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의 뮤즈, 디자이너들의 창의성을 자극하는 뮤즈도 트렌드가 있는 것일까? 2005년 디자이너들은 자유로운 영혼, 에디 서즈윅에 빠져 있다. 패셔니스타들에게 다소 생소하게 들릴 수 있는 에디 서즈윅은 1960년대 팝 아티스트. 그녀의 일대기를 다룬 영화가 제작되고 있을 뿐 아니라 파워풀한 디자이너 존 갈리아노가 지휘한 2005 크리스찬 디올 컬렉션의 테마로 등장하면서 시대를 앞서간 스타성이 새롭게 부각되고 있다.

패션계에서 ‘뮤즈’에게 요구하는 것은 머리부터 발끝까지 우리의 시선을 붙잡게 할 어떤 극적이고 시각적인 요소다. 이런 점에서 시대의 규범을 깨뜨리고 자기의 욕망대로 살다 간, 또한 풍요로운 삶을 박차고 나와 20대 젊음을 예술과 마약으로 헝클다가 극적인 삶을 마감한 에디 서즈윅의 일생은 영감을 필요로 하는 디자이너와 ‘드라마틱한 스토리’에 마음이 움직이는 사람들에게 강렬하게 다가온다.
집시의 열정에 빠져 있는 디자이너 존 갈리아노는 크리스찬 디올의 오뜨 꾸뛰르 컬렉션과 레디투웨어 컬렉션에서 감각적인 보헤미안 스타일을 가장 잘 만들어낸 서즈윅의 이미지를 모던한 여성미와 결부시켜 표현했다. 특히 할리우드와 패션계에서 가장 주목하고 있는 여배우이자 패션 아이콘인 여배우 시에나 밀러(주드로의 약혼녀)가 에디 서즈윅 역할을 하게 되면서 패션 잡지들은 앞다퉈 맨해튼 갤러리에 전시된 에디 서즈윅의 사진을 1만2천달러나 주고 구입, 서즈윅에 대한 세간의 관심에 불을 지르고 있다.
사실 패션계의 ‘에디 서즈윅 따라하기’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몇 년 전 패션계의 찬사를 받았던 모델 케이트 모스의 픽시컷은 에디 서즈윅의 스타일을 베낀 것이었고 디자이너 마크 제이콥스의 뮤즈, 소피아 코폴라는 자신의 데뷔 컬렉션 ‘밀크페드(Milk Fed)’를 서즈윅에게 헌사하며 베스트 드레서로 꼽히는 그녀의 패션 감각이 서즈윅의 스타일을 발전시킨 것임을 부인하지 않았다.
또한 모델 파니보스 트롬은 2002년 윌영의 뮤직비디오 <Light my Fire> 속에서 맨발로 춤을 추면서 자유롭고 제멋대로였던 깡마른 미녀 서즈윅의 모습을 재현하는 등 에디 서즈윅은 패션과 연예계에서 잊혀질 수 없는 아이콘으로 자리해 왔다.
그렇다면 무엇이 그녀를 스타일 아이콘으로 만든 것일까?
패션 공식 깬 유니섹스 & 드라마틱한 인생
백만장자의 상속녀로, 하버드대 대학생이라는 타이틀을 내팽개치고 환락과 마리화나가 넘치는 앤디 워홀의 작업장(Factory)으로 달려갔을 때 에디 서즈윅의 나이는 겨우 19세였다. 앤티크 주얼리로 장식한 깡마르고 매혹적인 어린 소녀, 더구나 수백만달러의 재산을 상속받는 상속녀가 제 발로 찾아오자 앤디 워홀은 그녀를 자신의 작품에, 영화에, 마약 파티에 끌어들이며 ‘팩토리걸(Factory girl)’로 악명과 유명세를 얻게 해줬고, 그녀의 전 재산을 팩토리에 쏟게 한 다음 그녀를 버리고 다른 여자와 어울리면서 서즈윅을 파탄의 고통에 내려앉게 만들었다.
인형처럼 가늘고 실버 빛 컬러로 창백하게 염색한 머리카락, 햇빛이라고는 못 본 듯 핏기 없는 하얀 피부, 움푹 파인 큰 눈에 짙은 아이라이너, 짙은 눈썹 화장 등 퇴폐적이고 모던한 느낌을 주는 화장법, 미니 스커트와 마르고 긴 다리를 강조하는 블랙 스타킹으로 대변되는 에디 서즈윅의 모습은 당시 패션계를 경악시킬 만큼 자유분방하고 섹시하며, 모던한 스타일이었다.
또한 오늘날 백만장자의 상속녀 힐튼 자매가 그러하듯 리무진을 여러 대 대절하고 뉴욕과 파리 패션가를 돌면서 가격도 묻지 않고 값비싼 옷을 마음대로 구입하고 기분 내키는 대로 주변 사람에게 줘버리면서, 결국 수많은 재산을 앤디 워홀의 팩토리 사업에 바치고 친구인 체하는 주변 사람들에게 빼앗긴 뒤 마약에 빠져드는 비극적이고 철없는 이미지는 그녀를 드라마틱한 패션 아이콘으로 자리잡게 하는 데 하나의 바탕이 된다.
자유분방한 스타일로 유명한 디자이너 벳시 존슨은 처음 패션계에 진출할 무렵 보이시하고 유니섹스한 분위기를 물씬 풍기는 매혹적인 에디 서즈윅에 매료되어
예정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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