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미국 패션계에 기모노 바람이 거세다. 최근 개봉한 영화 <게이샤의 추억> 덕분에 일본 전통 의상 기모노와 게이샤 화장법이 미 패션가에 영향을 미치며 핫 이슈로 떠오른 상태다. 갑작스러운 기모노 열풍과 재패니즘의 진실 혹은 거짓.

영화 <게이샤의 추억>을 본 미국 관객들은 화면을 가득 채운 화려하고 열정적인, 그리고 유혹적이면서 도도한 기모노의 매력에 홀린 기분이라고 말한다. 영화의 주인공이 장쯔이가 아닌 화려한 기모노라는 생각이 들 때쯤 관객들은 기모노의 매력에 흠뻑 빠져든다.
화면 가득히 펼쳐진, 이국적이면서도 럭셔리한 기모노는 관능과 욕망, 사랑과 고통 등 여주인공의 정서를 대변하며 회화적인 장치로서도 강력한 마력을 발휘한다. 여기에 과도한 신체노출이나 몸을 조이지 않은 느슨한 실루엣은 서구 패션에서 느끼지 못한 특유의 관능미를 전해준다. 이는 관음증에 대한 환상을 가지고 있는 미국 패션에 있어 일종의 마약인 셈이다.
영화에서 기모노는 관능과 소유욕이 뒤엉킨 에로틱한 장치로 부각된다. 실제로 화면에 등장하는 250벌의 기모노는 30명의 기술자들과 함께 일일이 손으로 자수를 놓고 실크 스크린 기법을 사용해 제작한 것으로서 관람객들에게 한 편의 기모노 패션쇼를 감상하는 기분이 들게 할 정도로 매혹적이다.
욕망, 고통, 사랑, 슬픔이 투영된 ‘기모노의 추억’
‘기모노 열병’으로 정리되는 이 같은 현상에는 의상 디자이너 콜린 앳우드가 지대한 역할을 했다. 그녀는 섬세하고 미묘한 일본의 정서를 재해석한 후, 여기에 대담하고 화려한 프린트와 패턴으로 덧칠해 기모노를 인간의 욕망과 고통과 사랑과 슬픔을 동시에 대변하는 영화적 장치로 탈바꿈시켰다.
의상 디자이너 콜린 앳우드 팀은 다이아몬드를 박은 머리빗부터 전통적인 일본의 게다용 양말까지 세세하게 제작해, 마치 꾸뛰리에들이 런어웨이 쇼를 준비하듯 기모노의 화려함을 재현했다. 또한 게이샤의 레벨에 따라 각기 다른 컬러와 스타일, 장식을 한 기모노를 선보여 마치 기모노의 역사를 배우는 듯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여기에 12인치에 달하는 일본 전통의 플랫폼 샌들까지 등장, 화려함을 더하면서 영화는 존 갈리아노나 알렉산더 맥퀸의 드라마틱한 꾸뛰르 쇼를 연상시킬 정도였다.
일본인들조차 자신들의 전통 의상인 기모노가 이렇게 아름다울 줄 몰랐다고 탄복할 정도로 영화 속 기모노는 마티스의 그림마냥 열정적이고 매력적이다. 하지만 그 안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전통 기모노에 서양인들이 동양에 갖고 있는 또 다른 환상인 ‘중국’이 마치 숨은그림찾기처럼 숨어 있다. 즉, 기모노의 껍데기를 벗겨보면 그 안에는 중국 전통 의상에서 볼 수 있는 선명하고 화려한 컬러와 정교한 자수가 숨어 있다.
기모노의 전통을 생생하게 표현하기 위해 일본으로 직접 날아가 도쿄 패션 스쿨에서 자료를 수집한 디자이너 콜린 앳우드는 철저한 기모노 고증을 했다. 더불어 영화라는 속성을 감안해 좀더 강렬한 이미지를 심어주려고 그녀는 중국의 컬러나 자수를 응용해 미국인들의 뇌리에 박혀 있는 동양(중국)에 대한 이미지를 일정 부분 반영했다. 왜냐하면
<게이샤의 추억>은 일본 영화가 아닌 세계를 겨냥한 할리우드 영화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기모노가 미국 패션가를 사로잡은 비결은 무엇일까. 먼저 기모노 특유의 긴 브이넥을 들 수 있다. 단정하면서도 선명한 윤곽을 드러내 주는 브이넥은 서구와 다른 독특하고 대범한 컬러 배합으로 신선한 멋을 제공한다. 여기에 기모노는 하나의 패브릭으로 제작된 의상으로, 이는 신체의 굴곡을 살려 제작하는 서양 의상과 달리 입는 사람의 체형에 따라 자연스럽게 변화되는 실루엣을 제공한다. 특히 기모노 특유의 길고 수직적인 실루엣, 두 개의 긴 패브릭 패널을 어깨에서 등으로 감싸 만들어내는 은은한 품위, 길고 헐렁하게 늘어지는 소매는 우아함과 은밀함을 동시에 내포해 비현실적인 느낌이 들지만 바로 이 점이 기모노에 대한 환상을 가지게 하는 자극적인 요인이다. 한 마디로 기모노 열병은 서구적인 것에서 벗어나 새로움을 찾는 미국 소비자들에게 신선한 문화 충격인 셈이다.
영화를 통한 21세기형 진주만 폭격?
영화 <게이샤의 추억>의 미국 내 흥행이 회자되는 이유는 ‘패션이 문화상품의 일종’으로 다른 문화권을 침투하는 데
예정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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