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도를 낮추다 보면 무궁무진한 채도의 세계를 만나게 된다. 명도의 경우와는 달리 채도의 경우에는 채도를 낮추거나 높이는 과정에서 새로운 색상들을 만나게 되기 때문이다. 이때 만나는 색들은 이전에는 전혀 만나지 못했던 새로운 얼굴들이다. 마치 이웃 집을 방문해서 이웃사람들을 만나는 것처럼, 채도를 낮추기 위해 색들을 섞다 보면 낯선 색들을 만나게 된다. 색 감각이 좋다는 것은 이렇게 낯선 색들을 얼마나 많이 친근하게 만드는가의 문제라고 결론낼 수 있다.
보색 섞기
채도가 낮아지기 위해서는 무조건 색을 섞어서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색에 3원색을 모두 넣어주어야 한다. 말은 쉽지만 색이 복잡할 경우에는 좀 어렵다. 가장 쉬운 방법으로 들 수 있는 것이 보색을 섞는 것이다. 만일 빨간색의 채도를 낮추려고 한다면 색상환에서 마주보고 있는 녹색을 섞어주면 간단하게 채도를 떨어뜨릴 수 있다.

이론적으로 보면 이렇다. 빨간색이 원색 중의 한 색이고 녹색은 노란색과 파란색이 섞인 색이다. 따라서 빨간색에 녹색을 섞는다는 것은 3원색을 모두 섞는 것과 같은 말이 된다.
파란색일 때는 노란색과 빨간색이 섞인 주황색을 섞어주고, 노란색일 때는 보라색을 섞어주면 채도가 떨어진다. 명도를 조절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첨가하는 보색의 양을 조절해서 자기가 원하는 정도의 채도를 만들어주면 채도를 손쉽게 조절할 수 있고 자신이 의도하는 색 조합을 연출할 수 있다.
색에 대한 감각이 있다고 하는 디자이너들도 이 채도 조절의 문제를 확실하게 푸는 경우는 별로 없다.
대부분 화려한 원색을 조화롭게 다루는 정도로 색에 대한 감각을 운운하는 경우가 많은데, 사실 색에 있어서 가장 어려운 코스라고 할 수 있는 것은 바로 이 중채도나 저채도의 색들이다. 원색들은 사실 색의 캐릭터가 분명하기 때문에 색을 다루는 것이 크게 어렵지 않다. 하지만 이 색인지 저 색인지 모호하기 그지없는, 채도가 낮은 색들을 자유롭게 다루는 것은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다. 채도가 낮은 색을 다루기 위해서는 일반 사람들이 구별하지 못하는 정도의 채도를 구별할 수 있는 훈련된 눈이 필요하다. 이것은 그냥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수많은 색들을 섞어보고, 눈에 보이는 색들의 족보를 따지는 오랜 노력을 통해 얻어지는 것이다. 마치 훌륭한 성악가가 끊임없는 발성 연습으로 타고난 목소리를 유지하고 발전시키는 것과 같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색에서 감각을 운운하는 것은 아직 아마추어 티를 못 벗어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형태에서도 그렇지만 색에서 필요한 건 타고난 감각이 아니라 오래된 훈련이다. 훈련을 통한 눈을 가지고 있었을 때 색은 그야말로 어디로 튈지 모르는 미지의 대상이 아니라 예측 가능한 도구가 된다.
새로운 색 만들기
그런데 보색을 섞게 되면 색의 채도가 낮아지기도 하지만 새로운 색이 만들어지기도 한다. 보색과 결합해서 만들어진 색들을 단지 기준 색에서 채도가 떨어진 색으로 보지 않고 고유한 개성을 지닌 색으로 대하게 되면 우리는 무한히 많은 색들을 만나게 된다. 예를 들어 <그림 2>처럼 빨간색에 보색을 여러 단계로 섞어주면 첨가된 보색의 양에 따라 각각 느낌이 다른 색이 만들지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색들이 비슷한 것 같지만 명도단계의 경우처럼 기준색에서 어두운 정도가 심화되는 느낌을 주는 것이 아니라 각각의 단계의 색들이 변화하는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각각의 색들은 기준 색에 대한 종속적인 느낌보다는 독립성이 강하다. 이 부분이 채도의 매력이자 마력이라고 할 수 있다.
채도가 단지 3원색의 비율 문제인 것 같지만 이 비율의 미세한 차이에 따라 조성되는 오묘한 색의 변화는 말할 수 없이 다양해지는 것이다. 특히 채도의 변화에 따라 만들어지는 색은 단지 3원색의 성분 문제로 볼 것이 아니라 자신의 캐릭터를 분명히 가진 색과 색이 만나서 전혀 다른 캐릭터의 색을 만드는 생성과정으로 보아야 맞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 정도로 채도의 세계는 깊고도 무궁무진하다.
그런데 하나의 원색에 보색을 수학적으로 첨가하여 채도를 낮게 하는 것은 채도를 낮추는 아주 단순한 방법에 불과하다. 색을 섞을 수 있는 경우의 수는 더없이 많다. 만약 기준 되는 원색에 준보색이 첨가된다고 생각해 보자. <그림 3>처럼 빨간색에 준보색이 섞일
최경원 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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