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 일루셔니스트, 마이클잭슨
2009-07-13예정현 기자 





가수를 단지 ‘노래하는 사람’의 틀에서 벗어나 노래와 춤, 패션, 무대가 완벽히 조화를 이루는 일종의 ‘공연 예술’로 발전시킨 마이클 잭슨은 수동적으로 ‘들어왔던’ 노래를 적극적인 참여자로 즐기고 반응하는 ‘시각적 드라마로’ 승화시킨 일종의 비주얼 아티스트였다.

그의 무대는 비극과 희극이 뒤섞인, 공포와 수수께끼를 낳는 감동적 스토리를 가진 드라마였고 기존의 룰을 깨는 창의적인 음악과 춤은 환상과 현실을 뒤섞으며 끝없이 관객을 자극하고 도전하고 빨아들였다.

때론 매혹적인 귀족처럼, 때론 미스테리한 마법사로, 때론 그로테스크한 괴물로 새로운 세상을 구축했던 마이클 잭슨, 그의 삶에서, 무대에서 음악만큼이나 그를 매혹시킨 또 다른 열정은 바로 패션이었다.




패션 스테이트먼트의 선도자 - 비주얼 아티스트


새로운 것을 개척하는 선도자들의 원죄였을까? 무대에서는 늘 강렬한 파워를 갖춘 절대 군주였던 그였지만, 현실 속의 마이클 잭슨은 늘 과장적인 패션과 미숙한 성인, 비현실적인 행동으로 조롱과 놀림감이 된 안쓰러운 셀러브리티기도 했다.

하지만 마이클 잭슨이 팝계를 장악하던 1980년대 당시 남성 가수들의 패션이 ‘부스스한 노동자 스타일-흐트러진 장발에 낡은 진, 앞 단추를 풀어헤친 셔츠’나 ‘라스베가스풍(클래식한 정장과 단정한 헤어 혹은 가슴을 드러낸 타이트한 셔츠’로 나뉘어 있던 1980년대 당시 마이클 잭슨은 지금 봐도 모던하고 쉬크한 패션) 단추선이 드러나지 않는 깔끔한 화이트 셔츠+발목까지 오는 블랙 팬츠+서스팬더+화이트 삭스+블랙 페도라 -으로 당장 남성복 런웨이에 서도 어울릴만한 감각적인 스타일을 선보이며 남성들의 패션에 신선한 변화를 자극했다.

또한 군살 없이 늘씬한 몸매를 강조하면서도 춤추는데 불편하지 않는 이 같은 타협적 스타일은 지나치게 남성적이지 않은 묘한 중성미를 더해 여성들에게 더 어필하는 효과를 발휘했다. 그로 인해 ‘남성미에 대한 고정관념에 사로잡힌 마초적인 남성들에게 그의 스타일이나 특유의 춤사위는 매우 ‘불편’할 수밖에 없었다.

그가 즐겨 입었던 화려하고 블링블링한 황제풍(혹은 밀리터리풍) 자켓은 도드라지는 옷차림에 엘러지를 일으키는 남성 집단의 신경을 건드릴 수밖에 없었다. 특히 자라지 않는 소년처럼, 지나치게 슬림한 몸매와 소곤거리는 부드러운 목소리, 아이들과 함께 하기를 좋아한다는 이유로 평생 ’게이‘ 혹은 ’소아성애자‘라는 오해와 의혹을 떨치지 못했고 성형 부작용으로 외모까지 손상되면서 그의 노래는 물론 패션까지도 근거 없는 놀림감과 비아냥에 희생되곤 했다.

그러나 잭슨 파이브로 데뷔한 어린 시절부터 죽기 전까지 그는 끝없이 패션가에 강한 영향력을 미쳤고 그의 패션은 그의 노래를 전달하는 효과적 수단으로, 패션 스테이트먼트로 확고히 자리했다. 그런 만큼 너무나 화려한 음악의 빛에 가려져 상대적으로 덜 언급되었던 마이클 잭슨의 패션 영향력을 살펴보는 것도 의미 깊을 듯 하다.


시대를 이끈 패션 감각 - 쓸쓸한 패셔니스타

잭슨 파이브의 막내로 팝계에 등장한 어린 막이클 잭슨은 히피의 영향이 남아있는 1970년대의 분위기에 맞게 프린지 셔츠와 플랫폼 힐+와이드 벨보텀 팬츠+아프로 헤어스타일로 깜찍한 모습을 강조했다.

하지만 사춘기에 접어들자 그의 스타일은 턱시도 재킷+발목을 묶는 페그드 팬츠+블랙 슈즈+화이트 삭스로 클래식하면서도 개성적인 세련된 모습으로 변모되었다. 특히 패션계의 상식을 뒤엎은 검정 구두+화이트 삭스는 마이클 잭슨의  시그너쳐 스타일로 무대에서 춤을 출 때 발동작을 놀랄 정도로 선명하게 강조하는 효과와 개성을 발휘했다.

