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자이너, 무한대로 진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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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1-12 오전 11:47:13




디나워싱턴의 노래 말-“what a difference a day makes, twenty four little hours”처럼 24시간 사이에 너무나 많은 것이 변했고 우리는 2009년의 시작을 맞이했다. 늘 같은 24시간이 흐른 것일 뿐인데 천지개벽이라도 한 듯 호들갑을 떠는 이유는  ‘끝’이라는 ‘정리’의 시간과 ‘시작’이라는 ‘기회’의 문턱을 동시에 넘었기 때문이다. 특히 늘 ‘새로운 것’을 창안해야 한다는 부담에 시달리는 패션계는 하루하루가 잊혀진 역사(history)가 아닌 ‘살아남은 전설(legend)'이 되기 위한 시작의 연속이 아닐 수 없다.

그런 만큼 24시간 진화와 도태의 갈림길에서 고뇌할 수밖에 없는 디자이너와 패션 업체에게 한 해의 시작은 갈수록 치열해지는 경쟁구도에서 ‘적자(the fittest)‘로 남기 위한 ‘진화‘의 첫 문을 여는 중요한 시험대라 할 수 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칠순을 넘기고도 패션 사업 영토 확장은 물론 다양한 부문으로 사업의 가지치기를 펼치고 있는 칼라거펠트와 조르지오아르마니의 왕성한 활약상은 디자이너의 진화 방향이 얼마나 무한대로 확장될 수 있는 지 보여주는 가치 있는 사례다.


라이선스, 콜래보레이션 그리고 호텔까지

두바이 정부를 대변하는 투자회사 인피니티홀딩(Dubai Infinity Holding)의 제의로 패션 아일랜드 이슬라모다(Isla Moda: 글로벌 럭셔리 소비자들을 타깃으로 두바이를 패션과 쇼핑의 허브로 만들기 위해 기획된 인공 섬)에 고급 주거용 빌라 80채를 디자인하기로 계약, 패션계와 건축계를 동시에 놀라게 한 칼라거펠트는 일찍이 하이스트릿 업체 H&M과 한정본 컬렉션을 론칭, 럭셔리 브랜드와 하이스트릿의 경계를 넘는 민주화를 주도한 혁신적인 인물이다.

샤넬이라는 패션하우스의 명성, 혹은 그 자신의 디자인 세계에 만족치 않고 시대의 흐름을 파악, ‘진화’하는데 거침없는 행보를 보여 온 칼라거펠트는 많은 디자이너들이 매스컴을 통한 ‘자신 알리기’에 심취한 요즘도 여전히 검은 선글라스 뒤에서 일체의 사생활을 ‘비밀’에 붙이며 디자이너의 ‘셀러브리티’화에는 반기를 들지만, 샤넬과 펜디를 오랫동안 지휘하면서도 매 시즌, 전통에 가치를 더하는 새로운 해석으로 디자인 세계를 넓히고 젊은 층이 열광하는 디지털 테크놀로지를 수용하는 그의 태도는 디자이너가 갖추어야 할 ‘진화’에 대한 책무에 소홀치 않은 현자의 면모를 보이고 있다.

실제로 이슬라모다에 들어설 빌라 계약을 체결한 후 두바이란 글자가 선명히 새겨진 깃발을 들고, 사막에 발을 딛고 서 있는 그의 모습은 단순한 디자이너가 아니라 새로운 세계를 정복한 정복자의 모습과 겹쳐질 정도다. 또한 클래식과 팝에 정통한 그는 자신이 좋아하는 곡으로 채운 한정본 CD를 발행했는가 하면 디자이너로서의 그의 생활과 비밀스런 사생활을 슬쩍 노출시킨 다큐멘터리를 통해 끊임없는 호기심을 자아내는 능란한 전략가적 모습을 보인다.

사실 20세기가 디자이너들의 라이선스 사업의 물고를 텄다면 21세기는 패션과 테크놀로지, 패션과 문화 이벤트, 럭셔리 브랜드와 하이스트릿 업체가 계층을 넘어선 자유분방한 컬레보레이션을 진행하고 디자이너의 영역 확대가 본격화 되는 시기라 할 수 있다.

특히 최근에는 디자이너가 어패럴 관련 사업이 아닌 호텔이나 레스토랑 사업에 뛰어들어 본격적인 라이프 스타일 크리에이터로 활약하는 모습이 눈에 띈다. 칼라거펠트가 이슬라모다에 들어설 빌라 디자인에 나서기 이전에 이미 베르사체, 크리스챤라크로와, 불가리, 페라가모 랄프로렌, 알베르타페레티, 안나몰리나리, 아제딘알레이야, 미소니, 모스키노 등은 호텔을 디자인하거나 호텔 사업을 진행하며 디자이너의 파워를 럭셔리한 호텔 문화로 확장했고 돌체&가바나, 로베르토까발리는 감각적인 카페를 통해 젊은 문화를 이끌고 지배하는 디자이너의 파워를 과시하고 있다.

그렇다면 왜 디자이너들이 호텔 사업에 앞 다투어 뛰어들고 있는 것일까? 간단히 말하자면 디자이너의 궁극적인 꿈-라이프 스타일 전반을 지휘하는 크리에이터-을 실현하는 데 호텔만큼 효과적인 캔버스도 없기 때문이다.

