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그대 있었음에 화려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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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7-28 오후 5:36:31

온 나라를 뒤흔든 물난리 뒤 끝에 오랜만에 비친 햇살을 반기며 조용한 주말 오후를 보내는 중에 날벼락 같은 연락이 전해졌습니다. 회장님께서 다른 곳으로 떠나가셨다는... 지난 봄 치료를 마치고 귀국해 요양하고 계시다는 소식에 찾아 뵈어야지 찾아 뵈어야지 하면서도 차일피일 미루다가 이렇게 황망한 소식을 접하고 나니 인간의 도리를 다하지 못한 마음에 차마 고개를 들지 못하겠습니다. 돌이켜보면 회장님과는 오랜 시간 대단한 인연으로 함께 했습니다. 70년대 초반 까까머리 소년이 서울 한복판에 있는 ‘동학사’라는 과학 교재사에서 본 건장하고 시원스런 외모의 아저씨가 보여주는 놀라운 기술들... 무선 조종이라는 신기한 마술의 세계에 빠져든 그 날부터 소년의 꿈은 하늘을 나는 비행기를 직접 만들고 말겠다는 일념으로 꿈 많은 청소년 시절을 보냈습니다. 하지만 세월은 그 소년에게 세상이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다는 것을 냉정하게 가르쳤고, 어찌어찌 80년대의 혼돈 속에서 청년이 된 소년은 구로공단 속에서 정말 다이내믹하고 컬러풀한 한 무리의 사람들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 무리들의 중심에서 소년의 뇌리에 꿈을 심어 놓은 바로 그 아저씨를 다시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때는 하늘을 나르는 비행기가 아니라 온갖 화려한 꿈을 꾸는 패션이란 마법 지팡이를 휘두르는 마법사의 모습이었습니다. 조금 시간이 지나 마포 도화동의 촌 구석에 정말 매력적이고 모던한 건물이 하나 들어섰습니다. 그 건물을 쏟아져 나오며 쉴 사이 없이 떠들어 대는 많은 멋쟁이들 틈에서 역시 그 건장한 마법사도 서 있었습니다. 명동이나 이대 앞의 양장점 안에 사고의 바운더리가 머무르고 있던 시절, 너무나 우연한 기회에 패션 산업에 뛰어 든 뒤로 사막을 걷고 있다는 생각이 들 때면 신기하게도 앞에 길이 나타났습니다. 캐주얼, MD 시스템, 마케팅, 서브 브랜드… 정말 제 잘난 맛에 용감하게 살던 그 시절, 책 안에서 탐구하던 선진 패션 용어들이 눈앞에서 실현되는 건 늘 한 분에 의해서였습니다. 그 마법사는 항상 꿈을 꾸고 변화를 주도했습니다. 그 마법사를 극복할 파랑새를 찾겠다는 생각으로 물 건너에서 어설픈 경험을 쌓고 돌아온 청년이 다시 마법사를 만났을 때 그 마법사는 용인의 한적한 전원 속에서 카누를 저으며 그 이상의 세상을 꿈꾸고 있었습니다. 우물 속에서 잘난 듯 울어대던 까까머리가 더 큰 세상에서 경험을 해보겠다는 용기를 갖게 된 것도 지금에 와서 생각하니 순전히 회장님과의 인연이 촉매제가 되었었음을 깨닫습니다. 지난해 꽃피는 봄 어느 자리에서 중사 계급장이 달린 밀리터리 재킷을 입고 쉴새 없이 한국패션의 앞날에 대해 울분을 토하던 저에게 “자네 이제 계급장 바꿔도 되겠네. 진급해도 되겠어!” 라고 농을 치시던 모습이 아직 생생하건만 불꽃 같던 열정을 거두고 이렇게 우리 곁을 떠나셨습니다. 우리가 ‘톰보이 사관학교’ 출신이라고 부르는 수많은 업계의 인재들과 대한민국 패션을 사랑하는 수많은 이들은 언제나 한결 같던 회장님의 궤적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당신은 늘 겸손하면서도 진취적으로 실천하셨고, 항상 화려했고 또 새로웠습니다. 당신은 말보다 행동으로 한국의 패션을 사랑했고, 당신의 삶으로 어느 순간 한국 패션에 생명을 불어넣었던 사람이었습니다. 때문에 동시대에 함께 꿈을 꾸었던 모든 이들은 당신을 진정한 선구자로, 친구로, 든든한 동지로 늘 기억할 것입니다. 지금 이순간 당신이 품었을 꿈과 열정을 어찌 감히 모두 헤아릴 수 있을까마는, 오랜 시간동안 함께 품었던 당신의 열정과 진정한 마음만은 결코 잊지 않겠습니다. 치열한 시대에 패션이란 공감대 하나만으로 회장님을 만나 열정에 감탄하고 선구자로서의 발자취를 뒤따를 수 있었음에 개인적으로 크나큰 행운으로 생각합니다. 우리 정말 당신과 함께한 시간들로 화려했고 행복했습니다. 이곳에서의 무겁고 아팠던 수많은 기억들은 훌훌 벗어버리시고, 좋았던 기억과 따뜻한 인연만을 품고 가십시오. 정말 기분 좋은 날, 양지바른 용인의 한 골짜기에서 맑은 술 한잔 부으며 행복했던 사람들 모여 찾아 뵙겠습니다. 오늘 햇살은 정말 따스합니다. 2006년 7월 25일 김묘환 드림 (주)CMG 대표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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