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대 초반, ‘국내 패션산업의 현주소’에 관한 내용의 강의를 하기위해 공석붕회장이 한 단체를 방문했다.
청중들은 디자이너 앙드레김과 같이 패셔너블한 강사가 올 것이라는 당초 예상과는 달리 깔끔한 양복차림의 공회장을 의외라는 눈으로 쳐다봤다.
공회장은 그때 그 사건을 회상하며 “스타일링이 패션의 전부라는 잘못된 인식에서 생긴 일이었다. 스타일로 패션을 100% 표현할 수 있다는 생각은 아직도 남아있고, 현재 국내 패션업계 발전에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고 말한다.
현재 공석붕 회장은 패션협회를 12년간 이끌어 오고 있다. 패션산업에 대한 인식전환을 위해 패션협회와 공회장이 주도적인 역할을 해왔다는 것이 관련업계의 평이다.
패션은 과학이 뒷받침되야
공석붕 회장은 “패션은 과학적이어야 한다”고 말한다.
“이태리, 일본이 시각적으로 보이는 스타일링만 잘해서 패션강국이 된 것이 아니라는 것”이 그의 설명. “어떤 스타일에 어울리는 적당한 소재를 찾아낼 수 있고, 스타일을 합리적이고 과학적으로 풀어낼 수 있는 전문가가 많았기에 패션강국의 꿈을 이루는 것이 가능했다는 것”이 공회장의 분석이다.
그러나 국내 패션은 과학적인 측면은 무시되고 스타일만이 중요시되는 경향이 강하다고.
공회장은 “최근 경기침체로 인해 패션업계가 고전하는 이유는 패션에 대한 기본 이해 없이 스타일링에만 치중한 것에 기인한 것이다. 예를 들어 겉감이 모소재인 경우 안감은 모, 실크, 레이온이 적당하다. 그러나 고급 여성복의 최고급 제품도 겉감은 순모, 안감은 100% 폴리에스테르를 사용하고 있는 경우를 자주 볼 수 있다. 순모와 폴리에스테르를 같이 쓰는 경우 흡습성 차이로 위생적 기능이 떨어지며 드레이프성이 맞지 않아 겉감의 옷 모양이 변화된다. 이는 스타일링만 중시여기고 소재에 무지한 요즘 디자이너들의 실상이 그대로 들어나고 있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공회장은 패션 고급화가 되려면 옷의 기능성, 쾌적함 등 가장 기본적인 것이 지켜져야 한다고 말한다. 즉 소재의 물성인 하드웨어와 스타일인 소프트웨어가 잘 결합되야 패션산업이 성장할 수 있다는 것.
“과학적으로 소재를 분석하고 그에 맡게 스타일링을 할 수 있는 디자이너가 몇 명이나 될까 의심스럽다. 반면, 섬유공학회에 가면 소재자체의 하드웨어적인 물성만 얘기하고 있다. 스타일링을 생각지 않고 개발된 소재는 단지 재료일 뿐이다.”
정부, 업계, 언론의 유기적인 조직력이 필수
공회장은 “패션업계의 체질강화를 통한 불황극복은 업계 혼자만의 힘으로는 어렵다. 정부, 업계, 언론의 유기적인 조직력이 바탕이 돼야 한다”고 강조한다.
“서울의 4분의 1 크기도 안 되는 밀라노가 세계의 패션중심지로 도약해 많은 부가가치를 낳고 있다. 90년대 들어 도쿄, 오사카, 다롄, 홍콩, 상하이 등 동아시아 도시들이 패션도시로 도약하기 위해 컬렉션 육성책을 적극적 으로 펼치고 있다. 우리도 패션산업 발전을 위해 조직적으로 컬렉션을 육성해야 한다. 세계적인 브랜드 「크리스챤 디올」 「겐조」가 나올 수 있었던 것은 브랜드 혼자만의 힘이 아니라 정부, 관련 업계의 꾸준한 지원과 관심덕분 이다.”
공회장이 처음 회장직을 맡았던 90년대 초반에는 패션산업에 대한 정부의 지원과 언론의 관심이 미비했다고 한다.
공회장은 “1야드에 5달러짜리 원단을 10달러, 20달러로 부가가치를 붙여서 팔 수 있는 패션산업은 고부가가치 산업”임을 알리는데 주력했다. 또 서울컬렉션, 대한민국패션대전, 서울패션위크 등 굵직굵직한 행사를 주관하고 홍콩패션위크, 매직쇼, 도쿄인너내셔널페어 등 해외 전시회에 참가했다. 패션벤처 소기업 육성사업, 패션수요정보시스템 구축 사업 등 다양한 행사를 꾸준히 진행해 왔다.
90년대 중반부터 사람들의 인식이 변하기 시작했다.
95년에 처음으로 TV에 서울 컬렉션이 방영됐다. 또 밀라노프로젝트로 섬유·패션산업에 대해 본격적인 지원이 이루어졌다. 올해부터는 포스트밀라노프로젝트가 확정, 섬유·패션산업에 다양한 형태로 정부지원이 계획돼있다.
패션협회가 이런 변화를 끌어내는데 중심 역할을 했다는 것이 관련업계의 평이다.
아시아의 중심으로
지난해 11월 한국패션협회, 일본패션협회, 그리고 중국복장협회가 EU와 미국에 대응할 수 있는 범국가적 패션협의회 (Asia Fashion Committee, AFC)를 출범했다.
아시아 각국의 섬유패션산업의 발전을 위한 협력, 제휴를 목적으로 설립이 추진되는 이 협의회는 3국의 패션협회 회장들이 발기 예비회담을 거쳐, 오는 7월에는 아시아패션산업발전을 위한 활동에 들어간다.
“아시아 3개국은 협력하지 않으면 안되는 시대에 돌입했다. 각 나라의 독자적인 패션현상과 시장특성을 상호 공유해 클러스터를 구성해야만 글로벌 시대를 이끌어
조정민 기자
< jeong@fashioninsight.com>
- Copyrights ⓒ 메이비원(주) 패션인사이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