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년 한우물, 전세계 고객 인정
가+
가-

2006-06-09 오후 6:13:45

성기학 영원무역 회장 1974년 영창실업이란 이름의 평범한 봉제공장으로 시작했던 영원무역. 그러나 33년이 지난 지금은 4개국에 9개 지역에 생산기지 및 해외 사무소를 운영하며 연간 4천억원이 넘는 매출을 올리는 글로벌 생산기업으로 우뚝섰다. 이제 남부럽지 않게 사업도 일구고 돈도 벌만큼 벌었으니 편하게 지내고 싶은 마음도 들 법한데 성기학 회장은 아직도 1년에 8개월 이상을 해외에서 보낼 정도로 정력적으로 사업을 펼치고 있다. “사업을 처음 시작할 때는 그저 성공한 사업가가 되고 싶었습니다. 벌써 저더러 성공한 사업가라고 추켜세우는 분들도 있지만 저는 아직 멀었다고 생각합니다. 무한한 글로벌 시장에서 할 일이 얼마나 많습니까. 그렇기 때문에 현재의 꿈도 성공한 사업가가 되고 싶습니다. 지금은 사업 영역에서 OEM생산의 비중이 높지만 앞으로는 브랜드 비즈니스의 영역을 더 확대해 밸런스를 맞추려고 합니다. 「노스페이스」의 중국 사업과 이제 걸음마를 떼기 시작한 골프웨어 브랜드 「골드윈」을 빨리 정상 궤도에 올려놓는 일이 당면 과제입니다. 또 이제 시설 공사를 마무리한 중국 청도 공장을 확장하고 안정 시키는 것도 중요하지요. 아직 할 일이 태산입니다.” 봉제업으로 시작해 33년을 한 길만 걸어온 성기학 회장. 우리 경제가 고속 성장하던 70~80년대 남들이 땅투기다 뭐다 쉽게 돈 벌때도 곁눈질 하지 않고 오로지 고객들이 필요로 하는 수준의 옷을 만드는 데 집중했다. 기술개발과 교육에 남다른 정열을 갖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고객이 원하는 상품을 고객이 원하는 시점에 제시하는 것, 어쩌면 영원무역의 성장은 성 회장의 고객지향적인 사고에서 나왔을지도 모르겠다. “지금도 후회하는 일 중 하나가 1975년 성남 공장에서 노사 문제가 불거졌을 때 그곳을 테크니컬 센터로 바꾸지 않았던 것입니다. 위장폐업이라는 소리를 듣더라도 공장 문을 내리고 기술개발센터를 만들었더라면 기술 수준이 크게 진일보 했을텐데 남들에게 싫은 소리 듣기 싫어서 그만 아예 공장을 없애버렸지요” 성 회장은 기술개발에 대한 욕심이 남다르다. 어찌보면 그 욕심 때문에 「나이키」「노스페이스」 같은 유력 스포츠브랜드들이 영원무역과 10년 넘도록 거래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 결과가 히말라야 같은 극지 탐험에 쓰이는 장비를 만드는 데 쓰이는 무봉제(Construction Without Sewing) 가공 기술이다. 기술개발과 더불어 성 회장이 애착을 갖고 있는 것이 있다면 교육이다. 그는 사업 초창기부터 직원들을 교육시키는 데 열을 올렸다. 글을 모르는 직원들을 위해 사내에 공부방을 만든 것을 시작으로 지금은 인트라넷에 사이버대학을 운영하고 있기도. “지금도 가장 존경하는 분을 꼽으라면 아버님과 어머님을 포함해 선대 조상들을 꼽습니다. 그분들에게 물려받은 가장 좋은 유산이 평생을 공부해야 한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다지 풍족하지 않은 형편이었는데도 대를 이어가며 집안에 서당이 있었지요. 부모님은 사람은 항상 배우는 것을 게을리하면 안된다고 말씀 하셨습니다. 그래서 저도 회사를 학교처럼 운영해야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나이키의 경우를 보더라도 오리건주에 있는 본사를 나이키 캠퍼스라고 하지 않습니까? 학교 같은 자유로운 분위기, 공부하는 분위기의 회사를 만들고 싶은 것이지요” 역발상으로 시작한 해외 진출 지금이야 해외 공장이 없으면 생산업체로서는 살아남기 힘든 시대가 됐지만 영원무역이 해외 사업을 시작한 1980년만 하더라도 웬만한 중소기업들은 엄두도 내지 못하는 큰 일이었다. 그러나 성 회장은 창업 초기부터 해외로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 1975년 성남 공장에서 노사문제가 불거지면서 한국 봉제산업의 경쟁력이 떨어질 것을 내다봤다. 이 때부터 준비에 들어가 1980년, 방글라데시 치타공에 공장을 짓기 시작했다. “당시 세계 최빈국이었던 방글라데시에 공장을 짓는 것은 어찌 보면 무모해 보일수도 있었습니다. 정세가 불안하고 노동력의 수준도 낮았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그곳에 의류분야로는 세계에서 제일 큰 공장이 있고, 그 곳에서 가장 좋은 스포츠 브랜드의 옷들이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에게는 어렵게 보이는 곳이었지만 그곳에 기회가 있었던 것입니다” 이 얘기를 하면서 성 회장은 얼마전 에베레스트를 횡단한 산악인 박영석 씨의 경우를 예로 들었다. “박 대장은 단 1%의 가능성만 있더라도 밀어붙이는 스타일이지만 나는 99%의 가능성이 있더라도 1%의 위협요소가 있으면 그것을 해결하고 일을 진행하는 스타일입니다. 그곳에 공장을 지어 성공시킬 가능성이 낮았다면 시작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누가 보더라도 어려운 일이었지만 성 회장 눈에는 성공이 보였다. 그곳에서 뿐만 아니라 방글라데시를 토대로 전 세

김정명 기자
kjm@fi.co.kr

- Copyrights ⓒ 메이비원(주) 패션인사이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메이비원(주) | 대표:황상윤 | 개인정보보호책임자:신경식
사업자등록번호:206-81-18067  | 통신판매업신고:제2016-서울강서-0922호
TEL 02)3446-7188  |  Email : info@fi.co.kr
주소 : 서울특별시 강서구 마곡중앙8로 1길 6 (마곡동 790-8) 메이비원빌딩
Copyright 2001 FashionInsight co,.Lt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