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헤라서울패션위크의 가장 큰 성과는 디자이너들의 해외 바이어와 프레스를 통해 글로벌 시장에서의 가능성을 검증받았다는 것이다.
삭스 피프스 에비뉴, 셀프리지, 봉 마르셰, 텐꼬르소꼬모 등의 바이어는 날카로운 시선으로 국내 디자이너들의 컬렉션을 평가했다.
그들로부터 긍정적인 평가를 받은 8인의 디자이너 무대를 소개한다.
서울컬렉션 2016 S/S ①
디그낙 - 강동준 디자이너

강동준 디자이너는 이번 헤라서울패션위크에서 해외 바이어가 꼽은 베스트 디자이너의 영예를 안았다. 이렇듯 해외 바이어들에게 어필할 수 있었던 비결은 그가 한국 디자이너만이 보여줄 수 있는 전통의 미를 현대적인 감성으로 풀어냈기 때문이다.
강 디자이너는 ‘디그낙’ 2016 S/S 시즌 컬렉션을 통해 한국 디자이너로서 무의식 속에 갖고 있던 전통의 감성을 서양의 복식 기법인 테일러링에 접목해 선보이겠다고 설명했다.
그의 말 대로 ‘디그낙’의 무대는 동양과 서양, 과거와 현재가 공존했다. 날카로운 북소리가 공기 중을 가르자 그 사이로 변주된 한국 전통 가락이 흘러나왔고 그 리듬에 맞춰 서양식 상의와 한복에서 형태를 딴 바지를 한 벌로 차려입은 모델이 걸었다. 봄버재킷의 끝자락은 바짓단에 맞춰 직각으로 펼쳐졌고 대님은 허리춤에서 펄럭였다. 메쉬 소재의 상의 한 가운데와 양 어깨에는 옛 관료들의 관복에 쓰이던 흉배가 크게 자리 잡았고 셔츠의 여밈은 한복 저고리를 닮았다.
하지만 한복에서 모티브를 따왔다는 설명을 미리 듣지 않았더라면 미처 알아차리기 어려울 정도로 ‘디그낙’의 이번 컬렉션은 현대적이고도 시크했다.
서울컬렉션 2016 S/S ②
에이치에스에이치 - 한상혁 디자이너

벌써 서울컬렉션에 오른지도 꽤 됐건만 한상혁 디자이너의 컬렉션이 아직도 젊음을 유지할 수 있는 건 그가 고정관념에 얽매이지 않는 사람이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그는 이번 시즌에도 깜찍한 위트로 보는 이들을 미소 짓게 만들었다. 남성복에서 자주 사용되지 않는 핑크 컬러가 반복적으로 등장하는가 하면 쇼 중간에는 난데없이 영화 ‘스타워즈’가 나타났다.
스테이지의 벽면을 장식했던 화사한 핑크컬러는 이번 시즌의 키 컬러로 사용됐다. 단추, 허리에 감은 줄 등 작은 디테일들에 등장하는가 싶더니 어느새 톤을 달리한 핑크색들이 재킷과 스웨터, 셔츠 전체를 물들였다. 이는 젠더리스웨어를 지향하는 ‘에이치에스에이치’의 생각과도 닮아 있다.
뻔뻔하고 유유하게 런웨이를 걸어나오는 ‘스타워즈’ 캐릭터 다스베이더와 스톰트루퍼 뒤로는 이들을 모티브로 삼은 캐주얼 룩을 입은 모델들이 따라 나왔다. 이는 요즘 남성의 라이프스타일을 모두 담아내겠다는 한 디자이너의 의지가 투영된 것으로 보인다.
서울컬렉션 2016 S/S ③
칼이석태 - 이석태 디자이너

