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룰 ‘꿈’이 있기에 난 당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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낸시 랭 「쌈지」 아트 디렉터

2006-02-03 오전 10:11:33

패션은 두 가지 속성이 있다. 첫 번째는 ‘끊임없이 변화를 추구한다’는 점이고, 두 번째는 ‘늘 새로운 스타 탄생을 고대한다’는 점이다. 특히 20세기 말부터 불기 시작한 브랜드와 아티스트의 만남, 즉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시대는 젊은 아티스트들에게 많은 기회를 제공했다. 식상함과 독창성 부재에 빠져 있는 한국 패션계로서는 타산지석의 교훈이 아닐까. 「쌈지」 낸시랭 라인의 아트 디렉터로서 제품 디자인, 생산, 광고기획, 매장 인테리어 그리고 쌈지의 광고 모델에 이르기까지 1인 다역을 소화하고 있는 팝아티스트 낸시 랭을 만났다.

청담동에서 열린 낸시 랭 2006 봄·여름 패션쇼는 예술과 패션, 더 자세히 말하면 패션과 퍼포먼스가 만난 ‘패포먼스’. 특히 ‘아티스트 피처링 브랜드’로 명명된 새로운 쌈지 프로젝트의 1탄인 낸시랭 라인은 컨템포러리 패션 & 문화 코드를 동시에 읽을 수 있었다.

핑크 플로이드의 <더월> 뮤직 비디오를 연상시키는 스쿨걸 룩 무대와 천사와 악마의 갈등을 표현한 스포티 핑크 무대, 그리고 셀카에 빠진 요즘 아이들을 연출한 마지막 무대에 이르기까지 이제 고객은 더 이상 객체가 아닌 주인공이었다. 치열한 경쟁을 뚫고 선발된 165cm 전후의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의 ‘리틀 낸시’ 50명은 그들만의 리그가 보여줄 수 있는 최고의 열정을 낸시 랭과 함께 무대 위에서 발산했다. 마치 잘 나가는(?) 언니와 함께 나이트 클럽을 찾은 아이들처럼.

8년 만에 ‘쌈지스포트’에서 ‘쌈지’로 이름을 바꾼 쌈지 천호균 사장과 낸시 랭의 만남은 천 사장이 연애와 빗대 ‘첫눈에 반했다’고 할 정도로 극적이었다. 57세와 28세의 만남. 원조교제(?)에 가까운 이들은 어떻게 만났을까.
두 사람의 인연은 천호균 쌈지 사장이 지난해 모 대학원에서 디자인경영학 강의를 할 때 시작되었다. 당시 천 사장은 수강생들에게 쌈지의 아트 마케팅에 적당한 아티스트를 조사해 보라는 과제를 내주었는데, 젊은 수강생들은 이구동성으로 낸시 랭을 추천했다. 여기에 쌈지스페이스의 추천으로 직원 대상 세미나에 낸시 랭을 초빙한 그는 그녀에 대한 폭발적인 직원들의 반응에 그 자리에서 낸시 랭에게 쌈지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를 제안했다.

“저의 팝 아트를 패션으로 표현할 수 있는 기회가 왔다는 생각에 무척이나 기뻤어요. 솔직히 즉흥적이면서도 단호한 의사 결정에 깜짝 놀랐어요. 적어도 중간 단계는 있을 줄 알았는데…” 하지만 낸시 랭은 정중하게 천 사장의 제안을 거절했다. 자신의 능력이 그 정도에는 못 미친다는 생각에서였다. 본격적인 브랜드 전개를 안 해본 그녀에게 천 사장이 제안한 쌈지의 전체적인 리노베이션 디렉팅은 부담스러운 숙제였다. 결국 낸시 랭은 쌈지의 아트 디렉터 겸 디자이너로, ‘낸시랭’ 라인에만 주력하기로 했다. 낸시랭 라인은 2월에 「쌈지」 매장을 통해 첫선을 보인다.

스튜디오에서 약속시간 5분이 지난 오후 6시에 낸시 랭을 만났다. 스튜디오에 들어서자마자 기자에게 애교작전을 펴는 그녀에게 어찌 5분의 지각을 탓할 수 있으랴. 인터뷰 전에 촬영에 임하는 그녀는 사진작가에게 콘셉트를 묻고는 스스로 스타일링에 들어가 컷이 맘에 안 들면 수시로 스타일링을 바꾸었다. 사진작가로서는 최고의 모델인 셈. 간혹 지나친 오버는 사진작가의 심기를 불편하게 할 수 있겠지만 최상의 결과물을 향한 그녀의 열정이 눈에 보였기에 2시간의 촬영 끝에 최고의 한 컷을 건질 수 있었다.
많은(?) 짐을 들고 다니면서도 택시를 이용하는 그녀에게 차는 안 사냐고 물었더니 그녀는 대뜸 “저 운전면허증도 없어요. 늘 공상에 빠져 메모하는 버릇이 있으니 차를 운전하는 것은 제겐 음주운전과 같겠죠(웃음)? 돈 많이 벌어서 기사 딸린 차 살 거예요”라며 하루 24시간이 부족한 바쁜 일상에 운전은 또 다른 스트레스라고 말한다.

평소 일을 안 할 때는 무엇을 하냐고 물었더니 당당하게 ‘음주가무’라고 말한다. “친구들을 만나면 좋아요. 음주가무는 그 수단일 뿐이죠. 사람들을 만날 때 친구들을 보라고 하잖아요. 전 사람이 좋고 그들과 만들어가는 세상이 좋아요”라고 말했다.
발랄해 보이는 그녀에게도 위기는 있었다. 몇 년 전만 해도 강남의 퀸카로 불릴 정도로 발랄했던 그녀는 부유한 집안의 외동딸로 부족함 없이 자랐다. 하지만 어느 날 불어 닥친 불행은 그녀를 거의 패닉 상태로 만들었다. 사업 실패에 암 선고까지 받은 어머니, 친척의 사기, 아버지의 죽음 등 연이은 악재는 그녀를 2년 동안 방황하게 만들었다.

“미술만 바라보며 살았고,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유재부 기자
jby@f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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