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랜드 아이덴티티는 스토리로부터 나온다
2019-10-15박진아 IT 칼럼니스트 
주소비군 MZ세대의 취향 및 소비행태 파악해야


오늘날 패션은 식생활, 뷰티 및 스킨케어, 비디오 게임과 더불어 현대인들의 최신 라이프스타일이 응축된 리테일 산업 4대 핵심 축의 하나다. 해마다 서서히 감소하는 베이비부머 세대를 대체하며 막강한 소비자군으로 부상한 밀레니얼과 Z 세대 인구가 소비시장에 가세하면서 패션시장은 스트리트 웨어 붐과 애슬레저 시장의 절정기를 맞고 있다.


최근 모건스탠리 투자은행이 발표한 수치에 따르면, 지난 7년 사이 스트리트와 애슬레저 패션시장은 42% 성장했으며 이 추세는 2020년까지 계속되어 30% 추가 성장을 이룰 것으로 기대된다. 스트리트 웨어와 애슬레저의 호황은 돌고 도는 패션계 유행과 맞물려 순환한다.


다만 21세기 통신기술의 눈부신 발전과 개인용 모바일 디바이스의 보편화로 인해서 유행 순환 주기도 빨라질 뿐이다. 특히 지금은 지난 20여년 간 하락세에 접어들어 잊혀져 가던 1990년대 스트리트 웨어의 르네상스 시대다.


투자은행 제프리 파이퍼의 조사 분석에 따르면, 1970~80년대 캘리포니아 해변과 서핑 문화를 패션으로 소화한 브랜드들의 컴백을 주목했다.


‘반스(Vans)’ 비치와 서핑 기어, 한정판매와 드롭 마케팅으로 실질 소비자 가격이 럭셔리 급으로 치솟은 ‘슈프림(Supreme)’과 ‘팔라스(Palace Skateboards)’까지 스트리트 패션은 MZ 세대가 열광하는 브랜드로 화려하게 되돌아왔다. ‘챔피온’ ‘아디다스’ ‘타미힐피거’ 등 캐주얼 라인도 지난 몇 해 부진을 딛고 매출이 반등하는 추세다.


1990년대 중엽 잊혀지던 서핑문화를 향한 향수를 영감으로 삼아 탄생해 오늘날 럭셔리 브랜드 대열에 선 ‘슈프림’의 명성은 익히 잘 알려져 있다. 힙합 뮤직과 패션을 접목한 ‘슈프림’의 대중적 성공의 물결을 타고 뒤따라서 ‘스투시(1991년 뉴욕 설립)’ ‘베이프(1993년 도쿄 설립)’ ‘오베이(2001년 캘리포니아 설립)’ ‘팔라스(2009년 런던 설립)’가 탄생했다.


모두 브랜드 설립 당시 하위 청년문화와 라이프스타일을 내세운 니치(niche, 틈새 상품) 브랜드로 출발했다가 최근 글로벌 브랜드로 급성장한 경우다.


‘스투시 X 베이프’ 워크웨어 컬렉션


◇ 소비자는 브랜드 스토리를 산다


복고를 통해 전에 없던 새로운 스타일을 만드는 ‘뉴트로’ 또는 ‘모던 레트로(Modern Retro)’ 트렌드를 주도하는 소비자는 밀레니얼과 Z세대다. 이미 전세계 인구의 32%를 차지하며 조만간 밀레니얼 인구를 추월할 것이란 예측 하에 특히 패션시장이 눈여겨 보는 소비자군은 Z세대다. 이 세대들이 갈구하는 뉴트로 현상은 태어나기 전인 1970~80년대 살아보지 못한 흘러간 시절에 대한 막연한 향수와 1990년대 어린 시절 경험했던 어렴풋한 기억이 현대적 디지털 문화가 융합돼 탄생한 새로운 스타일이다.


MZ 세대는 과거와 현재를 결합해 ‘행복’과 ‘안정’을 선사하는 제품을 구입하고 소비함으로써 ‘위안’을 찾는 소비자군이다. 그러기 위해서 브랜드는 기억될 만한 ‘브랜드 스토리’를 소비자에게 전달해야 한다. 실제로 글로벌에서 성공가도를 달리고 있는 스트리트 브랜드들은 ‘스토리’의 위력을 십분 활용하고 있다.


예컨대 ‘오베이’는 2000년 거리낙서가 셰퍼드 페어리(Shepard Fairey)의 꾸준한 DIY 디자인 작업 끝에 매 시즌 신상품이 탄생된다는 제품 배경 스토리를 소비자와 일관적으로 소통한다. 창업자 겸 디자이너인 페어리가 디자인한 거인 안드레(Andre the Giant) 라인은 ‘현상학이란 스스로 드러내 보이는 과정’이라고 말한 철학자 하이데거를 인용해 ‘거인에게 복종하라’라는 메시지를 전달한다. 이는 즉 우리의 목적과 환경을 관찰하고 반응하는 소비자가 되라는 것이다. 이듬해인 2001년부터 거인 안드레의 얼굴 로고를 재디자인하면서 ‘오베이’ 시그니처 라인인 밀리터리룩과 워크웨어 라인이 주목받기 시작했다.


