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도단계에 대한 개념이 생겼다는 것은 색을 조율할 수 있는 대단히 중요한 무기를 하나 얻었다고 생각하면 된다. 이것을 기준으로 밝은 색과 어두운 색들을 모두 필요한 전략에 따라서 사용하면 태풍이 몰아쳐도 무너지지 않는 튼튼한 색의 건물을 설계하고 지을 수 있다.
명도단계와 명도전략
일단 명도단계에 대한 개념이 잡히게 되면, 색상환과 마찬가지로, 우리는 색에 대한 감을 잡기보다는 체계를 잡을 수 있다. 체계가 잡히게 되면 막연한 감각에 의지하는 것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정확하고 효과적으로 색을 다룰 수 있다.
예를 들어 <그림 1>과 같이 10개의 명도단계를 기준으로 상정해 놓고 나면 이것을 기준으로 우리는 아주 다양한 명도 전략을 구사할 수 있다.
가령 <그림 2>처럼 위아래로 인접한 면들의 단계 정도로 약한 명도대비를 추구할 수도 있고, <그림 3>처럼 가장 밝은 것과 중간 것, 가장 어두운 것을 대비시켜 균형잡힌 조화를 꾀할 수도 있다. <그림 4>처럼 아예 밝은 색과 어두운 색이 가장 극명하게 대비되게 할 수도 있다.
이처럼 명도단계 하나만 잡고 있더라도 파생될 수 있는 명도의 전략은 다양해지고, 그 결과 디자이너는 색을 마음먹은 대로 자유롭게 쓸 수 있게 된다. 막연히 타고난 감각만 가지고서는 이런 전략적 접근을 하기가 어렵다.
그런데 이렇게 다양한 명도의 전략들은 다양한 느낌, 다양한 이미지들을 낳게 된다. 디자이너에게 중요한 것은 결과물이 원하는 방향으로 만들어지는 것이기 때문에 어떠한 명도전략이 어떠한 결과를 낳는지를 디자이너들은 정확하게 몸으로 이해하고 있는 것이 좋다. 색 감각이라는 것이 특별히 타고나는 사람들에게만 허용되는 축복인 것 같지만 사실은 충분한 훈련이 축적되어 두터운 경험의 지층을 이루었을 때 비로소 뛰어난 감각을 소유하게 되는 것이다.
명도 차이가 많이 안 나는 조화
명도 차이가 많이 나지 않으면 색이 뚜렷하게 구분되지 않기 때문에 답답하고 미완성으로 보인다. 하지만 조형의 세계에서는 무조건 좋거나 나쁜 것은 없다. 앞에서 잠시 살펴본 것처럼 이러한 색들은 분명하지 않기 때문에 모호하면서도 신비로운 느낌을 준다.

<그림 5>는 상의의 살색 문양과 바탕, 하의의 노란색 명도 단계들이 아주 미세한 명도 차이만을 보여주기 때문에, 전체적으로는 색의 인상보다는 명도가 더 두드러지는 디자인이다. 이렇게 색상간의 명도 차이를 적게 하면서도 아주 밝은 상태를 유지하게 되면 차분하면서도 편안하고, 우아한 분위기가 만들어지기 때문에 「프라다」나 「구찌」 「아르마니」와 같은 명품 브랜드들이 거의 이런 명도전략을 사용하고 있다.
<그림 6>처럼 전체 명도가 중간 정도이면서 명도의 단계가 비슷하면 조금 느낌이 달라진다. 신비로운 느낌은 그대로 유지하면서 좀더 강한 인상을 주게 된다. 어느 정도 품격을 유지하면서 시각적으로 어필하고자 할 때 효과적이다.
전체적으로 어두운 톤이면서 미세한 명도 차이를 가지게 되면 조금 다른 종류의 신비감이 조성된다. 마치 깊은 바다를 대할 때처럼 무게가 있으면서도 바닥을 알 수 없는 그런 신비로운 느낌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그림 7>을 보면 비슷비슷해 보이는 명도의 색상들이 보여주는 아주 미세한 변화들이 신비롭고 성숙한 여성의 우아한 맛을 자아내고 있다. 밝은 명도의 색들과는 사뭇 다른 느낌이다. 이렇게 명도가 낮은 색에 변화를 주어서 깊이 우러나는 우아함을 꾀하는 색채전략은 우리나라 한복에서 자주 찾아볼 수 있다.
명도차가 고른 색의 조화
한 디자인에 들어가는 색들의 명도 차이가 고르다는 것은 색들의 명도가 밝은 것에서 어두운 단계에 이르기까지 고르게 분포되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렇게 명도의 분포가 어느 한 군데에 집중되어 있지 않고 고르게 분포되면 시각적으로 모호한 부분이 없어 명쾌해 보인다. 이것은 명도 차이가 나지 않는 앞의 경우와는 반대되는 경우이다.

<그림 8>의 디자인은 상의의 가로줄 무늬
최경원 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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