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유 있는 런웨이 vs 정신 없는 백스테이지

플래시 세례가 쏟아지는 런웨이에서 모델은 여유있게 포즈를 취하고 돌아섰다. 하나 같이 훤칠한 키에 하이힐까지 신어 1m 80이 훌쩍 넘는다. 이들은 들어오기 무섭게 껑충껑충 뛰면서 동시에 옷을 벗어 던진다. 팔찌, 목걸이, 모자 등 복잡한 액세서리까지 빼고 순식간에 맨몸이 된 채로 돌아와 헬퍼가 들고 있는 다음 번 옷과 바꿔 입는다. 10cm가 넘는 아찔한 굽의 신발을 앉을 새도 없이 선 채로 비틀거리며 바꿔 신는다. 옷만 입고 미처 못한 액세서리까지 착용하느라 바쁘다. 헝클어진 머리를 대충 만지며 다시 무대 쪽으로 달린다. 마지막 순간 무대에 오르기 전 거울을 보며 매무새를 점검한다. 크게 숨을 몰아 쉬고 진지한 표정으로 돌아선다. 무대 감독의 큐 사인이 떨어지자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미소를 지으며 당당하게 워킹을 시작한다.

관객이 들어서고 뜨거운 열기가 가득한 무대에서 모델과 조명, 음악이 하나가 된 듯 어우러진다. 아름답고 화려한 ‘패션쇼’가 시작되는 것이다. 그러나 우아하고 여유있는 무대의 모습과는 달리 백스테이지는 전쟁터를 방불케 한다. 디자이너의 콘셉을 보여주는 것에 있어 패션쇼만큼 효과적인 방법이 있을까. 아무리 멋진 옷이라도 이를 표현하는 모델이 없다면 무용지물이다.
금남의 지역 백스테이지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걸까. 최근 열린 코리아스타일위크 패션쇼를 통해 패션쇼의 꽃이라 불리는 모델의 진짜 세계를 살펴봤다.

화려한 무대 뒤 몇 개의 조명만으로 어두컴컴한 백스테이지의 환경은 비좁고 열악했다. 모델과 디자이너, 헤어, 메이크업, 의상 헬퍼 등 스텝과 무대 감독, 취재진 등 50여명이 넘는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옷이 잔뜩 걸려있는 행거와 헤어 메이크업 도구들이 어지럽게 펼쳐진 테이블, 소품, 액세서리로 발 디딜틈 없이 좁은 공간에서 일부는 먼저 헤어를 준비하고 한쪽에서는 메이크업 준비에 열중했다. ‘신속·정확’은 백스테이지의 기본 룰이다. 이들은 큐 시트에 따라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리허설 준비로 쿵쾅거리는 음악은 계속 흘러나오고 자연스럽게 목소리는 하이톤이 됐다.

이 날 모델들은 오후 2시에 시작될 쇼를 위해 꼭두새벽 오전 6시에 집합했다. 도착하자마자 옷을 갈아입고 1차 리허설을 했다. 무대를 점검하고 2차 리허설을 통해 동선을 체크했다. 리허설이 여러 차례 반복되면서 도중에 진행 순서가 바뀌는 경우도 많다.

오전 중 무대 리허설을 끝내고 일부 모델은 헤어 메이크업 준비를 시작했다. 식사시간은 따로 정해지지 않아서 각자 짬 날 때 먹는 식이다. 대부분 시간을 아끼기 위해 헤어를 받으면서 동시에 도시락을 먹었다. 여유 있는 베테랑들은 차례를 기다리는 동안 재잘재잘 수다를 떨며 간식을 먹기도 했다.

일손이 부족할 때는 일부 모델들이 직접 화장을 했다. 콘셉에 맞게 기본 화장을 하고 디테일한 것은 메이크업팀이 수정하는 식이다. 미리 준비가 끝난 이들은 동료와 사진을 찍으며 휴식 시간을 보냈다. 길어야 20분 남짓한 순간을 위해 10시간 가까이 준비하는 것이다. 분주한 일정 가운데 패션쇼가 끝나자 “수고하셨습니다”하는 우렁찬 인사와 서로를 격려하는 의미의 박수소리가 터져 나왔다.
Mini Interview

Q 모델에게 오해가 많아 힘들다던데?
모델이라고 하면 굉장히 화려하고 사치스러울 것이라는 선입견이 있는 것 같다. 하지만 실상은 전혀 그렇지 않다. 일 때문에 굽이 높은 구두를 신지만, 평소에는 운동화를 주로 신는다. 편하고 단순한 옷을 즐겨 입는다. 짙은 화장 때문인지 별나게 생각하는데 다들 털털하고 소박한 성격이다.
Q 모델에게 필요한 요소는?
키가 커야 하고 비율이 좋아야 한다. 많은 사람들 앞에 자신감 있는 모습으로 서야 하기 때문에 끼는 필수 요소다. 워킹이나 표정 연습 등 성실하게 노력해야 한다. 다이어트는 필수고 탄력 있는 몸매를 위해 웨이트 트레이닝도 열심히 해야 한다. 메이크업 때문에 지친 피부를 위해 피부 관리도 필요하다. 무대에서 생기는 일에 대해 순발력 있게 대처하는 눈치도 있어야 한다. 무엇보다도 오래 일하려면 자신만의 개성, 분위기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Q 모델을 꿈꾸는 이들에게 한마디
거의 10년째 모델 일을 하고 있는데 생각보다 모델들 로테이션이 빠르다. 1년에 30명 정도 신인이 나오지만 10분의 1인 3명만이 겨우 남는 식이다. 생각보다 일이 힘들어 체력적으로 버티지 못하는 이들이 많다. 백조가 겉보기에 우아하지만 물 밑에서 쉼 없이 발을 움직이고 있는 것을 생각하면 된다. 하이힐 때문에 발목이나 허리 등을 자주 다치고 늘 아프다. 고통과 기다림을 이겨내고 노력한 끈기 있는 이들이 멋진 모델로 남는 것 같다.
정민경 기자
jmk@f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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