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는 현재 대구 섬유패션대학의 학장이다.
이제 서울에서 그녀를 보기는 힘들다. 한 달에 한번도 채 상경을 하지 않는다. 오로지 패션대학을 어떻게 이끌어갈 것인가, 학생들에게 무엇을 가르칠 것인가, 업계에 어떤 형태로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인가가 그녀가 생각하는 모든 것이다.
30년간 업계와 학계를 오가며 가교 역할을 해왔던 그녀가 이제 다시 학계로 돌아와 국내 패션에 가치있는 인재를 키우는 데 모든 역량을 쏟고 있다. 30여년간 다져온 그녀의 패션에 대한 노력이 얼만큼의 결실을 맺을 지 업계의 시선이 집중되고 있다.
이호정 박사는 한국 패션계의 산증인이다.
그녀는 패션이라는 단어 자체가 어색하고 낯설 정도였던 70년대부터 학계와 산업계를 오가며 국내 패션산업의 밑거름을 다지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
이 박사는 패션계와 인연을 맺게 된 계기를 묻자 ‘와세다 대학원의 지도 교수 덕분’이라며 웃음을 터트렸다.
한국에서 교육학을 전공한 이 박사가 전공 공부를 더 하기 위해 일본 와세다 대학원에 원서를 냈던 당시 지도교수가 해외 교환교수로 1년간 자리를 비우게 된 사건이 바로 그것이다.
피치 못하게 1년간의 공백을 가져야 했던 이 박사는 당시 아르바이트로는 양재가 최고라는 소문을 듣고 오리엔탈 양재학원 6개월 과정을 다녔다. 처음엔 용돈을 벌기 위한 목적으로 시작했던 의상공부에 재미를 붙인 그녀는 교육자의 꿈을 접고 아예 문화복장학원에 입학을 해 버렸다.
새로운 것을 접한 그녀의 열의와 또 잠재된 끼가 합해져서인가 그녀는 문화복장학원을 다니던 2년 내내 1등 자리를 놓치지 않았다.
일본에서의 수년간의 유학이 이 박사에게는 소중한 경험이자 국내 학계에 발을 들여놓는 계기가 됐다.
“물론 재미도 있었죠. 하지만 무엇보다 당시 국내에서 의상교육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갈피를 못잡고 있던 상황이 저를 학교로 오게 만들었습니다. 후학을 가르치는 것이 절실한 때였죠. 이것이 한국에서 본격적으로 패션계에 발을 들여놓게 된 이유죠”
패션계의 선구자적인 역할을 하고 싶었던 그녀는 문화복장학원을 졸업한 후 곧바로 덕성여대 교수로 발령을 받아 본격적인 후학 양성에 들어갔다.
77년부터 81년까지 5년간 학생들과 함께 하면서 그녀가 가장 절실히 느낀 것은 현장을 모르고서는 제대로 가르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이론만으로는 저도 학생들도 발전할 수가 없었죠. 현장을 알아야 보다 현실감 있고 체계적으로 능력을 키우고 또 가르칠 수 있을 것이라고 판단했습니다.”
그래서 그녀가 선택한 곳이 코오롱이었다.
“기업에 들어가서 현장업무를 맡은 후에야 내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가를 깨달았죠.”
그녀가 당시 가장 절실히 느꼈던 것은 학계와 업계를 잇는 가교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코오롱 디자인실장으로 근무하면서 틈틈이 강의를 했다.
또 이를 바탕으로 패션전문서적을 발행하는 등 그녀는 1인 다역을 막힘없이 해냈다.
그녀가 지난 79년부터 지금까지 발행한 책은 어림잡아 10여권. 「복식산업론」 「의류상품학」 「패션디자인」 「패션비즈니스사전」 「패션스페셜리스트」 「패션마케팅분석&트렌드분석」 등 분야도 다양하다.
79년 발행한 「복식산업론」은 패션업계 최초의 전문서적이자 10년이 넘는 베스트셀러로 기록되기도 했다. 지금 패션계에 몸담고 있는 사람이라면 이 박사가 쓴 책 한두권쯤 읽어보지 않은 사람이 없을 것이다.
84년 숙명여대 박사과정에 입학한 이 박사는 이후 91년 패션마케팅 분야로는 1호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그녀의 욕심은 끝이 없었다.
“기업에서 일을 해보면서 다시 한번 생각한 것이 기업현장에서 필요로 하는 인력을 길러내는 역할을 학계가 해야 한다는 것이었죠. 대학에서 가르치지 못하는 전문적이고 현장감 있는 교육을 할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이 박사는 이를 위해 코오롱의 경영진을 설득하기 시작했다. 이래서 문을 연 곳이 89년 3월 FIK였다.
그녀는 경영자로서, 교수로서, 디자이너로서 다시한번 자리매김하는 시기를 거쳤다.
94년 그녀는 이데아패션연구소를 설립한다. 이데아패션산업연구원은 그녀의 20년간의 패션에 대한 애정과 노력의 결실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데아는 학생들을 가르치는 단순한 학원으로서 뿐 아니라 이데아패션연구소를 통해 업계의 일원으로서의 역할도 진행해왔다.
“95년부터 97년까지 삼성패션연구소, LG패션 등에 컨설팅을 하고 여러 기관과 패션업체의 프로젝트를 진행했죠. 사실 돈도 좀 벌었습니다. 단순히 눈에 보이는 규모로만 보자면 처음 50여평에서 시작해 250평까지 학원을 넓히기도 했죠”
패션업계가 치명타를 입었던 98년 이데아도 예외는 아니어서 수강생도 줄고 업계의 일거리도 줄어들었다. 그러나 그리 오래 가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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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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