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남동 ‘길종상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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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T PLACE - '88만원 세대'의 향수를 부르는 곳

2012-11-02 오전 11:34:11

 



한남동 이슬람 사원에서 도깨비 시장까지, 굽은 골목 입구를 3~4개 지나자 ‘길종상가’라고 적힌 투박한 간판 하나가 눈에 띄었다. 가까이 다가가 빼꼼 쇼윈도 너머를 살폈다. ‘철물점인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허름한 외관과 달리 안에는 아기자기한 소품들이 가득했다.


작은 화단을 조성한 미니 화분부터 제 멋대로 놓여진 파라솔과 플라스틱 의자, 널찍한 탁자 위의 알록달록한 미니어처, 초등학교 교실에서나 볼 법한 통일 포스터까지. 매장의 소소한 볼거리들은 ‘응답하라! 90년대’를 외치듯, 복고풍의 향수를 강하게 불러왔다.


여기 저기 둘러봐도 분명 상점은 하나뿐인데, 간판엔 떡 하니 ‘상가’라고 적혀 있다. 의아해 하던 차에 길종상가의 관리인, 박길종(30)씨가 수줍은 미소로 취재진을 맞았다.
“가게 이름만 보고 이 건물이 제 소유인줄 아시는 분들도 있어요. 하지만 아쉽게도 길종상가는 10 평 남짓한 이 공간이 전부랍니다. ‘상가’가 꼭 다점포로 구성된 건물이어야 한다는 법은 없잖아요.”


길종상가에는 ‘한다 목공소’, ‘판다 화랑’, ‘밝다 조명’, ‘있다 만물상’, ‘꿰다 직물점’, ‘걷다 사진관’ 등 7개 업체가 입점해 있다. 물론 이들은 정식 상가임대차계약을 맺은 것도, 점포 형태의 매장을 구성한 것도 아니다.


그러나 각각의 업체들은 꿋꿋한 청년 CEO들이 꾸려나가는 엄연한 독립 회사다.
박길종씨는 길종상가 관리사무소를 맡아 상가의 전반적인 운영을 담당한다. 동시에 ‘한다 목공소’의 주인장도 겸하고 있다. 그는 ‘박가공’이라는 범상치 않은 닉네임처럼 독특한 가구를 뚝딱 만들어낸다. 가구 제작을 ‘어깨 넘어로 배웠다’는 그는 발상 자체가 남다르다. 그의 가구는 결코 정형화되는 법이 없다. 엉뚱하다 못해 상식을 뛰어 넘는다.



가게 전면에 자리 잡은 ‘목마 위 얹어진 책장’은 그의 대표적인 작품. 흔들리는 목마 위에 누가 책장을 올릴 생각을 할 수 있을까. 세상의 ‘걸 수 있는 거리’는 죄다 걸도록 만든 병풍형 가구도 독특하다. 이름마저 ‘걸이 거리다’이다.


길종상가에서는 ‘낡은 것’의 가치가 느껴진다. 매장 한 켠의 오래된 LP판과 CD, 길종상가 관리실에서 직접 사입한 프랑스 빈티지 원피스, 박씨가 초등학생 때 그린 수채화, ‘있다 만물상’의 오목 렌즈, 만화경, 오재미, 3단 꽃무늬 도시락 등. 2030 세대들이 물어물어 길종상가를 찾아 오는 이유기도 하다.
‘간다 인력사무소’를 통해 직업학교 프로그램도 운영 중인 박씨는 취업난을 겪는 청춘들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던진다.


그는 “우리가 가르쳤던 그림이나 실 공예가 실제 구직 활동엔 별 도움이 안 될지도 모른다. 그러나 번듯한 회사에 들어가는 길만이 인생의 정답이 아니라는 것을 알리고 싶다”고 말한다. 오늘도 ‘88만원 세대’의 안식처, 길종상가에는 청춘들의 발걸음이 끊이질 않는다.



Interview with 박길종 길종상가 운영자


-가구 제작은 언제부터?
“대학에서 미술을 전공하다 우연히 DIY 목공소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다. ‘서당개 3년이면 풍월을 읊는다’고 1년간 잡부처럼 일하다 보니 어느새 기본적인 기술을 익히게 됐다.”


-디자인 영감은 어디서 얻나?
“이 근방은 보다시피 조금 촌스럽지만 운치 있는 동네다. 주변 주택가에선 할아버지들이 내다버린 가구를 개조해 사용하는 모습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그들이 독특하게 리폼한 가구들을 보면 불현듯 아이디어가 떠오른다.”


-‘한다 목공소’의 주문 방식은?
“모든 가구는 철저히 오더 메이드로 제작된다. 주문이 들어오면 우선 가구가 놓일 공간을 방문한다. 가구의 위치, 공간 사이즈, 주변 분위기, 소비자 성향 등을 고려해 디자인과 생산을 시작한다.


-프로그램도 진행한다던데?
“매회 다른 유형으로 진행되는 직업학교 프로그램이 3회째 이어지고 있다. 지난달에는 실을 이용해 패브릭, 가방 등을 만드는 ‘실로몬’ 강습 교실을 열었다. 1회는 ‘판다 화랑’의 송화백과 함께하는 그림 교실, 2회는 가구 미니어처를 만드는 ‘우드 아닌 우드락’을 진행했다.


-향후 계획은?
“최근 막을 내린 문화역 서울 284의 ‘인생사용법’처럼 앞으로도 전시 행사에 지속적으로 참가할 계획이다. 10일에는 『에이랜드』 홍대점에서 팝업 스토어를 진행한다.” 



김하나 기자
khn@f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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