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R·물류·수주 분야가 그가 중점적으로 시스템화했던 것들.
일단 업무의 시스템화가 되면 조직원들은 이 시스템에 맞게 움직여주기만 하면 된다.
코오롱상사의 남성복사업부가 활기를 띠고 있다. 대기업답지(?) 않게 뭔가 꿈틀거리는 에너지가 느껴진다. 남성복 부문을 진두지휘하고 있는 정영오 이사는 이 에너지를 만들어내는 근원지다.
그가 79년 코오롱에 입사해 97년 한창 어려웠던 시절 남성복사업부의 사령탑을 맡아 지난해 전 브랜드를 흑자로 전환시키기까지의 얘기를 들어봤다.
정영오 이사는 ‘대기업은 패션 사업을 잘 할 수 없다’라는 말을 싫어한다. 그건 호랑이 담배먹던 시절 얘기라고 치부해버린다. 어떤 사업이건 그 사업에 적합한 시스템만 갖추고 있으면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이 그가 늘 강조하는 말이다.
그는 IMF를 거치면서 어떻게 이 시스템을 갖출까를 고민했다. 여기서 시스템이란 ‘패션사업을 가장 잘 할 수 있기 위해 기본적으로 갖춰야 할 것’을 말한다.
QR·물류·수주 분야가 그가 중점적으로 시스템화했던 것들. 일단 업무의 시스템화가 되면 조직원들은 이 시스템에 맞게 움직여주기만 하면 된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었다. 흘려듣기에는 별것도 아닌, 당연한 것으로 여길 수 있는 항목들이지만 7∼8개 브랜드가 한꺼번에 움직이는 대기업의 조직에서는 말처럼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100장을 만들어 90장을 매장에 주고 팔고 남은 것은 시즌이 끝나면 반품받고...이것이 예전 우리의 모습입니다. 그러나 이제는 100장 중 50장만 주고 나머지는 잘 파는 매장에 줍니다. 매장간 수평이동도 모두 물류센터를 중심으로 이루어집니다. 일일배송체제도 같은 결과죠”
생산도 무조건 만들어내는 구시대적인 방법을 탈피한 지 오래다. 팔릴 것 같은 원단은 미리 확보하되 제품은 소량을 만든다. 반응을 보고 본격생산에 들어간다.
수주시스템도 효율을 높이는 데 한몫을 하고 있다. 물론 수주라고 해서 완사입제는 아니지만 각 매장의 전년실적에 따라 그 매장에 정량을 할당한다. 이 물량 내에서 점장이 잘 팔 수 있는 제품을 선택하고 이에 따라 배분이 이루어진다. 점장들의 책임감이 커졌다. 판매분에 대해서는 그만큼의 금전적 보상도 따른다.
코오롱의 이런 ‘기본 시스템’은 결실을 맺기 시작해 판매율이 80%에 이르는 좋은 결과를 낳고 있다.
이 때문에 그는 타기업, 타브랜드와 외형으로 비교대상이 되는 것을 싫어한다. 외형이 얼마고 하는 것을 논하는 시대는 물량으로 승부했던 옛날 얘기다. 이제는 얼마나 많은 수익을 내고 있는가가 더욱 중요한 때라는 것이 그가 누누히 강조하는 말이다.
또 한가지 그가 패션사업에서 강조하는 것이 있다. ‘합리성’과 ‘신뢰’가 그것이다.
그가 밀라노 지사장으로 근무하던 시절, 그는 「헨리코튼」과 「캐서린햄넷」 두 브랜드의 라이센스 계약을 진행시켰다. 이 중 「헨리코튼」은 비록 지금은 캐주얼사업부로 이관됐지만 아직도 애착이 가는 브랜드.
그는 이태리 현지에서 직접 발로 뛰어 찾아낸 브랜드의 라이센스 계약 체결을 눈앞에 두고 국내 모기업에서 더 높은 미니멈 개런티를 제시해 계약이 무산될 위기에 처한 적이 있다고 한다.
그는 밀라노에서 300Km 북쪽에 위치한 헨리코튼 본사를 매일 찾아가 담당자를 설득했다. 한국 패션시장의 구조에 대해서 끈질기게 설명하면서 신뢰를 쌓았다. 결국 「헨리코튼」은 코오롱의 몫으로 돌아왔다.
그는 지금이 현재 위치에서 한단계 발전할 수 있는 가장 좋은 기회라고 생각한다.
그는 30대 젊은 남성 소비자들의 패션에 대한 안목이 깨었다고 말한다. 그래서 얼마나 적극적으로 시장 변화에 대처하느냐에 따라 수년후 코오롱의 위치가 바뀔 수 있다고 내다본다.
특히 일본과 마찬가지로 20대∼30대를 중심으로 하는 캐릭터 남성복 시장이 보다 더 세분화, 전문화 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이번 시즌에는 「아르페지오」를 중심으로 테스트도 거치고 있다. 실제로 롱&슬림 실루엣의 젊은 감각의 상품 판매 비중이 40%선을 넘어서면서 호조를 보이고 있다. 「오스틴리드」 「맨스타」의 최근 움직임도 이와 맥락을 같이 하고 있다.
90년대 중반 ‘코오롱은 남성복사업부가 먹여 살린다’는 말을 종종 들었던 그가 현재는 패션시장의 변화에 의해 자연스럽게 스포츠·캐주얼 사업부에 그 자리를 내주게 됐다.
그러나 그는 머지않아 남성복 부문이 코오롱 뿐만 아니라 패션시장의 중심에 서게 될 것으로 확신하고 있다. 그 어렵다던 IMF 시기에도 코오롱의 남성복 브랜드는 단 한 개도 사장되지 않고 끝까지 살아 남았다는 것이 그를 지탱해주는 힘이고 또 보람이기도 하다.
김희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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