글로벌 여행객과 패셔니스타들이 모이는 호텔은 건물과 인테리어 모두 디자이너의 크리에이티비티를 표출할 수 있는 살아있는 현장이자 그의 패션 철학을 효과적으로 생활과 접목시킬 ‘살아있는 전시관’이기도 하다. 더불어 젯셋 라이프 스타일의 필수적 코스인 호텔을 통해 디자이너의 네임 밸류를 높이고 부가적 매출창출을 구축할 수 있다는 경제적 매력도 디자이너의 호텔 사업을 자극하는 중요한 요인. 사실 그 어느 때보다 패션이 중요한 요소로 자리 잡은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성공적인 브랜딩(branding) 사업의 최종 정착지로 호텔만큼 잘 들어맞는 것도 없다.


영리한 브랜딩 파워-디자이너 호텔

소비자들 또한 일종의 맞춤 호텔처럼 자신의 취향에 맞는 미적 정서가 풍만한 디자이너 호텔을 통해 여행의 즐거움을 배가시킬 수 있다. 일례로 화려한 골드 컬러와 블링블링한 번쩍거림으로 유명한 패션하우스 베르사체의 감성을 물씬하게 전해주는 팔라조베르사체(Palazzo Versace) 호텔은 건물 입구부터 린넨, 러그까지 베르사체의 디자인 세계를 좋아하는 소비자들의 욕망을 한껏 채워준다.

호주 퀸스랜드, 골드 코스트 메인비치에 위치한 팔라쪼베르사체는 명성만큼이나 호주에서 가장 비싼 호텔로 손꼽히고 있으며 두바이에 두 번째 호텔 설립이 예정되어 있다. 반면 크리스챤라크로와가 인테리어를 지휘한 파리, 쁘띠믈랭(Petit Moulin) 호텔은 감각적이며 규칙에 얽매이지 않는 컬러와 패턴의 세계를 좋아하는 사람에게 적격으로 라크로와의 패션 세계와 공감대가 형성된다.

또한 디자이너 랄프로렌은 20년 전부터 자메이카에 위치한 라운드힐호텔(Round Hill Hotel)의 인테리어를 지휘해오고 있을 분 아니라 호텔의 일부 소유주이기도 하다. 총 600만 달러가 투자된 호텔 리노베이션은 클래식하면서도 고급스런 랄프로렌 특유의 정서가 호텔의 품격을 살린 자메이카의 명소로 자리했다. 랄프로렌의 홈 컬렉션과 퍼니싱 라인이 호텔에 비치된 것은 당연지사.

이밖에 오스카드라렌타는 도미니카 공화국의 명물로 자리한 토토가베이(Tortoga Bay) 호텔/빌라에 특유의 오뜨꾸튀르적 정서를 캐주얼하게 재해석한 인테리어를 지휘했고, 아제딘알레이야는 밀라노의 3 Rooms 10 Corso Como와 손잡고 파리에 아파트 스타일의 작은 호텔 3Rooms를 오픈했는가 하면, 알베르타페레티는 1994년 4성급 호텔 팔라쪼비비아니(Palazzo Viviani)를 오픈, 호텔 사업에 일찌감치 발을 디뎠다. 중세적 매력과 모던한 감성이 절묘하게 조화된 팔라쪼비비아니는 부드럽고 로맨틱한 페레티의 디자인 세계가 숨쉬는 현장으로 호평 받고 있다.


아르마니의 무한 진화

한편 두바이에 위치한 최고층 건물 Burj Dubai(두바이타워)에 들어설 아르마니 호텔은 2009년 오픈될 예정으로 가구와 호텔에 비치된 소품, 그리고 인테리어가 모두 아르마니까사 토털 리빙 컬렉션으로 이뤄진 최고급 럭셔리 호텔이다.

아랍의 부동산 개발사 에마르프라퍼티(Emmar Properties)와 손잡고 호텔과 리조트로 구성된 아르마니 호텔은 두바이를 시작으로 밀라노, 파리, 뉴욕, 런던, 도쿄, 상하이 등 전 세계 7곳에 연이어 오픈될 예정인데, 아르마니는 호텔 뿐 아니라 14개에 달하는 엠포리아르마니/아르마니진스 카페를 운영하고 있으며, 홍콩에 문을 연 아르마니 바(Armani bar), 전 세계 패셔니스타들이 찾는 고급 레스토랑 노부&프리베(NoBu & Pirve), 스타일리쉬한 서점 아르마니리브리(Armani Libri), 화훼 업체 아르마니피오리(Armani Fiori), 사탕/과자류 업체 아르마니돌치(Armani Dolci) 등 다양한 부문으로 진화를 거듭하며, 디자이너의 무한대 파워를 실증하고 있다.

물론 묵묵히 한 우물을 파며 디자이너를 ‘소명’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에게는 아르마니의 멀티플래너적 움직임이 불편하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그의 패션 외 사업이 패션 사업에 ‘의존’하거나 ‘묻어가는’ 형태가 아니라 전문적이고 체계적인 지원을 바탕으로, 독립적인 사업체로 운영되어 패션 제국에 짐을 지워주는 부작용은 일으키지 않는다.

따라서 ‘이름 팔기’가 아닌 독자적인 사업의 형태를 뛰는 아르마니의 ‘진화’법은 타깃 고객의 수입과 성향에 맞춰 패션 제국을 분리하는 그의 정책(조르지오아르마니→엠포리오아르마니→아르마니꼴레지오니→아르마니진스→아르마니익스체인지)과 같은 선상에 있다.

그런 만큼 치열한 멀티플래너적 사고와 시대의 흐름을 읽는데 서툴다면 디자이너의 ‘진화’ 흐름에 동조하기는 부담스러운 것이 사실이다. 그리고 이 같은 아르마니의 멀티 진화가 가능한 것은 패션계 중심에서 옹골차게 자신의 위치를 유지한 디자이너로서의 그의 파워에 기인한 것임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결과적으로 디자이너의 다방면으로의 진화는 준비된 자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인 셈이다.



예정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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