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황의 여파는 디자이너 브랜드들에게도 예외가 아니다. 소위 톱 디자이너라 불리는 디자이너들조차 ‘창고 대방출’이라는 전단지를 돌리며 30~90% 세일을 실시하고 있으니 나머지 디자이너들이야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는 않을 것이다. 특히 젊은 신인 디자이너들의 경우는 매장은 고사하고 스튜디오를 운영하기에도 벅찬 실정이다. 신사동 가로수길을 ‘젊은 디자이너의 요람’이라고 말하지만 고객의 발길이 뜸한 그곳에서 제2의 강진영이 나오길 기다리는 것은 ‘감나무 밑에서 감 떨어지기를 기다리는 것’과 같을 것이다. 한국 패션의 미래를 짊어질 동냥으로 칭송받던 디자이너들이 하나둘 내셔널 브랜드나 디자이너 부띠끄로 들어가 후일을 기약하고 있다. 하지만 요즘 같은 경기라면 그 미래조차 불투명한 상태다.
오는 11월이면 국내의 내로라하는 디자이너와 신인 디자이너 58명이 서울 한복판에서 패션쇼 잔치를 벌인다. 하지만 패션계 일각에서는 그 잔치를 ‘쇼쇼쇼’일 뿐이라고 평가절하한다. 또한 디자이너 브랜드의 유력한(?) 바이어들인 백화점 담당자들조차 그 ‘쇼쇼쇼’에 무관심하기만 하다. ‘메이드인 코리아’ 패션 디자이너들에게 비상구는 없는 것인가? 그 해답을 취재했다.
디자이너 부띠끄 전성시대
1970년대, 졸업과 입학 시즌이면 엄마 손을 잡고 명동의 양장점을 찾는 여고 졸업생으로 명동의 디자이너 부띠끄(양장점)은 문전성시를 이루었다. 당시 양장점에서 맞추는 옷 한 벌은 요즘처럼 단순한 쇼핑이 아니었다. 큰 맘 먹고 엄마가 맞춰준 투피스 정장은 최고의 외출복이자 명절이나 특별한 날에만 입는 것이었다.
3월이면 일간지나 TV 할 것 없이 명동의 거리 패션을 취재해 봄이 왔음을 알려줄 정도로 1970년대 명동은 멋쟁이들로 넘치는 국내 최고의 쇼핑 거리였다. 요즘 톱 디자이너로 불리는 이신우, 진태옥, 박항치, 트로아조 등의 1세대 디자이너들이 바로 70년대 명동이나 이대 앞을 배경으로 성공한 디자이너들이다. 스파(SFAA)의 중견 디자이너 김동순이 이화여대 재학 시절, 진태옥의 이대 앞 매장에서 옷을 맞춰 입었고, 김동순의 딸 송자인이 이대를 나와 현재 스파 디자이너로 활동하고 있어 스파의 경우 디자이너 3대가 함께 활동하고 있는 셈이다.
한편, 1980년대에는 중앙디자인그룹(JDG) 콘테스트 입상자들인 김동순, 박윤수, 이상봉, 김철웅 등 2세대 디자이너들은 청담동과 압구정동 등 강남이 명동을 대체하는 패션 거리로 재편되는 시기에 보금자리를 청담동으로 옮겨 이미 자리를 잡은 박항치, 설윤형과 같은 1세대 디자이너들과 함께 ‘그들만의 리그’를 열었다. 변변한 여성복 브랜드도 없었고 수입 브랜드 없던 1980년대에, 디자이너 부띠끄는 여대생들에게 최고의 브랜드였다.
그러나 1990년대 초중반 데무, 텔레그라프, 타임, 마인, 미샤, 오브제, 옴스크 등 과 같은 디자이너 캐릭터 브랜드들이 여성복 시장을 점유하면서 디자이너 브랜드들은 위기를 맞이하게 된다. 여기에 1996년부터 수입 브랜드 시장이 열리면서 국내 디자이너 브랜드들은 수입 명품 브랜드와 디자이너 캐릭터 감성의 여성복 캐주얼 브랜드의 샌드위치 공세에 시달리게 되었고, 그 여진은 아직까지도 계속되고 있다. 아이러니컬한 것은 IMF 당시, 디자이너 브랜드였던 안지희는 안지크라는 여성복 브랜드로 변신해 요즘 침체기에 빠진 여성복 시장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러한 디자이너 브랜드로 침몰의 최대 피해자는 바로 신예 디자이너들. 만들면 팔리던 생산자 중심의 시대에 호황을 누렸던 1, 2세대 디자이너들과는 달리 소비자 중심의 시대에 생존해야 하는 젊은 디자이너들이 가야 할 길은 그야말로 첩첩산중. 수입 브랜드와의 대결은 고사하고 당장 압구정동에 매장 하나 내기도 벅차다. 비싼 임대료 때문에 신사동 가로수길에 작은 부띠끄라도 내보지만 매출이 여의치 않다. 어느새 신사동 가로수길은 젊은 디자이너들의 거리가 아닌 장렬히 산화(?)한 젊은 디자이너들의 무덤으로 변하고 있다.
서울 컬렉션 무용론
1년에 두 번 패션 디자이너들은 컬렉션이라 불리는 정기 패션쇼를 개최한다. 1980년대 중반, 동경 컬렉션에 이은 세계 6대 컬렉션 이라는 목표 아래 태어난 서울패션위크에서 갈라쇼 형식의 패션쇼를 선보인 이후 1년에 두 번씩 열리는 정기적인 패션쇼의 시작은 SFAA 컬렉션이었다. 1980년대 말 동경 컬렉션을 참관한 뒤 충격을 받은 디자이너 진태옥, 박윤수, 박항치 등은 귀국하자마자 SFAA라는 디자이너 그룹을 결성하고 이듬해부터 1년에 두 번씩 패션 쇼를 열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1990년대 중반 들어 우영미, 이경원, 박은경 등 대학에서 패션을 전공한 이들이 뉴웨이브인서울(NWS)이라는 젊은 디자이너 그룹을 결성해 문화체육관과 전쟁기념관과
유재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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