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먹는 하마도 아니고 먹어도 먹어도 끝이 없으니…. 25억이면 자리를 잡는가 했더니 또 10억이 들어가고, 일단 시작한 사업이기에 제대로 한 번 해보고 싶었는데…. 도저히 앞은 보이지 않고 이러다가 본체 마저 위협받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이 들더군요. 어떡합니까 그나마 원·부자재 업체들에게 납품 대금 줄 힘이 있을 때 접어야지" 최근 브랜드 전개를 중단한 한 경영자의 말이다.
"브랜드 사업 2년만에 찍는 데만 11억원을 썼죠. 4억원은 백화점에 그냥 갖다 바친 셈이지…. 백화점에서는 답을 찾아볼 수가 없어. 대리점 유통으로 방향을 바꿀 계획입니다." 백화점 유통 중심의 브랜드를 접고 대리점 유통으로의 방향 전환을 꾀하고 있다는 또 다른 경영자의 이야기다.
백화점 아니면 물건을 팔 곳이 없는 한국의 유통현실에서는 백화점에 점포를 개설할 수 밖에 없고 기왕이면 잘 나가는 롯데와 현대와 신세계의 알짜 매장에 자리를 내야 브랜드를 띄울 수 있다는 '현실과 믿음'이 패션기업들의 목을 죄고 있다.
「앗슘」「디아」에 이어 여성 캐릭터 브랜드 「지센」이 올 여름을 끝으로 영업을 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백화점 입점 문제를 풀기 위해 롯데 출신의 경영자를 영입하고, 딱 부러지는 감각의 브랜드를 만들기 위해 국내 최고의 상품전문가를 영입하는 등 모회사 삼아의 '뒷심'을 과시했던 터라 「지센」의 영업중단 선언은 패션업계는 물론 유통가에서도 파문이 확산되고 있다.
여성복은 물론 남성 캐릭터 정장 등 백화점에 목을 메던 브랜드들의 침몰이 잇따르고 있다. 경기침체의 골이 깊어지면서 롯데, 현대, 신세계 등 유력 백화점에 매장수가 많은 브랜드일수록 고통이 가중되고 있다. 이들 유력 백화점의 노른자위 매장은 판매사원급여(월 900여만원), 인테리어 비용(감가상각, 월 300여만원) 등 월 고정비만 1천200여만이 넘는 데다 수수료가 35∼36%에 이르러 월 1억원에도 못미치는 매출로는 도저히 수지를 맞출 수 없기 때문.
기자의 느려터진 셈법으로 유력 백화점에서 월 8천만원의 매출을 올렸으나 이가운데 2천만원이 쫓겨나지 않기 위한 가 매출이라면 고정비(판매사원급여+인테리어 감각상각·1천212만원)에다 백화점 수수료와 수선비가 2천970만원이고 여기에 내가 내 돈주고 내 물건 사는 비용이 1천280만원이 소요된다. 8천만원의 매출을 내기 위해 5천462만원을 투자한 셈이다. 백화점에서 수금한 돈 2천538만원(31.7%)로 원부자재 대금과 봉제공임 2천667만원(33.3%)을 지불하려니 수중에 있던 돈 128만원을 보태야 한다. 아직 직원월급도, 임대료도, 광고비도 은행이자도 지급하기 전인데 말이다. (소비자가=5배수, 정상가 판매율=60%)
중저가 캐주얼 브랜드들이 대리점에서 6천만원을 팔면 본사에는 4천20만원(마진 33% 기준)이 입급된다. 내 물건을 사는 엉뚱한 일에 돈을 들이지 않아도 되고, 판매사원 급여와 매장 인테리어 비용도 지불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배수가 낮아도(3.5배수) 이익이 크게 남는 비결이 여기 있다.
본지가 최근 입수한 여성복 브랜드들의 결산자료에 의하면 250억원(2002년, 소비자가)을 판매한 런칭 10년차가 넘는 비교적 자리를 잡은 어느 브랜드는 적자가 20억원에 달했다. 런칭 15년차를 넘는 연매출 300억원대의 또 다른 브랜드 역시 1억여원의 결손을 기록했다. 백화점에서 이들 브랜드들의 매출 순위가 중·상위권 이상인 점을 감안하면 백화점 영업에 의존하고 있는 많은 여성복 브랜드들의 살림살이는 그야말로 빛 좋은 개살구 수준을 넘어 썩어 문드러지고 있는 수준인 것으로 추정된다.
'마치 달리고 있는 호랑이 잔등 위에 있는 것 같다'는 어느 경영자의 말처럼 백화점에 목을 메고 있는 많은 패션 기업들은 (물려 죽을까 두려워)호랑이의 등에서 내려올 수도, 또 (호랑이가 멈춰 서는 순간 죽음이 예정되어 있으니) 호랑이의 등에 매달린 채 달릴 수도 없는 상황에 처해 있는지도 모른다.
황상윤 기자
hsy@fashioninsight.com
- Copyrights ⓒ 메이비원(주) 패션인사이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