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케이엔터프라이즈(구.일경)에서 「DKNY」를 런칭한다고 했을 때 사실, 패션업계 사람들 거의 모두가 고개를 갸우뚱했다. 분명히 예전에 이 브랜드를 했던 기업처럼 잠시 하다가 결국에는 접고 말 것이라고들 했다. 「게스」 「폴로」 등 캐주얼 브랜드 노하우밖에 없는 아이케이가 과연 여성복을 할 수 있을까, 또 수년간의 적자행진으로 허약해질대로 허약해진 체력으로 버틸 수 있을까 하는 의아심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아직 속단하기에는 이르지만) 런칭 2달여가 지난 지금, 이 브랜드의 가능성에 보다 높은 점수가 매겨지고 있는 것 같다. 또 최근 수년간 와르르 무너진 패션 대기업들 사이에서 아이케이가 다시 한번 시장을 리드하는 주역으로 떠오를 것이라고 기대하는 사람들도 있다. 김형일 사장의 패션에 대한 감각과 힘있는 추진력이 빛을 발할 때가 온 것일까?
90년대 중반 한국 패션시장의 중심에 서 있던 그에게도 위기는 있었다.
‘큰 것이 강하고 좋은 것’이라는 생각이 90년 초중반의 한국 사회를 지배했던 논리다. 패션, 그리고 라이프 스타의 변화를 예견하는 데 탁월한 감각을 가진 그에게 될것같은 사업이 여기저기에 널려 있었고, 그 역시 한번 덩치를 키워보려는 욕심도 있었다.
「게스」 「폴로랄프로렌」의 성공을 바탕으로 캐주얼(제드), 신발(스타디움), 아동복(미키클럽), 인너웨어(바디스튜디오), 패스트푸드(버거킹, 데니스, 리틀시저스피자), 음반(타워레코드), 여성복(메르꼴레디, 꼴레지오네) 등 수많은 사업이 그의 손 안에 있었다. 그러나 IMF를 거치면서 절반 이상의 브랜드를 떨어내야 했다.
김형일 사장이 패션시장의 중심에서 잠시 뒤로 물러난 시기였다.
자존심도 상했을 것이고, 자식같은 브랜드들을 떨어내는 게 마음도 아팠을 것이다. 어떤 심정이었냐는 기자의 질문에 그는 ‘허허‘ 하고 웃었다.
“제가 언제 패션시장을 리드했던 적이 있던가요?”하고 겸손해 한다. 열손가락 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이 있지 않겠는가라는 질문에는 “물론...현재 아이케이를 있게해준 「폴로」는 지금도 아쉬움이 남는다. 그래도 그런 브랜드를 팔아(?) 돈을 만들고 또 새로운 회사 성장의 발판을 만들었으니 정말 효자 아닌가.”라고 분위기를 전환시킬 줄도 안다.
그가 「DKNY」에 애착을 갖는 이유도 이와 맥락을 같이 하고 있다.
김형일 사장의 ‘가능성’에 힘이 실리는 이유는 그가 IMF 파동을 겪으면서 ‘패션 사업은 이렇게 하는 거구나’라는 살아있는 체험을 했기 때문이다.
90년대까지만 해도 회사의 덩치로 사업을 잘하는 사람과 못하는 사람을 구분했었다는 것이 그가 말하는 지난 시대의 경쟁력이다. 그러나 2천년대는 매출 단위 평가에서 벗어나 수익구조로 그 회사를 평가해야 한다는 것이 그의 확고한 지론이다.
수익을 낼 수 있는 회사를 만들기 위해 그가 가장 먼저 한 일은 독립 사업부의 출범이다. 각 브랜드별로 그 일을 가장 잘 해낼 수 있는 전문가를 육성하고 그들에게 사업을 일임하는 것이 회사 전체의 효율 및 분위기 쇄신을 위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는 회사의 직급체계도 모두 없애 버렸다. 단지 브랜드를 이끌어갈 팀장과 브랜드 매니저가 존재할 뿐이다. 그 외에는 모두 사원이다. 판매직원들도 모두 개인 사업자로 변신했다. 판매직원들이 내 사업이라는 개념을 갖기 시작하면서 매장 관리도 점차 좋아지고 있는 추세다.
아직까지는 이런 시스템들이 과도기 단계지만 그는 언젠가는 직원들이 그의 뜻을 이해할 날이 올 것으로 믿고 있다.
물론 이런 깨달음을 얻기까지는 많은 아픔이 함께 했다. 구로공단으로 회사를 이전하면서 1천200여명이던 직원이 91명으로 줄었다. 현재는 170여명이 아이케이 가족들이다.
판매직원들이 개인사업자가 되면서 직원에서 제외됐으며 물류자동화 시스템을 도입하면서 물류창고 직원도 22명으로 줄었다. 스스로 회사를 떠난 식구들도 적지 않다. 무엇보다 「폴로」와 「버거킹」을 두산에게 넘기면서 온 허탈감도 감추지는 못한다.
지난해 아이케이는 560억원(출고가)의 매출에 12억원의 경상이익을 냈다. 2.1%밖에 되지 않지만 90년대 중반 이후 처음 흑자전환한 것이라는 데 의미를 부여한다.
김형일 사장은 올해는 높은 경상이익을 실현할 것이라 확신한다. 지난해까지는 과감한 구조조정을 위해 재고를 원가에 못 미치는 금액으로 대량 판매했지만 올해는 모든 재고가 원가 이상에 판매 될 것이다.
또 ERP(전사적 자원 계획) 시스템을 도입하는 데 투자된 비용이 올해는 비용 절감으로 나타날 것이다.
F/W에는 「DKNY」남성복을 전개하고 내년에는 아동, 스포츠 라인까지 런칭 계획이 이어져 있다. 또 게스 여성 라인인 「게스 영컨템포러리」와 「키즈게스」로 연타를 날릴 계획을 하고 있다.
다시 한번 패션 시장의 선두주자로 발돋음
정인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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