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융합이 시대적 화두가 된 지 오래다. 하지만 우리는 ‘융합’을 어느 수준으로 이해하고 있을까? 사실 융합은 패션보다 IT 업계에서 더 흔히 사용되고 있는 개념이다. 융합이라는 단어의 영어 표현으로 컨버전스(convergence)가 가장 익숙한 것도 이 때문이다. 하지만 예술, 문화, 그리고 디자인과 피를 나눈 패션 업계는 융합을 다른 관점으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 브랜드·마케팅 전문지 유니타스브랜드가 오는 25일부터 27일까지 3일간(전시회는 28일까지), 홍익대학교에서 프랑스 태생의 충돌과 융합의 창조적 디자이너 *‘쟝 샤를 드 까스텔바작(이하 ‘까스텔바작’)’의 강연과 전시회를 포함한 융합 컨퍼런스를 주관한다. 지식경제부, 한국디자인진흥원, 홍익대학교 국제디자인전문대학원 주최로 열리는 이번 행사는 ‘융합을 통한 브랜드 성장 코드’를 짚어내는 현장이 될 것이다.
까스텔바작에게 배우는 패션의 융합 코드
융합이란 화두를 두고서는 까스텔바작을 눈 여겨 볼 필요가 있다. 그의 작품에는 이질적 요소의 충돌의 결과물이 빚어낸 ‘아름다움’이 있기 때문이다. 사실 (토마스 아퀴나스의 말을 빌어) “보기에 즐거운 것이 아름다운 것”이라면, 까스텔바작의 작품은 그 기준과는 거리가 멀다.
그의 컬렉션을 보면 이해하기 힘든 수준이 아니라 난해하다. 조화보다는 파괴, 원형보다는 기형, 그리고
전일성보다는 특이성에 가깝기 때문이다. 그야말로 이해할 수 없어서 느낄 수 없는 것들이 더 많다.
하지만 신기한 것은 그가 30년 전에 만든 옷을 보면 난해함이 아니라 놀라움을 발견할 수 있다. 거기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는데, 첫째는 30년 전에 만들었음에도 불구하고 현재에도 그 옷을 입기에 충분할 뿐만 아니라 아름답기까지 하기 때문이고, 둘째는 지금 패션계에서 이슈가 되고 있는 혁신적 콘셉들은 이미 그가 수십 년 전부터 해온 임상실험과 유사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지금은 이해하기 힘든 그의 작품에서 30년 후의 디자인을 엿볼 수 있지 않을까?
무엇이 그를 창조적 융합 디자이너로 만들었는가
패션 디자이너로서뿐만 아니라 소설가, 작사가, 설치 예술가, 무대감독, 뮤지컬 디렉터 등으로도 활동하는 그의 창조 영역의 다양성이 그가 그런 코드를 갖게 된 이유 중 하나일 것이다.
뿐만 아니라 그의 젊은 시절도 그가 융합적 사고를 하는데 한 몫 했다. 20대 시절 그는 자신의 아파트에서 수많은 사람들을 불러 함께 생활하였는데, 섹스 피스톨즈(Sex Pistols)의 매니저인 말콤 맥라렌(Malcolm McLaren), 배우 데이비드 요한센(David Johansen), 기타리스트 실 실베인(Syl Sylvain) 등을 비롯하여, 실험적인 예술가 키스 해링(Keith Haring), 패션 디자이너 비비안 웨스트우드(Vivien Westwood), 천재적인 팝 아트 예술가 장 미쉘 바스키아(Jean-Michel Basquiat), 그리고 사진작가 로버트 메이플소프(Robert Mapplethorpe) 등 수많은 예술가들이 그들이다.
다양한 사람들이 한 곳에 모여 살며 실시간으로 생각의 충돌을 즐겼던 것이 결국 늘 새롭고 독특한 것을 추구하는 까스텔바작에게 중요한 창조 에너지 원동력이 되었다.
