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돈 회장은 요즘 일주일에 한 두 번은 명동을 나간다. 롯데백화점을 시작으로 명동 중심가와 뒷골목에 이르기까지 다리품을 판다.
명동뿐 아니다. 아셈몰과 강남역 등 젊은 소비자들이 몰리는 곳엔 시간을 아끼지 않는다. 최근에는 인터넷 쇼핑몰 ‘스타일 난다’에서 옷을 직접 구매하기도 하는 등 현장을 놓치지 않고 있다.
“시장흐름을 보기 위해선 옷이 아니라 사람을 봐야 한다. 뒷골목 음식점까지도 살펴야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현장을 가서도 그냥 보는 것이 아니라 ‘가서 살아야’ 보인다. 시장은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데 유행을 먹고 사는 패션 업계 종사자들은 너무 사무실에만 머물고 있다.”
특히 최근에는 「자라」와 「유니클로」 등 글로벌 브랜드 매장을 찾는 횟수가 잦다. 한 매장을 하루 두 세 번 들르면서 깊이 있게 관찰하기도 한다. 브랜드 사업을 하기 이전부터 유난히 현장을 중시했던 그의 ‘현장 경영’을 다시 부활시킨 것이다.
“「자라」는 하루 두 번씩 수시로 매장 재고를 체크한다. 몇 시간 차이지만 탈의실 로스까지 체크하기 위함이다. 우리 브랜드를 글로벌 브랜드로 성장시키기 위해서는 상품이 아닌 운영 시스템을 벤치마킹 해야 한다.”
단일 브랜드로 연간 2000억원을 바라보는 「코데즈컴바인」을 비롯 10여개 브랜드를 전개중인 국내 대표적인 패션 기업 경영인이지만 시장흐름을 관찰하고, 경쟁자를 분석하는 데는 기업규모도, 직책도 중요치 않다는 것이다.
“패션 사업은 판매 현장에 해답이 있다. 그러나 아쉽게도 우리 기업들은 사후관리에 지나치게 많은 시간을 투자하고 있다. 오늘 매장에서 가장 잘 팔리는 상품을 내놓기 위해선 때론 일주일, 혹은 2~3일 단위로 신상품을 투입시켜야 한다. 기획상품은 디자인 수는 줄이되 컬러를 늘려 신선도를 유지해야 한다. 기획상품은 그 시즌에 최고로 팔리는 기본 아이템을 말한다.”
이를 위해서는 디자이너들의 역할이 가장 중요하다고 한다. “소비자가 원하는 상품을 만들기 위해서는 디자이너들이 자기 중심적 사고를 버려야 하며, 소비자를 위해 ‘자기’를 죽여야 한다. 브랜드별, 아이템별 디자이너는 다르지만 소비자들에게 보여지는 매장에선 모두 ‘한 밥상’에 놓이게 된다. 하나의 아이덴티티를 가지되 다양성을 보여주기 위해서는 상품기획 단계에서부터 서로 대화하고, 정보를 교환하고, 선의의 경쟁을 해야 한다.”
이런 차원에서 박 회장은 디자인실의 칸막이를 모두 없앴다. 또 일주일에 한번씩 지하 강당에서 봉제, 패턴 교육을 실시하고 있으며, 디자인실 단체로 경쟁 브랜드 매장을 조사하기도 하는 등 ‘기본’과 ‘현장’에 충실하고 있다.
「코데즈컴바인」은 한국을 대표하는 ‘SPA 브랜드’
예신피제이의 간판 브랜드 「코데즈컴바인」은 최근 문정동에 660㎡(200평)짜리 직영점을 열었다. 여성복과 남성복, 이너웨어, 베이직 플러스, 데님, 액세서리 등 전 라인을 모두 갖췄다. 또 이 회사는 5월초엔 삼성동 코엑스와 포천 송우리에도 중대형 직영점을 오픈한다. 올 연말까지 이 같은 중대형 직영점을 20개점까지 늘려 ‘한국형 SPA 브랜드’로서 성장시키겠다는 것이 박 회장의 비전이다.