1980년대 초반 수제 서핑보드와 힙합 의류를 판매하던 ‘스투시’는 오늘날 연 매출액 5000만 달러(한화 약 600억원)의 글로벌 스트리트 웨어 아이콘이 됐다. 1960~70년대에 펑크&뉴웨이브 음악을 들으면서 직접 손수 서핑보드와 스케이트보드를 제작하고 T-셔츠를 인쇄해 팔며 사업을 시작했던 숀 스투시 창업자 개인을 향한 캐릭터 숭배에 기반해 있다.


도쿄 하라주쿠 패션가에서 1993년 미국 스트리트 웨어와 일본식 캐주얼을 결합해 대중음악과 접목시켜 창업한 ‘베이프’는 4인의 일본 패션 예술가가 저예산, 한정수량 판매, 짝퉁 논란, 부도, 매각까지 온갖 창조적·비즈니적 역경을 딛고 생존해온 스토리로 오늘날 희소 가치를 누리는 패션 브랜드가 됐다. 지난 37년 동안 주로 일본 시장을 배경으로 주류 패션 트렌드나 매출에 연연치 않고 꾸준히 고집해온 고수요-저공급 유통 전략은 오늘날 한정수량-리세일 마케팅 트렌드를 선도한 원형적 매출 모형이 됐다.


2010년 겨울 컬렉션으로 선보인 ‘스투시 X 베이프’ 협업 컬렉션은 ‘스투시’와 ‘베이프’ 두 브랜드의 시그니처 라인이다. 찰스 다윈의 ‘진화’ ‘종의 기원’ ‘적자생존’이라는 키워드를 연상시키며 밀리터리룩과 그래픽 디자인룩을 결합한 모던 클래식 라인으로 평가된다.


‘슈프림’이 소셜미디어를 통한 신비로운 회원제 관리 방식과 한정수량 드롭 마케팅을 활용한다면, ‘팔라스’는 기성 패션계에 도전하는 발칙한 태도와 유머감각과 소수 선별된 큐레이션된 매장과 팝업스토어 중심의 오프라인으로 젊은 소비자들에 어필한다. 친구들의 스케이트보드에 그래픽을 그려주는 디자이너로 출발한 레브 탄주 창업자는 올해 창립 기념 10년이란 비교적 짧은 기간에 ‘팔라스’를 유럽 청년들의 뒷골목 문화를 대변하는 브랜드로 정착시켰다.


◇ 헤리티지 브랜드의 부흥 사례 ‘챔피온’


1919년 미국의 한 면직공장에서 론칭한 ‘챔피온’은 현재 미국을 대표하는 클래식 애슬레저 브랜드다. 1930년대 미군 훈련병들의 연습복으로 납품된 것을 시작으로 1980~90년대 미국 농구협회, 미식축구협회, 주요 대학, 올림픽 대표팀의 스포츠웨어를 공급하는 전문 스포츠웨어 브랜드로 명성을 누리며 대중의 인기를 끌었다.


이미 미국 1980~90년대 청소년과 학생들 사이에서 널리 유행했으나 지난 20여년 간 자취를 감춘 후 최근 스포츠 캐주얼 및 애슬레저 패션으로 부흥을 타고 MZ세대가 즐겨 찾는 브랜드가 됐다. ‘팩썬’ ‘어번아우피터스’ ‘아디다스’ 매장을 통한 유통 전략, 빈티지 브랜드로의 포지셔닝, 현대적 감각의 결합 등으로 제2의 전성기를 맞고 있다.


오늘날 소비자에게 널리 알려진 ‘챔피온’의 ‘C’ 로고는 1950년대에 리뉴얼되면서 오늘날까지 사용되고 있는 시그니처로 자리잡았다. 스웨트셔츠 왼쪽 가슴과 왼팔 소매 아래, 스웨트팬츠 왼쪽 상당에 자수로 부착되어 있는 것이 특징이다. 특히 오리지널 클래식 상하의 세트는 ‘리버스위브(Reverse Weave)’로 불리는 특허 직조공법으로 제작된 ‘챔피온’에서만 생산하는 아이템이다.


신세대 소비자들은 흥미롭고 영감을 주는 스토리가 있는 브랜드를 소비함으로써 스스로를 창조적으로 표현하고 싶어한다. 현재 영미권 시장을 대표하는 리세일 및 중고 패션 매매 플랫폼인 디팝(Depop)의 경우 150만 가입자 중 90%가 Z 세대이며 이 플랫폼을 통한 스트리트 웨어 매출은 전년대비 60% 증가했다. 현 25세 미만 연령대 Z 세대가 주소비자군으로 본격적으로 떠오를 몇 년 후를 대비하고 싶다면 그들의 취향과 소비행태 파악이 우선돼야 할 것이다.


‘팔라스’ 2019 FW 스케이트보드 컬렉션

‘오베이’ Andre the Giant 포스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