이질적인 것을 연결하는 창조성
이런 그를 보면 ‘없던 것을 만드는 창조자’라기 보다 어떤 대상과 개념의 원형적 가치를 연결해 ‘융합해내는 창조성’에 골몰해 왔음을 알 수 있다. 지난 40여 년간 이런 행보를 보인 그의 별명이 크리에디터(Cre-Editor, Creator + Editor)인 이유가 이것이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는 창조성 자체를 목적에 두지 않는다. 진짜(?) 목적은 까스텔바작과의 인터뷰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창조적 파괴와 결합은 ‘수단’에 불과하다. 나의 목표는 ‘인간’ 자체에 대한 연구에서 얻은 결과물을 패션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그런 목적에서라면 두 개의 이질적 요소가 서로 충돌하더라도 그것은 분명 인간에게 이로운 것이며 심지어 전혀 ‘새로운’ 에너지를 만들어 내기도 한다. 단순히 새로운 것은 ‘다른 것’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단순히 다른 것 말고 혁신적인 것
사실 ‘다른 것’을 만드는 것도 쉽지는 않다. 언제부턴가 패션은 융합 대신에 트렌드(trend)라는 명목 아래, 비슷한 스타일, 비슷한 디자인, 비슷한 컬러링을 추종하고 서로가 서로를 모방하며 ‘통합’되고 있지 않은가.
거기에 소위 떴다(?)하는 경쟁 브랜드의 히트 아이템은 그 통합의 속도를 높인다. 모두가 가는 안전한 길을 가려는 셈이다. 하지만 그 안전한(안전해 보이는) 길의 끝은 어떠한지 그간의 경험을 통해 알고 있다.
혁신적이고 창조적인 시장 선도자에 의한 전복이 그것이다. 트렌드가 아닌 트랜스(trans, 초월, 변화의 접두어)를 고민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혁신적이고 창조적인 트렌스를 만드는 데 근간이 되는 융합을 이해해야 하는 이유는 지금이 바로 Trend로 인한 ‘모방 통합’이 아닌 Trans로 인한 ‘창조 융합’이 필요한 위기의 순간이기 때문이다.
융합은 공정이 아니라 결과물
융합이 시대적 키워드가 되면서 기업은 늘 이런 조언을 들어왔다. “CEO와 CDO, 기획자와 개발자, 디자이너와 생산자…. 어찌되었건 양 극단에 있는 사람들을 많이 만나게 해야 한다”는 맥락이다. 물론 옳다. 하지만 아직 그 공정의 구체적인 실체가 없다. 스티브 잡스가 ‘인문학과 과학 기술의 교차점’에서 발견했다던 아이폰처럼, 이제 융합은 공정이 아니라 ‘결과물’로 보여져야 한다.
그런데 패션만큼 융합의 총아이자 그것 그대로가 결과물인 것이 있을까? 문화, 예술, 트렌드 등 다양한 요소의 융합의 실체가 디자인으로, 소재로, 컬러로 표현되기 때문이다. 패션은 태생적으로 융합에 의해 잉태된 셈이다. 하지만 이것이 단순한 혼합(mix)으로 인한 변종으로 끝나지 않으려면 패션은 ‘문화와 브랜딩의 교차점’에 서 있어야 한다. 그 교차점에서만이 신시장을 창조하는 혁신적 브랜드가 탄생될 테니까. ‘융합’은 이제 우리 모두의 숙제다.
융합을 통한 신시장 창조
많은 수의 명품 브랜드들이 천재적 디자이너 발굴, 혹은 그들과의 협업에 열을 올린다. 그들을 매체에 노출시키고 연예인들과의 만남을 주선해 소위, 미디어 스타로 만들고 그들의 트렌디한 이미지를 자신의 브랜드와 이른바 ‘우성’ 결합 시키기 위함이다.
디자이너들의 작품성보다는 미디어 친화력이 상품성을 높일 것이라는 기대감 때문이다. 하지만 기억해야 할 것은 소위, 스타 마케팅의 생명력이다.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성공 사례보다는 실패한 사례가 수백 배는 많다는 것 또한 잊지 말아야 한다. ‘결합’의 지속력은 ‘융합’의 그것보다 현저히 짧다.
진정한 융합은 새로운 기호와 상징을 만들어 내는데 있다. 교황에서부터 레이디 가가까지 입을 수 있는 디자인 스펙트럼을 지닌 까스텔바작의 작품에 주목하는 것은 그 시작이 양립되는 극점들로부터 탄생되었기 때문이다.
이번 컨퍼런스와 전시회는 시간과 시간이 충돌하고, 아이디어와 아이디어가 충돌하고, 그리고 상품과 상품이 충돌해 미래가 현재가 되고 현재가 미래가 되는 현장을 눈과 몸으로 직접 체험해 보는 시간이 될 것이다. 이색적인 컨퍼런스와 전시회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labs.unitsbrand.com에서 확인 가능하다.
윤현식 기자
- Copyrights ⓒ 메이비원(주) 패션인사이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