이 스타일은 1982년 세계를 강타한 그의 노래 ‘빌리진(Billie Jean)'에서 좀더 세련된 스타일-심플한 블랙 수트 +오픈 컬러 화이트 드레스 셔츠+블랙 로퍼+페도라 스타일로 업그레이드 되며 아이코닉한 마이클 잭슨의 이미지로 자리했다.

사실 빌리진은 마이클 잭슨의 Thriller 앨범에 수록된 6번째 곡으로 Thriller 앨범은 팝계 뿐 아니라 마이클 잭슨의 유니크한 패션 감각이 마음껏 펼쳐진다는 점에서도 의미를 더한다.

화려한 지퍼 디테일이 돋보이는 레드 가죽 보머+타이트한 패러수트 팬츠, 반짝이는 화이트 세퀸 글로브+컬러까지 닿는 제리컬(Jerry curl) 헤어스타일+미러 애비에이터 선글라스로 1980년대 시그너쳐 룩을 만들어낸 그는 가죽 재킷을 섹시하고 패셔너블한 아이템으로, 패러수트 팬츠와 글로브를 젊은이들의 머스트해브 아이템으로, 제리컬 헤어스타일을 남녀 모두에게 전파시킨 진정한 의미의 패션 리더였던 것.

실제로 2009년 패션하우스 발망(Balmain) 봄 컬렉션에서는 잭슨의 시그너쳐 룩에서 재구성한 번쩍이는 밀리터리 코트가 등장, 인기를 끌었고 올해 초 경매에 붙여졌던 그의 화이트 세퀸 글로브는 20만 달러를 상회했지만 법정 소송으로 인해 경매가 불발된 바 있다. 1987년 히트곡 “Bad”의 관능적이고 도발적인 가죽 의상+버클은 로다르테, 알렉산더왕의 컬렉션에서 재해석된 바 있다.

이처럼 1980년대 화려한 스트리트 룩을 전파했던 마이클 잭슨은 1990년대 들어 좀더 엣지하고 드라마틱한 무대 의상을 선보이며 세련되고 쉬크했던 초창기 수트 룩에서 보다 ‘퍼포먼스’적 이미지로 변모했다. 일례로 또한 1992년 타이트한 블랙 팬츠+골드 가죽 팬티+어깨가 강조된 홀로그램 자켓으로 패션계를 당황시킨 그는 지방시와 발망의 여성복 런웨이 무대를 좋아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퍼포먼스적 의상에도 밀리터리풍 액세서리나 팔목 밴드를 곁들이는 유니크한 감성으로 그의 의상은 지나치게 무거운 느낌을 털었고, 패션 트렌드에 좌우되지 않는 독립적 패션 감각은 조용하지만 고집스런 마이클 잭슨의 패션 의식에 고스란히 반영되었다.


그가 패션 사업을 했다면…

이처럼 독립적이고, ‘자신만의 세상’에서 이뤄낸 그의 패션은 디자이너의 런웨이나 스타일리스트의 조언에 따라 ‘계획된 패셔니스타’가 탄생되는 지금의 연예계와 다른 점으로 마이클 잭슨은 음악과 춤 뿐 아니라 패션에 있어서도 독창성과 크리에이티비티를 중시했음을 알 수 있다.

동시에 스타일리스트에 의해 ‘계산된 옷차림’으로 패셔니스타 칭호를 얻고 이를 곧 패션 사업으로 연결, 엄청난 수익을 올리고 있는 최근의 영악한 셀러브리티들과 달리 마이클잭슨이 ‘세상의 이재’에 밝지 못한, 그 자신의 세계에만 충실한 아티스트였다는 점이 보다 확실해 진다.

즉 그가 디자이너들에게 수시로 고가의 의상을 제작하도록 하고 브래스메달이나 화려한 컬러의 베스트, 번쩍이는 밀리터리풍 재킷으로 자신의 수퍼스타적 이미지를 과시했지만 그에게 패션은 ‘자신의 또 다른 정체성의 상징’이었을 뿐 ‘판매 대상’은 아니었던 것이다.

만약 마이클 잭슨이 자신의 상업적 가치를 사업으로 연결시켰다면-패션 사업에 한 눈을 팔았다면, 그냥 브랜딩 사업만 할 정도로 세상사에 밝았다면 그렇게 사랑했던 네버랜드를 포기하고 엄청난 부채에 시달리는 비극적 상황을 피할 수 있지 않았을까?

항간에 마이클 잭슨이 디자이너 크리스챤오디거와 손잡고 패션 사업을 진행하려 했다는 소식이 전해지고 있지만 구체적 계획보다는 형식적 ‘말’ 정도였다는 것이 정설이다.(크리스챤오디거는 Ed Hardy 컬렉션과 Von Ducth 로 유명한 디자이너다).

언제나 아쉬움을 자아내는 ‘만약’이 ‘정말’로 진행되었다면, 마이클 잭슨이 패션 사업에 진출했다면 마이클 잭슨의 인생은 좀더 달라지지 않았을까? 음악을 사랑하고 패션을 사랑했던 무대 위의 황제를 저 세상으로 보내는 마음은 한여름에도 스산한 가을이다.