“사실 패션 사업처럼 까다로운 소비자들의 입맛에 발빠르게 대응하기 위해서는 ‘스피드’가 생명이다. 이를 위해서는 기획에서부터 생산, 판매에 이르기까지 일사불란하게 움직일 수 있는 컨트롤 타워를 확보해야 한다.”
대리점 유통의 한계도 지적했다. 소비자들에게 좀더 저렴한 가격에 판매하기 위해서는 유통비용을 줄여야 하는데, 대리점들은 마진율이 높을 뿐만 아니라 중대형점을 운영하기 위한 준비가 부족하다는 것이다.
다행히 금융위기 이후 박 회장은 유동인구가 많은 B급 상권에서 해답을 찾고 있다. 660m²(200평) 이상의 중대형 매장을 가진 건물주들의 ‘안정적인 수입과 건물관리’에 대한 욕구와 ‘저렴한 투자비로 효율을 높여야 하는’ 브랜드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진 것이다.
또 오픈한 지 10년 안팎인 주요 아웃렛타운이 리뉴얼 시기를 맞은 것도 「코데즈컴바인」과 같은 대형 브랜드에는 호기로 작용하고 있다고 한다. 이런 배경으로 「코데즈컴바인」은 2~3억원대의 보증금과 10% 초반의 수수료, 5년 이상의 장기임대 등의 조건으로 계약함으로써 4~5억원 투자로 660m² 이상의 직영점을 확보해 나가고 있다.
“백화점을 비롯한 유통업체의 배려가 아쉽다. 브랜드가 성장하기 위해서는 가능성 있는 브랜드와윈-윈 전략이 필요하다. 건물주와 대리점주 또한 본인은 노력을 하지 않고 단순히 A급 상권 내 좋은 점포만 가졌다고 지나친 마진을 요구하는 것은 중장기적 파트너가 될 수 없다. 이에 대해서는 패션 업체들이 먼저 적정선에 대한 기준을 가져야 한다. 당장 눈앞의 이익 때문에 무리한 조건을 내세운다면, 공멸할 수 밖에 없다.”
박 회장은 최근 계약이 한창인 영등포의 한 복합 쇼핑몰에서 대부분 브랜드들이 ‘보증금 20억원에 20% 이상의 수수료’라는 조건을 전혀 깍지 않고 사인하는 것에 놀랐다고 한다. 2000년대 초반 중저가 캐주얼 브랜드들이 가두상권에서 일으켰던 ‘마진 거품’이 복합쇼핑몰에서 또다시 재현될까 우려된다는 것이다.
아시아 사람들 몰려드는 ‘패션 스트리트’ 만들어야
패션 산업은 국가의 이미지 향상은 물론 국가 경쟁력까지 높일 수 있는 미래지향적 산업이라는 것이 박 회장의 생각이다. 이런 배경에서 아시아 전역에 형성된 한류열풍을 패션산업으로 연결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한국의 패션 산업을 문화로 보여주기 위해서는 보란 듯 내보여줄 수 있는 ‘패션 스트리트’를 조성해야 한다. 이 거리엔 브랜드 외에도 먹거리, 놀거리, 문화가 결합된 복합 공간으로 만들어야 한다. 한국 브랜드 외에도 해외 브랜드들도 함께 유치해 아시아 각국에서 이곳을 시장조사 장소, 혹은 아시아 패션 문화의 중심으로 인식하도록 해야 한다.”
박 회장은 인재 영입에 대해서도 적극적이다. 비즈니스 환경이 하루가 바뀌고 있는 만큼 틀에 박힌 사람보다는 늘 새로운 것에 도전하는 사람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특히 직급이나 회사 내 위치를 따지기 보다는 ‘자기 일’에 자부심을 가질 수 있는 사람을 원한다고 강조했다.
“디렉터 주도형 브랜드로 만들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서브 라인별 디렉터를 양성해야 한다. 필요하다면 해외 인력도 과감히 영입할 계획이다.” 지난 97년 외환위기 이후 「옹골진」과 「마루」를 통해 성공 스토리를 만들었던 박상돈 회장은 제2의 금융위기인 지금 또 다른 성공신화에 도전하고 있다. 창업초기 트레이드 마크였던 ‘현장 카리스마’를 재가동하기 시작한 박 회장의 행보가 주목된다.
정인기 기자
ingi@f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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