상의 세계를 표현한다.


즉 사라문은 패션이 지니고 있는 환상을, 그 역동성과 표정을 그녀만의 직관으로 재해석, 정적이면서도, 우연히 목격하는 한 ‘장면’처럼, 동시에 뭔가 비밀스런 이야기를 갖고 있는 ‘궁금증’을 낳는 세상으로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바로 이런 점에서 사라문의 사진은 포토그래퍼가 그저 패션의 충실한 전달자가 아니라, ‘자신의 세상을 갖고 있는’ 해설자의 영역으로 이끌었고 패션 사진이 하나의 예술적 영역으로 승화될 수 있음을 보여준 인물이라 할 수 있다.


실제로 사라문은 사진에서 가장 중요한 점이 ‘예상치 못한 사건이 일어날 때 그 순간을 잡는 것’이라고 표현하고 있어 계산된 감정이나 분위기, 즉 직설적 메시지를 그녀의 사진에서 읽어 내긴 쉽지 않다.


패션과 예술의 경계를 넘나든 포토그래퍼들


사실 디자이너들은 자신의 크리에이티비티를 회화적 표현으로 전달하는데 익숙하다. 매 시즌 디자이너들의 런웨이는 다양한 회화에서 영감을 얻은 색체와 구성이 우리의 눈을 즐겁게 해왔다.


일찌감치 입셍로랑은 몬드리안의 모던한 컬러와 구성을 그의 컬렉션에 도입, 선명한 충격을 주었고 ‘디올’의 존 갈리아노는 쿠스타프클림트의 농염한 ‘골드 컬러’를 두려움 없이 활용하는 능숙함을 보였다.


이외에도 빛의 화가 램브란트의 정적인 컬러나 화려하고 생동감 넘치는 마티스의 캔바스, 음울하고 짙은 고호의 푸른 빛, 앤디워홀의 단순화된 상업적 컬러 등등 화가들의 작품은 패션 디자이너들의 컬렉션 속에 소중한 자산으로 영감의 원찬을 제공해왔다.


반면 패션 화보는 여전히 사실적인 색체와 의도된 구성에 치중해 온 것이 사실인데 이는 디자이너들의 작품인 의상에 집중해야 하는 1차적 사명 때문이기도 하지만, 패션과 떨어져 독자적 예술로 승화시킬 수 있는 용기와 실험정신, 즉 위험을 부담하는 것을 두려워하는 태도도 한 몫을 한다. 사실 패션 포토그래퍼는 태생적인 ‘상업성’ 때문에 패션의 부속품처럼 여겨져 온 면이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상업적 패션 사진에 빛과 그늘이 만들어내는 감정을 반영한 사진작가 리차드아베돈이나 과감한 구조적 섹슈얼리티로 도발적 파워를 과시한 헬뮤트 뉴튼, 그리고 의도적으로 외곽선을 흔들어 물속에 잠긴 듯 몽환적 컬러 판타지를 이뤄낸 사라문 등은 패션 포토를 독자적인 포토 아트의 세계로 상업적 예술과 순수 예술의 경계를 이어준 독특한 위상을 개척해 냈다.


먼저 패션 사진의 예술성을 가장 먼저 실험한 리차드아베돈은 보그와 하퍼스바자 등의 화보작업을 할 때 단순히 ‘의상’뿐 아니라 그 의상을 입은 모델의 감정을 파고들어, 강렬한 흑백의 영상 속에 때론 고통스럽게, 때론 냉정하게, 때론 열정적으로 옷과 모델이 담고 있는 이야기를 표현하며 패션 사진의 새로운 가능성을 열었다. 그의 사진에서 의상은 모델이 만들어내는 이중주였고 그의 카메라는 둘 사이에 오가는 은밀한 이야기를 음영으로 표현하는 효과적인 장치였다. 실제로 그는 피사체의 감정을 이끌어 내기 위해 -그들이 모델이건 셀러브리티이건- 그들을 자극하는 때론 불편한 질문도 마다 앉았고 그 결과 대으로 감정과 의상은 묘한 시너지를 일으키며 새로운 로운 로운리티될 수 있었다.


즉 2차원 적인 사진 속에서 3차원적인 영상이 숨어있는 셈. 리차드아베돈에게 패션이란, 디자이너의 의상 뿐 아니라 그것을 입는 모델 -나아가 소비자-가 상호작용으로 이뤄내는 세상으로 어떤 면에서 누군가에게 소비될 수 밖에 없는 패션의 속성을 제대로 꿰뚫어본 인물이라 할 수 있다.


반면 리차드아베돈과 비슷한 시기 뉴욕 패션계를 이끌었던 헬뮤트뉴튼은 패션이 소비되는 환경- 즉 도시와 건물 속에 그 의상과 모델이 빚어내는 대담한 섹슈얼리티를 표현해 변화되는 물질 문명 속에서 철저하게 소비되는 패션의 이미지를 선명하게 보여 주었다.


동화적이고 시적인 시각으로 소통하다 그 자신이 렌즈의 반대편에서 모델로 활약하며 카메라 앞에 펼쳐지는 세상을 경험해온 사라 문은 다치기 쉽고 잔인한 세상 속에 노출된 연약한 패션 모델, 나아가 아직은 꿈속의 세상을 벗어나고 싶지 않는 어린 여성의 모습을 특유의 동화적이고 환상적인 감성으로 구성해 남성 포토그래퍼와 다른 여성의 감성을 읽는 시선으로 그녀만의 환상적인 패션 사진의 세상으로 이끌어냈다. 시이고 환상적인 그녀의 사진은 어딘가 모르게 마리로랑생의 그림과 닮은 점이 보이기도 하는데 거친 세상에서 보호받듯, 흐릿한 컬러 보호막을 갖고 있는 듯한 그녀의 사진 속 세상은 섬세하고 시적인 향기가 보는 이의 마음을 파고든다.


이처럼 패션을 매개로 회화적인 세상을 구축하며 패션 사진을 또 다른 예술적 환상으로 이끌어낸 그녀의 감성은 인생의 어두운 면과 세상의 두려움에서 보호받고 싶은 섬세한 정서가 환상으로 표출된 듯, 그 아름다움만큼 때론 애틋한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상업적으로 소비될 수 있는 패션 사진 한 장으로, 이처럼 섬세한 감정을 자극하는 환상적 세상을 만들 수 있다는 것. 그 점이 바로 사라문이 만들어내는 꿈결같이 매혹적인 패션 사진의 세계다.




예정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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