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핸드백 아카이브의 탄생
패션은 그 자체가 삶과 예술, 생산과 소비, 개인의 취향과 집단적 소비행동을 연결하는 진화하는 삶의 현장이다. 디자인은 인간이 가진 시각적 규칙의 코드를 수정하는 행위다. 코드란 결국 오랜 역사성을 갖고 응결된 문화적 관습이다. 패션의 미래는 인간의 시각적 규칙을 이해할 수 있는 전범에서 캐낸 기호(sign)들을 해체(de)하고 재조립하는 과거의 재구성에 있다. 이러한 작업을 위해 필요한 것이 패션 아카이브다. 문화부를 중심으로 패션 뮤지엄 설립문제가 대두되는 것도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다.

최근 개관한 시몬느 핸드백 뮤지엄은 세계 최초의 핸드백 테마 박물관이다. 전 세계 럭셔리, 디자이너 라인 핸드백 시장의 주역인 기업 시몬느가 3년여 시간에 걸쳐, 런던 컬리지 오브 패션의 패션 큐레이션학과 교수인 주디스 클락과 함께 각국 컬렉터나 소더비와 같은 경매를 통해 수집한 350여 점의 핸드백을 한 곳에 모아 선보인 것이다. 핸드백 컬렉션은16세기부터 현재까지의 역사를 아우른다. 3층은 20세기에서 21세기까지의 현대 핸드백 디자인의 진화과정을 돋을새김한 현대관이, 4층은 16 세기부터 19세기에 이르는 역사적 핸드백 유물을 소개하는 역사관이 들어섰다. 소장품의 품질과 체계적인 정리도 네덜란드 암스텔담의 가방 & 지갑 뮤지엄(Museum of Bags and Purses) 보다 훨씬 뛰어나다. 뮤지엄이 위치한 건물 백 스테이지(Bagstage)의 의미도 남다르다. 인생의 무대를 빛내는 오브제로서의 핸드백이 만들어지는 뒤편 무대의 과정을 선보인다는 뜻이다. 패션은 인간의 인상을 관리하는 마법의 도구함이 아니던가. 뮤지엄 내 핸드백을 자체 제작해볼 수 있는 공방설치도 인상 깊다.

◇영감을 백업(Bag-up)하다
시몬느 핸드백 뮤지엄의 개관은 제대로 된 패션 박물관 하나 갖고 있지 못한 우리 사회에 많은 것을 시사해준다. 글로벌 경제의 엔진이 동양으로 이전되는 요즘, 서구의 디자이너들이 하나같이 영감을 위해 동양의 선을 찾고 있다. 마찬가지로 우리 또한 서구 시장의 장벽을 넘기 위해 그들의 관점과 장인의식을 다시 한번 성찰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 패션 뮤지엄은 소장한 유물을 통해, 당대의 물질문화를 연구하고 이를 통해 현대라는 시대를 읽는다.

F.I.T 패션 뮤지엄의 수석 큐레이터 발레리 스틸은 『패션 박물관은 거대한 옷장 그 이상의 것』에서 “많은 학자들이 지식의 창조과정에서 오브제의 역할을 무시한다. 심지어 패션사를 연구하는 학자들조차 실물 의상을 검증하고 연구하는데 시간을 쓰지 않는다. 문서자료나 시각적 재현물을 선호한다. 그러나 패션사의 연구방법론 중 여전히 가장 중요한 것은 오브제의 해석이다. 문헌연구에 매달리는 방법론과 달리 패션 연구는 유물기반 연구(Object-based Research)가 중심이 되어야 한다. 패션의 역사적-미학적 특질에 대해 통찰력을 갖고 볼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주기 때문이다”라고 주장한다. 아카이브의 탄생은 그 자체로 우리 사회 내부의 패션에 관한 관점들이 더욱 무르익을 수 있는 가능성을 잉태한다.

시몬느 뮤지엄을 지은 박은관 회장은 "핸드백 박물관이 이곳을 찾는 핸드백 디자이너들에게 영감을 주는 장소, 무엇보다 가방의 역사와 미학에 대해 쇼핑을 하고 담아갈 수 있는 가방 같은 장소가 되길 바란다"고 한다. 참 가슴에 와닿는 말이다. 아카이브가 있다는 것은 역사의 무늬 속에 아로새겨진 당대의 미적 기준을 우리 스스로 익히고 재구성할 수 있는 지점이 생긴다는 뜻이다. 핸드백 박물관은 핸드백이라는 패션 유물을 통해 디자인의 역사를 연구하고 현대적 재창조를 위한 영감을 얻는 도약대가 된다. 이곳에서 디자이너들은 영감이 가득 담긴 상상력을 가방에 채워 들고 나갈 것이다. 말 그대로 백업(Bag-up)이다.
김홍기 패션 큐레이터
film-art@hanmail.net
- Copyrights ⓒ 메이비원(주) 패션인사이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