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가지 타이틀만으로 성이 안 차는 디자이너 이보미. 「비토」를 지어내는 디자이너로, 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수로, 국내 패션을 이끌어가는 젊은 디자이너로 활동 중인 이보미 씨가 최근 다른 분야의 예술가들과 호흡하며 또 다른 의미의 예술가로 새로운 활동을 하고 있다. 그녀를 만났다. <편집자주>
만나기도 전에 잦은 통화로 이미 친해진 듯한 느낌을 갖고 만난 장소는 그의 차 안이었다. 낮 동안 어딜 그리 바삐 돌아다녔는지 화장기 없는 얼굴에 활동성 좋아 보이는 (?) 후드 티셔츠와 트레이닝 팬츠의 차림은 ‘여장부’가 짐작이 아니었음을 확인시켜 줬다.
간간히 초록색의 도수 없는 안경을 치켜세우며 동글동글 굴리는 맑은 눈동자는 그녀가 가진 순수함의 결정체였고, 가무잡잡한 피부는 흑백사진처럼 사는 일에 고단했던 흔적이 오롯이 드러났다. 곧이어 그녀는 결코 삶의 찌든 표정이 아님을 얘기했다. 반듯한 성공은 아니었을 지라도 자신의 삶에 충실하고, 순결하기 까지 했으니 말이다.
‘말총’으로 디자이너가 되다
이보미를 패션계에 첫 발을 내딛게 한 사람은 정구호였다. 이보미는 98년 (구)가인 갤러리에서 ‘말총 전시회’를 열었다.
대학 시절 불어불문과를 졸업하고, 패션계에 열정 하나로 출사표를 던졌던 것이 ‘말총’이었다. 이보미가 석사 논문으로 준비했던 이 말총은 말의 갈기나 꼬리털을 갖고 옷으로 표현했던 것으로, 그 당시 독특한 소재와 꾸튀르 의상의 참신함으로 많은 패션인들의 이목을 샀었다. 그 중 정구호의 눈에 들어 디자이너로서의 삶을 시작하게 되었던 것이다.
이 작품을 통해 석사 논문 통과는 물론 해외 소재 전시회 등에서 입상하는 등 크리에이티브한 디자이너로서 순조로운 출발을 알렸다.
이후 디자이너들로 운영되는 ‘콜렉티드 멀티샵’에 자신의 의상을 내걸게 되었다. 이보미는 “디자이너로부터 완사입 돼 실험적이고 장인정신을 고스란히 담아내던 샵”으로 회상했다.
지금까지 그 명맥을 이어오진 못하고 있지만, 이후 여러 백화점에서 재현되고 있다. 그 중 이보미가 입점해 있는 곳은 갤러리아백화점의 ‘GDS’라는 곳이다.
“2000년부터 「비토(VETO)」라는 이름을 걸고 지금까지 왔네요. 그 당시 엔디엔뎁, 박지원을 비롯해 이후에 많은 디자이너들이 거쳐갔죠. 그런데 왜 저만 지금까지 남아있냐고요? (웃음) 저 빼고 다들 비즈니스적인 마인드가 탁월하고, 행정 분야도 일사천리잖아요. 저 같은 사람들을 위해서라도 패션계에 이 분야의 전문 인력이 나와줘야 한다니까요.”
사실 이보미는 2~3년간 GDS를 빠져나와 있었다. 하지만 그 시간들은 절대 녹록치 않은 시간임은 분명했다. 그 시간들로 인해 세상의 인생살이가 위태롭고 고독한 싸움이었음을 알았기 때문이다.
나의 제자는 나의 스승, 또 다른 스승을 만나다
이보미가 상명대학교 강단에 선지도 2년이 넘었다. 지금의 학과장과 인연으로 상명대와 연이 닿았지만 그녀는 ‘교수’로서 초짜는 아니었다. 배제대의 의상학에 관한 수업을 진행하기도 했고, 우성대의 컴퓨터 디자인 개론 등의 강의 이력을 갖고 있었다.
“늘 행동에 조심하게 돼요. ‘교수’로서의 행동이 학생들에게 영향을 주는 것을 생각하면 더욱 그렇죠. 또 더 많은 것을 알려주고, 보여주려면 제가 더 많은 것을 알아야 하기에 ‘공부’를 손에서 놓질 못하게 됩니다. 이 모든 것이 오히려 학생들에게서 배우는 것이 아닐까요.”
이보미는 학생들에게 ‘기댈 언덕’이 되고자 한다. 4년 이라는 시간동안 동고동락하면서 자신으로 하여금 깎이지 않은 원석을 보는 즐거움이랄까.
이보미는 획일적으로 굳혀진 국내 패션 시장에 반기를 들고, 유럽행을 택했다. 하이앤드나 후즈넥스트에 버금가는 ‘티라노이’의 전시에 참가하기 때문이다.
“사실 국내에선 대단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입에 오르내리기 보다 조용히 저만의 마이웨이를 걸었던 것 같아요. 스타일은 미니멀하지만, 속속들이 배치되어 있는 「비토」만의 ‘무엇’이 대중들에 경계심을 샀던 것이겠죠. 물론 높은 가격대도 배제할 수 없는 사실이고요. 하지만 어느 것 하나도 놓기는 싫어요. ‘티라노이’는 유럽의 고가의 상품군으로 이뤄진 멀티샵으로 세계 곳곳의 바이어가 몰리는 장이죠. 이번 전시를 통해 저의 잠재된 가능성을 확인하고, 세계가 주목하는 또 다른 ‘스승’을 발견하고 올 참이예요.”
다양한 아름다움에 대한 믿음
이보미는 요즘 다른 영역의 아티스트들과 호흡을 맞추고 있다. KDA 라는 일본 건축가협회 발족 준비위원회에 영입되어 이리저리 뛰어다니고 있다는 것이다. 사실 인터뷰 전 바삐 돌아다닌 덕분에 연출된 몰골(?)은 이 단체의 감투 때문이란다. 그가 이리도 집착하는 것은 이유가 있었다.
“월간 <디자인>의 하태석 씨가 라이선스로 들여오
함민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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