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국적 기업과의 분쟁 “정부가 나서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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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오롱-듀폰 기술침해 소송 천문학적 배상에 업계 경악

2012-09-10 오전 10:12:43



“정부 차원 ‘특허분쟁위’ 구성 적극 대응해야” 한 목소리


코오롱인더스트리(이하 코오롱)와 듀폰의 ‘아라미드(고강도 첨단섬유)’ 소송이 국내는 물론 전 세계 섬유업계를 발칵 뒤집어 놓았다.


미국 버지니아 지방법원이 1조원에 이르는 천문학적 숫자의 손해배상을 판결한데 이어  향후 20년간 아라미드 섬유의 생산·판매를 금지하는 등 황당 판결을 내렸기 때문이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지난 9월 4일에는 듀폰에 코오롱 자체 전산망 접근을 허락하는 등 전례가 없는 배타적인 명령을 내린 사실이 추가로 밝혀져 충격을 더해준다. 코오롱과 듀폰 간 불거진 소송에 대해 심층 취재했다.


미국 버지니아 지방법원은 지난해 11월 양사 간 기술침해 소송에서 듀폰의 손을 들어주며 코오롱에 약 1조원 규모의 손해배상 판결을 내린데 이어, 8월 30일(이하 미국 현지 시각)에는 “앞으로 20년 동안 아라미드 섬유 제품인 '헤라크론'을 생산·판매할 수 없다”고 판결했다.


코오롱은 그 이튿날 생산·판매 금지 명령에 대한 집행정지 긴급신청을 제출했고, 상급 법원인 미국 연방항소법원이 이를 승인함에 따라 공장 가동을 멈춘 지 하루 만에 생산을 재개했다. 하지만 억울함은 가라앉지 않고 있다.


코오롱 관계자는 “항소법원이 집행정지 긴급신청을 받아들인 것은 아라미드 섬유의 생산·판매를 즉시 금지한다는 1심 법원의 판결이 불합리하다는 것을 입증한 것”이라며 “이제 본격적으로 개시될 항소심에서는 1심의 부당한 결과를 바로 잡을 수 있는 충분한 근거를 가지고 있다”고 자신감을 보였다.


앞서 지난해 11월엔 코오롱이 듀폰의 영업 비밀을 침해했다면서 코오롱이 과거 5년간 미국에 수출한 액수의 300배가 넘는 9억 2000만 달러(약 1조원) 배상 판결을 내린 바 있다.


아라미드 섬유는 방탄복·광 케이블·타이어 보강재 등에 쓰이는 첨단 화학섬유로 코오롱이 26년간 연구 끝에 2005년 상업 생산에 성공했다. 하지만 듀폰은 코오롱이 전직 듀폰 직원들과 컨설팅 계약을 맺고 듀폰이 1971년 세계 최초로 개발한 아라미드 섬유의 영업 비밀을 빼내갔다며 소송을 제기했다.



◇ 美 법원, 1조원 손해 배상·20년간 판금 명령
이번 재판 역시 최근 벌어진 삼성전자-애플 간 특허소송 재판처럼 개운치 않은 뒷맛을 남겼다. 코오롱 측은 재판장이 과거 듀폰과 밀접한 업무 관계가 있었다는 이유를 들어 교체를 요청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를 두고 업계에서는 “애플-삼성전자의 특허소송과 마찬가지로 미국 지방법원과 배심원들이 보호주의에 사로잡혀 자국 기업에 지나치게 유리한 결정을 내리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코오롱은 9월 4일 항소절차에 착수했다. 1심 법원에서 손해배상액과 생산 금지 등 핵심 쟁점에 대한 판결이 내려졌다는 판단에서다. 코오롱은 “1심 재판에서 있었던 1조원의 배상금과 20년간 생산·판매 금지 판결은 그 동안 재판 과정에서 코오롱이 주장하는 증거들이 충분히 심리되지 않은 결과”라며 “항소심에서 보다 공정하고 합당한 판결이 내려질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코오롱이 내세운 항소 근거는 △듀폰이 영업 비밀이라고 주장하지만 이를 입증할 만한 증거가 부족하다는 점 △1심에서 코오롱에 결정적으로 유리한 증거들이 배제된 점 △잘못된 이론에 근거한 천문학적 손해배상액 산정 등이다.


코오롱인더스트리의 지난해 매출은 4조원 대가 넘는다. 이 중 아라미드 매출은 900억원 정도. 이 가운데 미국 시장에서의 아라미드 관련 매출은 33억원 수준으로 극히 미미하다. 시장 점유율도 비교가 안 된다. 세계 아라미드 섬유 시장에서 듀폰이 46%, 데이진이 44%로 양분하고 있는 가운데 코오롱은 겨우 7% 수준에 머물고 있다.


따라서 이번 소송은 가장 빨리 추격해오는 코오롱을 시장에서 원천적으로 몰아내겠다는 끝장 게임으로 보는 게 옳다.


◇ '자국 기업 밥그릇 지키기’ 비난 여론 비등
그 결과 국내외 여론은 미국 법원이 지나치게 자국 기업의 ‘밥그릇 지키기’에만 급급한 게 아니냐며 비난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이런 가운데 최근 공정거래위원회가 듀폰이 포함된 다국적기업 화학 분야의 특허권 남용 조사에 속도를 내겠다고 밝혀 눈길을 끈다. 공정위는 지난해부터 벌여온 직권조사를 올해 안에 마무리 짓겠다는 방침을 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앞서 공정위는 2년 전 듀폰 한국법인을 시장 지배력 남용 혐의로 조사를 벌인 바 있다.


업계 관계자는 “보호무역이 확산되면서 세계 각국이 무역규제를 강화함에 따라 앞으로 외국 기업과의 특허 분쟁이나 기술침해소송이 더 빈번하게 발생할 소지가 크다”면서 “국부 유출을 막는다는 측면에서라도 이 같은 거대 소송을 일개 기업에만 맡길 게 아니라 정부 차원의 ‘특허분쟁위원회’를 만들어 외교력까지 총동원해 적극적으로 대응해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김우현 기자
whk@f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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