구조적 아방가르드를 추구하는 모던 컨템포러리 브랜드 ‘칼이석태’는 이번 시즌 성경 다니엘서 2장에 나오는 ‘왕의 꿈’에서 영감을 받은 컬렉션을 선보였다. 금, 은, 동으로 만든 우상이 무너져 먼지가 되어가는 장면을 컬렉션에 담아냈다.
금색, 은색, 황동색으로 이뤄진 버클이 빼곡하게 들어차 가슴을 가로지르거나 옆구리에 장식됐으며 어깨를 덮기도 했다. 이들 옷이 등장하는 동안은 삐그덕 거리는 소리와 금속이 바닥에 떨어져 부딪히는 음향을 넣어 이야기의 생동감을 더했다.
‘왕의 꿈’이 예수의 등장으로 인해 기존의 국가가 무너지고 하나님의 세상이 재창조 되었듯 ‘칼이석태’ 또한 새로운 전개로 접어들었다. 구조적인 형태와 서로 다른 형태의 믹스매치가 돋보이는 의상들이 신선함을 더했다. 가죽으로 만든 스트라이프 디테일, 메탈릭 스커트, 조개껍질의 빛을 닮은 청색 코트 등은 모델의 걸음에 따라 서로 다른 빛을 내뿜으며 또 다른 움직임을 만들어냈다.
서울컬렉션 2016 S/S ④
노케 - 정미선 디자이너

정교한 테일리렁과 예리한 커팅을 자랑하는 ‘노케’는 이번 시즌에도 역량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노케’의 무대는 시작부터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리듬이 산발적으로 흩어지자 강렬한 레드 컬러의 드레스가 어둠을 가르고 나왔다. 정미선 디자이너는 이번 시즌 삶과 존재, 카르마를 테마로 컬렉션을 선보였다고 했다. 특히 포인트 컬러로 활용한 레드 컬러는 삶에 대한 생명력과 역동성을 뜻한다고.
심플하면서도 미니멀한 디자인이 지배적이였지만 특유의 커팅이 컬렉션에 개성과 생명력을 불어넣었다. 세 네 자락으로 갈린 스커트 끝자락은 걸음 걸음에 리듬감을 부여했고 좌우 길이가 한 뼘 이상 차이나는 스커트는 직선으로 이뤄져 엣지를 더했다. 칼라 또한 다양한 형태의 커팅으로 재미를 더했다.
‘노케’의 시그니처인 가죽 또한 곳곳에서 제 역할을 해냈다. 입체감이 살아있는 가죽 스커트는 여성의 곡선을 더욱 강조하거나 스커트의 볼륨감을 더욱 살리는 데 활용됐다.
제너레이션 넥스트 2016 S/S ①
블라인드니스 - 신규용 디자이너

졸업 하자마자 브랜드를 론칭, 이제 갓 2년째에 접어든 신규용 디자이너의 컬렉션은 아직까지 날것의 냄새가 나지만 그 매력이 사람들의 이목을 끌어 당긴다.
이 때문일까. 그는 첫 컬렉션부터 상업적으로 성공해보이더니 이번 헤라서울패션위크에서는 헤라서울리스타상을 거머쥐어 명실상부 주목받는 라이징스타임을 입증해보였다.
후디에 가죽재킷을 겹쳐 입고 캡을 눌러쓴 채 슬리퍼를 끌고 나오는 모델을 시작으로 ‘블라인드니스’는 후디의 다양한 변형을 보여준다. 방수 소재의 원피스가 되었다가 포멀한 실루엣의 베스트가 되기도 한다. 또 커다란 셔츠 소매자락이 달리거나 셔츠에 모자가 달린 형태의 후디도 등장한다.
캐주얼과 포멀의 경계를 무너뜨린 이색적인 의상들은 그 뒤로도 이어진다. 여전히 슬리퍼에 캡을 눌러쓴 모델들이 품이 넓은 수트를 입고 나오고, 셔츠 위에는 샤워 가운 형태를 본 딴 아우터를 늘어뜨렸다.
이러한 모호한 장르의 벽을 넘나드는 ‘블라인드니스’의 2016 S/S 컬렉션은 신진의 경계에선 신규용 디자이너의 모습을 닮아있다.
제너레이션 넥스트 2016 S/S ②
뮌 - 한현민 디자이너

2015 S/S 제너레이션 넥스트에서 남긴 강렬한 인상 때문일까. 지난해 부재가 못내 아쉬웠던 한현민 디자이너가 다시 돌아왔다.
더욱 차분해진 컬러감 속에서도 ‘뮌’의 2016 S/S 컬렉션이 다채로워 보이는 것은 다양한 소재와 변형된 봉재 방식 때문이다. 한현민 디자이너는 테일러링을 활용해 클래식에 새로운 디테일을 적용, 익숙한 것을 ‘낯설게 보이게 하는 데’에 능하다.
이번 시즌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네이비 컬러의 스트라이프 패턴이다. 이 패턴은 베스트, 스커트, 코트 등 다양한 형태의 아이템에 반복적으로 등장한다. 클래식의 정석이라고 할 수 있는 네이비 스트라이프는 다양하고도 새로운 실루엣을 통해 새로운 생명력을 얻었다.
회화 작가 한재열과의 콜래보레이션은 컬렉션을 더욱 돋보이게 만들었다. 한현민 디자이너는 한재열 작가 특유의 강렬한 색감과 터치, 드로잉을 ‘뮌’안에 적절히 녹여냈다.
제너레이션 넥스트 2016 S/S ③
티키 - 김영균 디자이너

지난 2013년 인디브랜드페어에서 재기발랄한 컬렉션으로 패션업계에 처음 얼굴을 알린 ‘티키’가 조금씩 성장하더니 어느덧 온전한 자신만의 무대를 채워보였다.
김영균 디자이너의 장기인 비주얼 아트윅은 더욱 진화한 모습을 보였다. 초기의 컬렉션들이 직설적인 농담을 던졌다면 이제는 그 의미를 은유적으로 표현하게 됐달까. 보는 이들로 하여금 그의 의중에 대해 궁금증을 유도해낼 정도로 그는 여유를 가진 이야기꾼이 됐다.
단순한 선의 조합인가 싶었던 그래픽은 그 시작점을 따라가 보면 무장한 병사와 제트기가 드러난다. 만화 속에 등장할 법한 동글동글한 카모플라주의 사이는 체인, 콜라 등이 잇고 있다.
2016 S/S 시즌 ‘티키’는 1940~1950년대 밀리터리 룩을 브랜드 특유의 키치한 감성으로 재해석했다. 쇼 초반 그는 묵직한 아우터를 앞세움으로써 풀컬렉션이 가능한 브랜드임을 입증해보였다. 눈길을 끄는 것은 탄띠를 연상케하는 디테일들. 굵직하게 위에서 아래로 길게 늘어지는 이 끈들은 군인들의 무거운 사명감을 닮았다. 또한 과장된 어깨선과 칼라는 남성미를 더욱 부각시켰다.
제너레이션 넥스트 2016 S/S ④
블라디스 - 최무열 디자이너

최무열 디자이너. 이제 겨울 스물셋의 그는 벌써 세번째 런웨이를 해냈다. 그 누구보다 거침없이 직설적으로 자신만의 색을 표출하면서 말이다.
‘블라디스’는 이번 시즌 무정부의 혼란 상태인 ‘아나키’를 주제로 컬렉션을 선보였다. 개인에게 주어지는 억압, 통제, 감시를 거부하고 완벽한 자유를 갈망한다.
발등까지 덮을 듯한 거친 텍스처의 가죽 바지, 엉덩이 밑까지 늘어지는 소매의 재킷, 상의부터 하의까지 이어진 춤추는 다양한 굵기의 끈. 비대칭으로 컷팅된 재킷 뒤 길게 늘어져 종아리에서 발목사이에서 펄럭인다. 모두 검지만 각기 다른 형태와 질감으로 ‘블라디스’의 옷들은 저마다 다른 빛을 보여준다.
뒤이어 등장한 눈이 시린 붉은색의 옷의 행렬은 뻔한 고스룩을 기대했던 이들에게 신선한 반전을 선사한다. 최무열은 확실히 다음을 기대하게 하는 디자이너임에 틀림없다.
최은시내 기자
cesn@f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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